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
멜로 드라마를 좋아한다
하지만 20대의 사랑이야기는 그저 귀엽기만 하고 ‘부부의 세계’ 같은 드라마는 너무 막장이다
깊이 있고 진중한 어른의 사랑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면 오늘 소개해 드리는 영화 <가을의 마티네>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가을의 마티네>의 원제는 <마티네의 끝에서>입니다.
같은 제목의 소설이 원작이지요.
마티네는 프랑스어로 오전 중이라는 뜻의 마탱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연극, 음악회, 오페라 등의 낮 공연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저녁에 이루어지는 공연을 낮시간이 자유로운 학생과 주부들도 즐길 수 있게 시간대를 넓혀 관객 대상을 확대하려는 취지의 공연입니다.
한낮의 공연, 마티네의 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천부적 재능을 가진 클래식 기타리스트 마키노는 데뷔 20주년 콘서트에서 프랑스 RFP 통신에 근무하는 요코를 만납니다.
둘은 뒤풀이 파티에서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해받는다는 기쁨, 이야기가 통한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희열로 서로 강하게 끌리고 호감을 갖게 됩니다.
요코에게는 미국인 약혼자가 있었지만, 파리에서 재회한 마키노의 저돌적인 고백으로 호감이라는 감정은 곧 사랑으로 발전하지요.
하지만 평생을 함께하려던 둘의 관계는 사랑의 방해꾼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돌아서게 됩니다.
상대를 떠나 각자의 파트너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지금까지 단지 세 번 만났을 뿐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깊이 사랑했던 사람.
쉽게 가라앉지 않는 그림움을 서로를 위한 배려, 가정에 대한 책임으로 자제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그들은 우연히 마키노의 마티네 공연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이들의 사랑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히라노 게이치로는 10대 때처럼 서로의 감정만 높아지고 상처 입는 것이 아니라
일도 있고 가정도 있는 가운데서의 사랑, 거기서 배어 나오는 당사자들의 인간성을 리얼하게 그려보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40대의 사랑은 어떤걸까요?
40대를 통과하고 있는 제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20대에는 이성과의 사랑에 몰두했었습니다.
30대에는 자녀를 사랑하는데 온 정성을 들였습니다.
뜨겁던 이성과의 사랑도 끝나고 엄마가 세상의 전부이던 아이들도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40대, 현재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요?
저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아껴주지 못한 나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어요.
가족과 떠나 홀로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온전히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벗어나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니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제한 된 시간 안에 도저히 다녀올 수 없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기도 했습니다.
늘 저는 급박한 상황에서 맞부딪치기보다는 안될 것 같다며 지레 포기하고 편안함을 쫓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저기가 가보고 싶고, 설령 제시간에 오지 못하더라도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땀이 나고 숨이 차올라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지만 계속 웃음이 나더라고요.
깜깜한 밤의 숲길이 전혀 무섭지 않고 이 도전을 선택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10분 정도 지각은 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의 한 시간을 제가 만들었지요.
지금까지는 우연히 듣게 된 음악에 기뻐하고 감사했다면 이제 우울한 날에는 기타의 선율을 골라 마음을 달래고 흥을 돋우고 싶을 땐 재즈의 리듬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내가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게 40대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오는 사랑이 아닌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자기 사랑 말이죠.
다시 영화로 돌아와 사회적 통념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으로 헤어져 지내야 했던 마키노와 요코도 어느 가을 마티네 공연 후에 마주섭니다.
열정으로 빛나는 청춘이 아닌 자신의 색깔로 물든 낙엽처럼 성숙한 그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여운을 남긴 채 영화는 끝이 납니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을 거라 그려봅니다.
바람은 매우 차갑지만 하늘이 아름다운 이 한낮에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