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목조 계단 이야기
그 책은 처음으로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첫 번째 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후 책상에 어정쩡하게 앉아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흐를 수도 있구나 하고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 책이 영화로 나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이야기를 활자로 먼저 접해서 다행이라고, 꽤 어린 나이였는데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영화도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정말 좋아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 세계는 이럴 것이다 하고 보는 것과 이럴 것 같아 하고 스스로 상상하는 것은 꽤나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발휘할 수 없는 두 가지, 상상력과 집중력. 우리에게 이미 갖춰진 그 능력들을 우리의 어린 시절처럼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JK 롤링이 1990년대 초 포르투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다. 포르투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고 이후 영국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작품 집필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렐루서점에서 직접적으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여기저기서 해리포터 서점이라고 부르는 그 연결성은 팬들이나 언론의 해석과 관광 마케팅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 본인도 그 서점을 방문한 적이 없고 직접 영감을 받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부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딕 양식의 건축물과 검은 망토를 입은 학생들이 오가는 포르투의 풍경은 그녀의 상상 속 세계에 어렴풋한 이미지를 남겼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 이야기 속의 움직이는 계단이 이 서점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정확하진 않지만 독특하기도 하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계단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보니 누구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감을 받았을 것 같다.
외형상 나무로 보이는 장식과 계단 디테일이 눈에 띈다. 당연히 목조 계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철근 콘크리트 골조라고 한다. 내부 하중을 지탱하는 건 철근이고 표면을 목재나 회반죽으로 덧씌운 것이다. 따뜻한 목조 계단의 느낌을 주기 위함이었다. 정면에서 보면 계단이 나선형으로 휘어지며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어쩐지 담쟁이덩굴이나 물결이 생각나기도 했다. 목재 질감처럼 보이게 한건 계단뿐만이 아니었다. 벽과 천장에는 플라스터를 깎아 목재 질감처럼 보이게 만든 인조 조각이 많았다. 실제 목재는 난간 상단부, 창틀에만 사용되었다고.
서점은 2015년부터 방문객 대상으로 입장권 제도를 도입했다. 서점 입장 자체에 티켓 구매가 필요한 것이다. 다만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티켓 값만큼 할인을 해준다. 티켓 바우처 도입 후 서점에서 책을 사는 비율이 10% 미만에서 55% 이상으로 크게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사지 않으면 10유로를 티켓 구매에 소비한 셈이고, 책을 사면 평균 15~20유로 정도의 책을 10유로나 할인을 받는 셈이 되는 것이다. 책 보다 계단 사진을 더 많이 찍어가는 관광객을 독자로 바꾸는, 과연 똑똑한 영업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이 움직이는 계단에 영감을 주었던 혹은 아니던. 사람들은 여전히 믿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믿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믿어야 할까?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까. 종종 헷갈리는 때가 찾아오면 최대한 오래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소한 백 년은 훌쩍 넘어서 시간의 바람을 맞고도 변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야기들. 그렇게 발 디딜 틈 없는 계단 사이로 클래식이라 불리는 책들이 많이 보였다. 셰익스피어, 조지오웰,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 톨스토이까지. 알 수 없는 언어의 책으로 가득해도 익숙한 작가 이름을 찾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아이들의 손에는 단연 해리포터가 많이 들려있었다. 어떤 책을 살까. 나도 계단 사진만 찍고 나갈 수는 없지.
엄마가 추천해 준 포르투갈 작가들의 단편선과 내가 좋아하는 조지오웰의 1984 영문판을 손에 들고 서점을 나왔다. 가끔은 그저 마음이 따뜻해지는 편으로 믿고 싶은 것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오해로 채워진 착각이나 추측일지라도 이유도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차가운 진실을 쫓기보단 말이다. 뒤로 넘어간 달력이 가장 두꺼워질 때 즈음, 믿고 싶은 이야기 안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