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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Oct 22. 2024

[100-44] 평범한 보통의 나날

 에너지가 끌어당기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관심이 쏠려서일까. 뭔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이 눈에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나. 예를 들면, 임신했을 때 임신부가 잘 보이고, 내가 아플 때 주변에 아픈 사람 소식이 많이 들린다. 요즘은 그저 무난하고 평범한 일상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그런 글귀가 눈에 잘 들어온다. 

 자기계발이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는 글이 주요 컨텐츠인 인스타그램을 자주 본다. 오늘 마침 보게 된 글은 "별 걱정 없이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참된 행복이라는 것이다. 앞에 붙은 "인생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최소화하며" 라는 단서가 특히 더 마음에 남았다. 나는 걱정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미리 땡겨서 걱정을 할만큼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온갖 상상의 나래와 염려를 담아 걱정하느라 스스로가 힘들다. 


 그런데 인생은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언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데 이렇게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는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등바등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뭔가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야 하고, 남들이 열심히 하는만큼 나도 해야하는데 싶은 조바심이 나서 달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세게 번아웃이 오거나 아프고 힘든 일이 생기면 다시 또 멘탈관리가 필요해진다. 아프고 다치면 다 소용없다. 가족 모두 무탈하고 무난하게 보낸 평범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보통의 날들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계속 생각한다. 


     

 아침에 골고루 챙겨먹이고 학교까지 아이를 데려다줬다. 돌아와서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을 마무리해서 보냈다. 해방감을 누리며 오랜만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마셨다. 촉촉하게 내리는 비에 기분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또한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알아차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닐까. 정신없이 바쁘고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도 오고 기온도 내려가서 몸이 으슬으슬한 것 같아 뜨끈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딸아이와 후후 불어가며 구수한 청국장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부랑 야채를 잔뜩 넣고 끓였다. 하교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더니 오늘도 표정이 밝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잘 적응하고 있어서. 


 저녁으로 청국장과 볶은 김치를 맛있게 먹으며 학교 이야기도 하고 내일은 뭘 먹을까를 같이 상의했다. 이렇게 느긋하게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주는 충만함을 그동안 모르고 지냈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각자 알아서 끼니를 떼우듯이 해결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이는 몇 달 후면 고등학생이 되고 같이 보낼 시간은 점점 줄어들텐데 따듯한 밥 해먹이며 챙겨주고, 외부 활동은 좀 자제하기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의 평범한 보통의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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