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예술가들

춤추는 사람들 뒤의 석양

by 혜아


그리 넓지 않은 골목길 사이. 그 유명한 철제 다리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오래되어 거칠어진 건물 외벽과 돌담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동 루이스 다리가 보였다. 구시가지 중심에서 살짝 떨어진 숙소에서 나온 길이라 관광객이 많이 다니지 않는 뒷골목으로 오게 된 것이다.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큰 기대감은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도착하기 전까진 이 다리를 도보 10분이면 건널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왔었다. 있는 그대로의 관점으로 도시를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골목길 사이로 난 계단을 내려가며, 다리 전체의 구조를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견고함이 있었다.


어쩌면 도시의 예술가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다리 주변은 어디서든 음악이 들리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리에서 색소폰 소리를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다는 건 여지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누군가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저 걸어 다녔을 뿐인데 계속해서 듣고 보게 되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 것인가.


다리 건너 정원 앞에는 나이 지긋한 음악가 한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초저녁에 이를 때면 어김없이 그의 노래가 시작되는데 첫곡은 ABBA의 Mamma Mia. 그만의 선곡 레퍼토리가 있다는 건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찾아가 봐서 알게 되었다. 노래가 시작되면 쓸쓸해 보이던 공터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 익숙하지 않아도 그렇게 느껴지는 음악이 들린다.


한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또 다른 한 사람. 세련되고 오래된 음악에 맞춰 어느새 다 함께 리듬을 타는 사람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렇게 도시의 마법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낭만적이라고 말하는 동 루이스 다리의 모습은 다리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음악과 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역시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시작되는 ABBA의 맘마미아.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한곡이 끝나자 젊은 여성 둘이 그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하고 있다. 아마 원하는 노래를 신청한 것일 테다. 노래가 시작되자 춤을 추는 그녀들. 지나가던 사람들이 섬광처럼 모여들어 그들과 같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만 보던 플래시몹을 실제로 보면 이런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춤추는 사람들 뒤로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몇 살 정도 되었으니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던가 그런 추측 같은 것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딘가 묵혀있던, 경직된 마음이 부드러워졌던 건 보이지 않는 바운더리가 진짜로 보이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축적된 것에 대한 존중이 있으면서도 애초에 새것과 오래된 것에 대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것이 특별히 숭상되지도 배제되지도 않는다.


ABBA의 노래가 끝났다. 다음 곡은 마카레나. 진짜 이 곡까지만 듣고 가야지. 뭘 하든 신경쓰지 않는 무심함과 누구에게나 친절한 상반된 공기를 들이마신다. 어쩌면 매일 꿈꿔왔던 것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어쨌거나 세상은 똑똑하고 실용적이며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내일은 못 볼 것 같아 그 기타 가방에 다가가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살짝 얹고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루 종일 달랑거리며 주머니 속에 동전들을 넣어두고 다닌 이유였다.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고 어이없을 정도로 작은 것에 웃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낯선 도시에 오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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