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많이 어설퍼도 설레였던 스무살의 봄 : 4월 이야기

by 설렘책방



새학기가 시작되는 4월.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우즈키는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상경을 합니다.

아직 찬바람이 부는 홋카이도에 비해 도쿄는 이미 벚꽃이 만발한 봄의 절정이죠.

꽃비가 흐드러지게 내리는 날 홋카이도에서 이삿짐이 도착합니다.

그녀가 사는 집주소도 마침 사쿠라가오카, 벚꽃 언덕이네요.

애써 실어왔지만 도쿄의 새 집에는 필요치 않아 결국 버려야 하는 고향의 이삿짐처럼

우즈키도 어리기만한 소녀의 모습은 뒤로하고 타지 생활에 적응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요.



활기차지만 그 뜨거운 열기가 어쩐지 어지러운 입학식날,

성격은 밝은 편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지만 목소리가 떨립니다.

왜 이 학교에 입학했냐는 질문에도 계절에 맞지않는 스웨터에 대한 질문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사에코라는 동기의 제안으로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지요.

전혀 관심이 없던 플라잉 피싱이지만 그녀에겐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이라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우즈키는 자전거가 생기자마자 '무사시노도우'라는 작은 서점을 찾아갑니다.

몇 번의 방문 끝에 드디어 한 남자와 만나게 되는데 바로 우즈키가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야마자키 선배였어요.

밴드부로 유명한 선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선배가 도쿄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버리자 크게 상심했던 우즈키.


그 때부터 우즈키에게 '무사시노'는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 소중한 음절이 됩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 구니키다 돗포의 단편 <무사시노>를 읽기도 하고,

선배가 다니는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선배가 일한다는 서점,'무사시노도우'에 찾아가 그와 마주하는 용기를 낸 것이죠.

하지만 어렵게 만난 선배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서운함을 애써 감추며 돌아서지만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드디어, 야마자키 선배가 우즈키를 알아봅니다.

고향 후배와의 재회에 기쁜 선배가 다시 서점에 들르라는 말에 우즈키의 심장은 벅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우산을 빌려주겠다는 선배의 호의도 마다하고 달려나가지요.

빗줄기가 거세지자 할 수 없이 갤러리에서 나오는 한 신사의 우산을 빌려쓰고 다시 책방으로 갑니다.


온전치 않은 빨간 우산을 빌려 쓴 우즈키는 마냥 기쁘기만 합니다.

"이걸로 괜찮아요. 이게 좋아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한 숨을 내뱉고

우산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사랑의 기적을 만끽합니다.

조금은 융통성이 없고 세련되지 않지만 순수한 우즈키가

그 빨간 우산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common (4).jpg



1998년 일본에서 개봉 된 <4월 이야기>는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이게 끝이야?"라는 의문이 드는 마지막 장면이었지만 여주인공 마츠 타카코가 너무 예뻐서 한동안 제 싸이월드 프로필 사진이기도 했어요.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한 시간 동안 서투름떨림설렘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죠.

그래서 보는내내 미소지으며 우리도 경험했던 그 봄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러분의 스무살, 봄은 어땠나요?

늘 설레고 찬란했나요?


아쉽게도 저의 스무살 4월은 파스텔톤의 고운 빛깔은 아니었어요.

입학 후 마냥 신나고 흥분 된 3월 한 달을 보낸 후에는 모든 것이 시들해졌어요.

대학만 가면 희망찬 미래가 쭉쭉 뻗을 것 같았는데 그 길이 희미해 보였고

학부로 입학해서 내가 원하는 전공을 하려면 또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했어요.

대학을 다니지 않던 당시 남자친구의 날선 반응들이 버거워 잠수를 타기도 했고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떠드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나와 달리 스무살답게 웃고있는 청춘들이 샘이 났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닫으니 선배들, 친구들이 걱정을 합니다.

괜찮아? 왜 그래? 우리가 있잖아. 힘 내.

그런 다정한 말들에 미안해져서 금세 고민 하기를 그만 둬 버렸어요.

내가 뭐라고, 남들 걱정 시키고 분위기 망치는 건 그만 해야지.

돌이켜보면 그 때 조금 더 대학 생활에 대해,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고민 해 봤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늘 화사하고 찬란한 것만이 스무 살의 역할은 아닐텐데.

좀 서투르고 벽에 부딪히고 그렇게 남들보다 늦게 자신의 꽃을 피워도 되는데

그마저도 눈치를 봐야하는 청춘이었네요.


시작의 설레임을 그린 영화 <4월 이야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답기만 하진 않습니다.

이삿집을 옮길 때 의욕은 앞서지만 방해가 되는 우즈키,

동아리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은 친구에게 이용만 당한 우즈키,

호의를 거절한 것이 미안해 집에 찾아온 이웃집 여자를 두고 전화를 끊지 못하는 우즈키,

그녀에게도 미숙하고 평범하고 멍청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 자체로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4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이병률 시인 <찬란> 中 일부




봄을 기다려봅니다.


떨림과 설렘 뿐 아니라 불안과 막막함도 참지 못하고 또 싹을 틔우겠지요.

괜찮습니다.

그마저도 찬란하겠지요.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3화꿈을 꾸는 이들의 색 : 라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