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다는 건,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능력”이라는 문구를 어딘가에서 읽었다. 하루하루가 선물 같고 소중한 일상의 소중함을 온전하고 충만하게 느끼며 2024년 정말 잘 보내고 싶다.
3월 초에 내가 쓴 글 중의 일부다.
2024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아주 야심차게 3월을 시작했다. 안식년과 비슷한 개념의 연구년을 얻게 되었기에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러나 8월에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 이후에는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나 했더니만 고3 아들, 중3 딸 챙기느라 정신이 어수선한 채로 몇 달이 지나버렸다.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인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일이면 올해가 정말 두 달밖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단 말이다. 해야할 일도 많고 마무리해야 할 일도 많은데 어쩌란 말이냐.
오늘이라도 좀 천천히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몇 시간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소박하면서도 올드한 느낌의 카페에 갔다.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오래된 폐보건소 건물을 활용한 카페인데 낡은 외관의 벽과 벗겨진 시멘트는 그대로 두었다. 내부는 문을 다 없앤 작은 공간들에 레트로 느낌과 엔틱 느낌이 나는 장식과 가구들로 채워져 있어 분위기가 참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이다. 특히 오후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간에 가면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진다.
건물 주변으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가 둘레를 감싸듯 잔뜩 피어있어서 카페에 들어갈 때 기분이 설렜다. 나올 때는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의 자태에 넋을 놓고 바라봤다. 가을은 역시 코스모스지.
기후 위기 때문이지만 올해 가을은 좀 길어서 참 예쁜 가을을 여기저기서 많이 보고 누리고 있다. 아직도 낮에는 기온이 20도를 웃돌아반팔을 입고 다니고, 차창을 연채 신나게 달리며 가을 바람을 만끽하는 기분은 청량하다. 노랑 주황으로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는 나무들의 변화, 나무에 매달린 감과 넝쿨 여기저기에 얽힌 채 탐스런 모습을 한 호박들, 배추와 무가 풍성한 밭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전에도 와본 적이 있지만 다시 봐도 마음을 빼앗는 이 공간의 매력에 빠져 카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사진을 찍으며 한껏 들떠있다가 주문한 커피와 스콘이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테이블에 올려둔 달콤한 스콘과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보기만 해도 행복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혼자 오롯히, 천천히 즐기는 카페 독서는 내 행복 버튼이다. 이걸로 오늘 하루치의 행복을 다 채웠다.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능력이라고 했던 감사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올라 10월을 쿨하게 보내줄 수 있는 마음이 조금 생긴 것도 같다. 아쉽지만 시월 잘가~. 그리고 곧 사라질 가을과도 작별할 준비를 조금씩 해야겠다. 두 달 남은 올해를 진짜진짜 잘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