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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Sep 21. 2022

사랑의 공식

온전히 타오르다


“기물은 그늘에서 완전히 건조를 시킨 후 400도에서 초벌을 합니다.”

전기 가마가 돌아가고 있는 방은 한증막처럼 더웠다.

“초벌을 하고 난 작품들은 다시 완전히 식힌 후 물 묻힌 스펀지로 골고루 닦아줘야 돼요. 먼지를 완전히 제거한 후에 유약을 발라야 합니다.”


공방 선생님 손에 조교 그릇 하나가 들렸다. 스펀지로 몸을 깨끗이 닦은 조교가 유약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골고루 묻게 잘 돌려주고 얼룩이 지지 않도록 잘 털어줘야 합니다.”

통에서 나온 조교가 유약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마에 넣으면 기물의 유약이 가마 바닥에 들러붙어요. 기물 밑면에 묻은 유약을 닦아내고 재벌을 해야 합니다. 재벌은 1000 도까지 올려야 하는데. 얼마나 뜨겁냐면….”

선생님이 손에 물을 묻히더니 가마 표면에 뿌리셨다. 치지직,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사랑을 알지 못하던 시절,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가 궁금했다.

중학교 가정 시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물과 얼음처럼 온도 변화에 따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물리적 변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화학적 변화라고 한단다.”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표정을 보시던 선생님이 예를 들어주셨다.

“빵을 굽고 나면 온도를 아무리 내려도 빵은 다시 밀가루와 물로 돌아갈 수 없잖아, 그런 걸 화학적 변화라고 하는 거야.”


사랑을 알고 난 후 '좋아해'와 '사랑해'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좋아해'는 물리적 변화, '사랑해'는 화학적 변화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생기면 좋고  헤어진다면 잠시 허전하다가 다시 나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마음의 색깔이 다르고 마음의 무게가 다르다. 뼛속까지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서 예전의 나는 없다. 그게 사랑이었다.


도자기를 성형하고 반건조시켜서 정형을 하고 난 것은 물리적 변화일 뿐이다. 내 손으로 빚고 다듬은 것들이지만 이들은 언제든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약간의 물만 있으면 몸을 녹이고 다시 물기를 빼서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종착지는 흙. 흙은 언제나 여유롭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안다. 기다린다.

하지만 인간은 사랑을 안다.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불을 지핀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사랑의 공식


이렇게 뜨거운 건가요

화학적 반응은 몇 도에서 일어나나요

얼마나 타올라야 당신과 하나 될 수 있나요


이렇게 무서운 건가요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는 없나요

얼마나 녹아내려야 당신에게 갈 수 있나요


사랑 참 촌스럽네요

열기 하나로 인류를 지켜왔어요


           - 소려의 못된 시 '사랑의 공식'


초벌까지는 그래도 쉽게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초벌 한 그릇은 잘 깨진다고 비스킷이라고도 불러요."

선생님 말씀에 바사삭 깨지는 하트가 생각났다. 그건 풋사랑일까?


"유약 발라 구은 그릇은  잘 안 깨지지만 일단 깨지면 엄청 날카롭죠."

유약을 발라 재벌을 하고 난 그릇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인간의 수명으론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리고 깨지면 날카롭다. 온몸을 부숴버린 조각들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눈을 번득거린다.


조용필 님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가 생각난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은 모든 것을 걸어야 사랑이다. 내 마음을 활활 태우고 더 이상 어제의 나로 남아있지 않아야 사랑이다.

사랑의 공식은 너무 어렵다. 아직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지만 매일 어제와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물레를 돌려 모양을 빚고 굽을 깎은 기물들은 가마에서 몸을 데운다. 아직 제대로 된 작품이 되려면 거쳐야 할 일이 많다.

몸을 정갈히 닦고 유약을 바른다. 그리고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열기 속에서 타오른다. 유약과 하나 되어 단단해진다.

그렇게 태어난 작품들은 잘 품어줘야 한다. 제 몸을 녹여 사랑을 한 것들이다. 깨지지 않도록 지켜줘야 한다.



*사진 속 돌 하트는 제가 산책 다니는 길 가 축대 속에 박혀 있는 것입니다. 산책을 할 때마다 축대를 쌓던 기사님은 누구를 생각하면서 이 돌을 박아놓았을까? 궁금해집니다.

때론 하트 돌을 발견하고 빙긋 웃는 기사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론 이 돌처럼 오래오래 변치 않는 사랑을 꿈꾸기도 합니다.


사랑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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