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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Aug 10. 2021

내가 '되다'라는 말

최진영, 『내가 되는 꿈』

작가의 이름은 간간히 들어보았다. '좋다'는 말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기에, 읽지 않았다. 이유나 사족을 덧붙이면 눈길이 갔을지도 모른다. 취향이나 가치관은 아무리 비슷해도 다르기 때문인지 추천의 한 마디로는 혹하지 않는가 보다. 당신에게 최고라고 해서 나에게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이번엔 추천의 한 마디로 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말을 전하던 이의 눈빛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 입으로 말하는 게 좋다. 한껏 반짝이는 눈이며, 격양되는 어조며, 부드러운 호선을 만드는 입꼬리까지. 정성껏 닦아서 광을 낸 구슬 같다. 나는 보답하듯이 그이에게서 책을 빌렸다. 눈물 자국이 있다는 말에 깔깔 웃어대며.


그때는 몰랐다. 나도 똑같은 대목에서 눈물을 흘릴 줄은.







책은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 이건 단순히 표지의 디자인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두께, 손에 잡았을 때의 느낌, 질감 등 눈과 손, 때로는 코에 닿는 감각까지 포함된다. 나는 이 책이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너무 딱 맞지도 않은 어느 중간 지점에 닿았다.


게다가 러시안 인형이라니. 아무래도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되고 싶다고 오래도록 갈망한 모양이다. 그렇게 페이지를 넘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야 했다.


엄마는 웃지 않았고 나는 왠지 슬퍼졌다. 내게 남길 수 있는 아주 많은 문장 가운데 '담배 끊어라'를 선택한 할머니는, 아마도 내가 웃길 원했을 거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자 웃을 수 없었다.

_p.26


인간은 상상할 줄 아는 동물이고, 상상은 의미부여를 돕는다. 사물에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고, 개중에 고착화된 의미는 세계에 퍼진다. 관계 형성도 비슷하다. 제각각인 사람들 중에서 의미 있는 사람을 골라낸다. 가족, 애인, 절친. 이름표를 받은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이렇게 마음을 내어준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냥, 삶이 재미없을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금세 암울했다. 그 자리를 무엇으로 메울까.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죽음은 언제나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사라질 사람이 무얼 할 수 있겠나. 아니,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남겠느냐고.


남겨지는 것도, 떠나는 것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낫다고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까. 하루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깊은 내면까지 나눈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무슨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의미를 추구하고 싶을까. 아니, 의미랄 게 존재할까.


이때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남아 있는 사람은 제 몫을 살아가는 게 미션이다. 그렇다면 떠나는 이가 할 몫은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다. 살아야 하는 사람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마지막 미션이다. 미션이라고 해서 거창할 것 없다. 그저 가장 힘겨운 순간에 웃음을 선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죽음'과 관련된 메시지는 작가가 사용하는 기호 +,-,÷와도 연관된다. 


내 안에 갇힌 나를 꺼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나는 나겠지.

p_165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나의 '주변인'을 다룬다. 자신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담겼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마치 일기장 같다.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도 생겼는데 그때 내 심정은, 주변 사람의 반응은 어땠노라고. 생각은 입 밖으로 발화되지 않고, '나', 그러니까 이태희의 머릿속에만 머문다.


당연하다. 이태희의 관심사는 타인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꼭꼭 숨긴 어린 시절의 아픔을 마주하려고 한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래서 기억과 생각을 쌓으며 자신을 만들어가던 어린 이태희는 플러스(+) 기호로, 나와 내가 아닌 것 혹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혼동하는 지금의 이태희는 마이너스(-) 기호로 그려진다.


생각을, 물건을, 사람을, 일을 정리하고자 이태희가 선택한 건 나누기(÷)이다. 과거의 자신, 그리고 미래의 자신과 현재를 나누어 본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이태희에게 할머니가 남긴 말과 그 의도는 태희가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선택은 오로지 이태희의 것이다. 때로는 오버스럽고, 때로는 예민하고, 때로는 신경질적이고, 때로는 극단적인 이태희. 거칠고 모난 반응이 일어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태희는 어떤 모양새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어떤 상태든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싶어 한다.


이건 이태희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나의 행복을 바라는 건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다. 그러니 러시안 인형을 열고, 열고, 또 열어서 나의 본질을 만나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 본질을 감싼 껍데기도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러니 나는 이미 나였음을 이태희가, 우리 각자가 알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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