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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28. 2022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마법의 유약


내 도자기들은 내가 만든 것이라 작품이라고 부르지, 친한 친구들한테도 선물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겨우 형태만 만들어 놓은 것도 있어서 자세히 보면 바닥은 평평하지 못하고 두께도 일정하지 않다.


정형할 때 굽 칼의 각을 잘 세워서 흙을 깎아내야 하는데 제대로 각을 세우지 못해서 기물의 표면은 시골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때가 많다. 때로는 한 시간이 넘게 정형을 했는데도 매끈하지 못한 표면 때문에 한숨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유약이다. 유약은 마법의 약이었다.

유약은 울퉁불퉁한 기물 속으로 스며들어 표면을 매끈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유약을 바르고 구워져 나온 기물들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가마 속에서도 깨지고 터지는 기물들이 많다는데 그 열기를 견디고 유약과 하나가 되어 나온 기물들은 그대로 작품이다.

내가 헛짓을 한 게 아니구나, 트로피라도 받은 것 같아 만지고 만진다.

아기의 하얀 엉덩이 같은 작품들은 만지면 만질수록 더 반짝인다.


 사랑하면 콩깍지가 낀다고 하던데 난 유약이야말로 사랑할 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콩깍지는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벗겨지지만 유약은 벗겨지지 않는다. 깊이 스며들어 감싸주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 평생을 갈 수 있다.


일기 쓰는 것처럼 일상 속에 유약을 바르는 일을 더해야겠다. 그날의 허물을 감싸고 흉을 돌아봐야겠다.

허물과 흉은 쌓아놓기만 해서는 안된다. 활활 태워야 한다. 태워 버리지 않는다면 인생은 허물과 흉만 쌓인 괴물이 될 것이다.

힘들더라도 감싸 안은 흉과 허물을 태워 없애야 한다. 지지고 볶더라도 없앨 건 없애야 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가끔은 땡그랑거리고 싸우자

맘껏 인생 것들 담아보자


잘 보이겠다고 납 같은 독을 섞진 말자

한때의 광택은 뼛속을 녹일지니

그 독이 사랑이라 착각하지 말자


깨지지도 말자

깨지면

너무 아프잖아


이 나갔다고 버리진 말자

금니처럼 앞으로도 긴 세월

내 사랑은 반짝일 테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마법의 유약 바르고

한 몸으로 살자


              - 소려의 못된 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공방 선생님은 백토에 안료를 섞어 다양한 색깔의 흙을 만든다. 빨주노초파남보, 각각의 색깔을 띠는 작품들이 공방을 가득 채웠다가 사라지곤 한다. 무지개 빛이 사선으로 흐르는 작품들도 있고 검은흙에 별이 점점이 찍힌 작품들도 있다.

오롯이 까맣기만 한 작품들은 그 속으로 깊숙이 나를 빨아들이기도 한다. 그 속을 꿈꾸게 만든다.

매일 다른 우주를 만드는 기분은 어떨까?


내 기물들은 백토로 빚고 난 후  투명한 유약을 바른다. 처음 시작했을 때 그 마음 그대로 백토와 하얀 유약은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색을 섞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고개를 든다. 빨주노초파남보, 그리고 검디검은 까만색까지. 다양한 우주를 만들어 내 사람과 평생을 재밌게 만들어가고 싶어진다. 가끔은 땡그랑거리고 싸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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