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벤투역과 2만 장의 아줄레주
노란색 건물들 사이로 디스코풍의 오래된 팝이 흘러나온다. 자주 듣는 스타일의 음악은 아니지만 거리에서 들려올 때면 어김없이 제목이 알고 싶어지는 노래들이 있다. 목적지는 잠시 제쳐두고 골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역시 이 도시는 딴 길로 새는 순간이 가장 설레는 법.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건물은 샛노란 유광 타일로 덮여있었다. 그 옆 건물은 더 진한 개나리색, 맞은편은 형광에 가까운 채도 높은 노랑, 또 그 옆은 아이보리에 가까운 연한 노랑. 형형색색의 건물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는 건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정말이지 눈에 보이는 타일의 질감, 색감, 모양까지도 같은 것이 없다는 건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평범하게 볼 수 있는 도시 건축만으로도 세상은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걸 포르투를 걷다 보면 항상 깨닫게 된다.
건물 사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광장이 나왔다. 바깥의 도시 소음과 지나다니는 차의 경적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 완전히 다른 공간. 커다란 음악 소리와 함께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마그넷을 파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포르투의 거리 표지판, 도시를 대표하는 오래된 카페와 빵집들, 트램과 에그타르트, 그리고 와인 코르크.
하지만 도시의 랜드마크라 할만한, 여행자들의 기념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레코드판, 필름 카메라, 카세트테이프, 타자기까지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마그넷들이 눈에 띄었다. 조금 전 지나가다가 본 평범한 카페의 실사판이 작은 마그넷이 되어 그녀 앞에 놓여있는 걸 보니,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중 창가에 화분이 놓여있고 예쁜 타일로 장식된 포르투식 건물 마그넷을 손에 쥐었다. 겉으로는 매력적이되 알고 보면 자신에게 전혀 필요가 없다거나, 사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원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소비와 자신에게 진정으로 쓸모 있는 소비를 구별하는 능력은 그것을 획득했을 때의 느낌에 있을 것이다. 그 내밀하고 섬세한 감각을 오로지 가격이나 어디선가 인정받는 취향에 맡겨버린다면 얻을 수 있는데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그녀는 그 마그넷을 깨지지 않게 부드러운 포장지에 감싸서 내게 정성스레 건네주었다.
플리마켓에서 나와 진짜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 기차역을 유명하게 만든 건 대합실을 가득 채운 2만 장의 아줄레주다. 포르투 화가 '호르헤 콜라소'가 제작한 이 타일 벽화는 1905년 ~ 1916년 사이에 완공되었다. 포르투갈의 역사와 일상의 장면을 2만 장의 아줄레주 타일로 섬세하고 담고 있어 기차역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과도 같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수도원이었던 이곳은 19세기 후반 포르투의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철도 교통의 중심지, 지금의 상 벤투역이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 공간 자체가 전통 사회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포르투갈의 시간적 전환점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 상 벤투역은 '조제 마르크스 다 시우바'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와 상 벤투역을 프랑스식 신고전주의와 벨 에포크 양식, 그리고 포르투 특유의 정서를 섞어 설계했다고 한다.
대합실 전체를 감싸고 있는 벽화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은 중앙의 대형 벽화인 'Tomada de Ceuta(세우타 정복)'이다. 1415년 포르투갈 왕 주앙 1세가 아프리카 북서부의 도시 세우타를 정복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세우타 전투는 포르투갈이 대항해 시대의 첫걸음을 내디딘 상징적인 역사로 이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간 포르투갈 제국의 서막을 알린 역사적인 전투이다.
청색과 백색으로만 이루어진 아줄레주이지만, 그 안의 인물 표정과 긴장감,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색을 쓰지 않고도 생동감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지금도 상 벤투역은 기마랑이스나 아베이루와 같은 포르투 근교 소도시, 그리고 리스본행 열차가 오가는 교통의 중심이다.
이 도시에 있는 동안 한 번은 꼭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