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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Nov 26. 2024

[100-79] 식물에게 배운다

 내가 기대어 살고 있는 3가지가 있는데 책, 운동, 식물이다. 책과 운동 이야기는 자주 쓴 것 같으니 오늘은 식물과 관련된 일상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어렸을때 내가 생각한 엄마들은 뭔가를 잘 키워내고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보였다. 음식은 당연한 것이고, 손을 움직여 뜨개질로 옷이나 목도리, 조끼등을 만들고 코바느질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엄마가 되면 저절로 그런 것들을 다 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는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식물을 잘 키우는 것도 엄마들이 가진 당연한 능력이라고 여겼다. 화단이며 화분에 피는 꽃과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보면 아이도 낳아 기르는 엄마들이니 물만 주면 자라는 식물키우는 일이야 뭐 어렵겠나 싶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뜨개질은 쉬운 게 아니었다. 기본뜨기와 꽈배기 무늬 정도만 겨우 할 줄 알아서 목도리는 떠봤고, 바느질은 어찌어찌 해서 아이들 베냇저고리와 펠트 장난감 등을 만들었다.  코바늘 뜨기는 내겐 너무 어려운 일 같아서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식물은 워낙 좋아해서 많이 키우고 싶었다. 초록초록한 화분과 잎, 애타게 기다렸다가 볼 수 있는 꽃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하나 둘씩 늘려갔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더우면 벗으면 되지>라는 그림책에서 좋아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식물에 관한 부분을 보고 너무너무 공감했다. "보상 받고 싶다면 식물을 기르면 되지." 자식을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해도 보상은 커녕 상처받기 일쑤인데 물만 잘 줘도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 주는 기쁨을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하다니. 어느 순간 식물과 대화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끼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엄마들이 그렇게 화분을 많이 키웠던 이유를 이제 나도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식물을 키우면서 인생의 지혜를 수시로 깨닫기도 한다. 물을 자주 줘야 잘 크는 아이, 무심한 듯 물을 가끔 줘야 하는 아이, 햇빛이 강한 곳에서 잘 자라는 아이, 적당한 그늘이 있어야 하는 아이 등 특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조건에서 크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가끔씩 너무 시들거나 병든것 같아서 포기해야겠다 싶어 방치했는데 어느날 새 잎을 내고 있을 때, 언제 자랐는지도 모르게 다른 화분에서 공생하며 꽃을 피우는 모습을 봤을 때, 너무 놀랍고 그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면서 나도 힘을 내고 싶어진다.


 여러 개 심은 씨앗 중 하나만 겨우 싹을 틔운 것을 봤을 때도 기적처럼 느껴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씨앗의 힘.


 얼마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사랑초 씨앗을 모아두고 흙에다 심어줘야지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나서 살펴보니 건조한 공기중 상태에서 씨앗이 푸릇하게 싹을 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씨앗에 관한 다른  일화도 있다. 화분에 씨앗들을 심은지 한참이 지나도 반응이 없길래 발아에 다 실패했구나 싶어 정리하려고 화분을 엎어버렸다. 그랬는데 화분 깊숙한 곳 안쪽에서 뿌리를 잔뜩 내리고 있는 씨앗들이라니. 성급한 나자신과 무관심한 태도에 반성이 되었다. 그리고 뿌리가 난 그 씨앗들을 잘 갈무리해서 다시 화분에 심어주었다.


  자연은 이렇게 위대하다. 작은 씨앗이 품고 있는 그 잠재력이 너무도 경이롭다. 아이들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힘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자기만의 꽃을 피우는 때가 올거라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뿌리와 싹을 내밀면 어느 날 마음껏 양분을 먹고 자랄 수 있는 좀 더 나은 환경, 더 운이 좋게는 딱 맞춤한 환경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자라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미리 예단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더 인내심있게 기다려주자고 다짐했다.


 

 오늘은 비바람도 불고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나머지 사랑초 씨앗들을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쁘게 꽃을 보여줄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사랑초는 종류가 다양한데 잎이 토끼풀처럼 생겨서 처음엔 잡초인줄 알았다. 그런데 꽃들이 은은하고 묘하게 예뻐서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초.

"얘들아~미안하고 고마워~ 이제 마음놓고 단단하게 뿌리내리길. 잎도 틔우고 쑥쑥 자라 꽃도 많이 보여주렴~."


 오늘도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인생의 태도와 지혜를 마음에 잘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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