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는 에그타르트가 필요해

에그타르트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나

by 혜아

몇 년 전 어느 대형마트 냉동고 앞에서였다. 푸른 타일 모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패키지 안에는 여섯 개의 냉동 에그타르트가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평소에는 디저트를 크게 즐겨 먹는 타입은 아니지만 가끔씩 달콤한 것이 생각나기 마련. 별생각 없이 패키지 하나를 집어 카트에 넣었다. 호기심에 사 온 예쁘장한 디저트. 집에 도착해 자주 쓰는 미니 오븐에 바로 하나를 구워본다. 노릇해져 가는 작은 디저트를 보며 조금은 냉소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냉동 디저트가 얼마나 맛있겠어.


5분 정도 지나자 얼어있던 에그타르트가 둥그런 태양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꺼내서 한입 베어 물기.


입안에서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가 잘게 부서지더니 그 사이로 부드러운 커스터드 필링이 느껴진다. 은은한 버터향에, 생각보다 달지 않은 게 포인트였다. 아는 맛이긴 했지만 익숙한 맛은 아니었다. 냉동 디저트가 맛있네? 하고는 패키지 뒷면을 보니 made in Portugal이라고 쓰인 글씨가 보였다.


18세기, 포르투갈 수도원에서는 계란 흰자를 세탁에 사용하였다. 열을 가하여 응고된 계란 흰자를 수도복에 얇게 바른 후 다림질 하면, 섬유가 빳빳하게 유지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란 흰자에 계면 활성 효과가 있어 약한 세정 효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른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1755년 리스본에서는 8.5 ~ 9.0 규모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어진 쓰나미와 화재로 리스본의 약 85%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일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부터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도시는 다시 일어서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으로 이루어진 것은 무엇이든 극복된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하지만 도시 전체를 감싼 비극을 걷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었을까. 대지진 이후 리스본 재건에 막대한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고, 이미 식민지 무역 수입에 크게 의존하던 포르투갈 경제는 점점 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계몽주의적 개혁이 시작되며 수도원의 경제력은 국가 통제 아래 서서히 약화되었다.

이후 1820년 포르투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수도회의 종교적 특권은 제도적으로 도전을 받게 되었고, 1834년 결국 수도원 해산령이 선포되며 수많은 수도원이 문을 닫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수도원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상징이었던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갈길을 잃은 수도사들은 생계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고, 수도원 안에서만 사용하고 있던 비밀스러운 레시피 하나를 근처 설탕 공장에 넘기게 된다.


마침내 에그타르트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수도사들은 계란 흰자를 세탁에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를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노른자를 활용해 크림을 채운 달콤한 형태의 간식을 개발했고, 포르투갈 전통의 파스테이 드 나타, 즉 오늘날의 에그타르트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1837년, 수도사들에게 레시피를 받은 설탕 공장이 '파스테이 드 벨렝'이라는 카페를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오픈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에그타르트 가게가 리스본 도심이 아닌 외곽에 위치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파스테이 드 벨렝은 개업 이후 1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수도원에서 넘어온 레시피는 절대 기록되지 않고 오직 암기 방식으로만 전수되며 현재 전체 레시피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6명뿐이다. 보안을 위해 세 명의 마스터 패스트리 셰프들은 함께 이동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도 전해진다.


다음 화에서 에그타르트가 세상에 터벅터벅 나오게 된, 파스테이 드 벨렝에서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Pasties de Belem's History

*Lisboa Cool : 5 Facts about the Belem Pa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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