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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Oct 03. 2022

시인의 남편


그 작은 실수가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접시를 만드는 날이었다.

"오늘은 흙이 단단해서 접시 만들기 좋으실 거예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흥분에 선생님 말씀에 담긴 복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긴 인생이 드라마도 아니고 인생의 복선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또 안다고 해도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기에 복선이고 인생이 아닐까?


시작은 좋았다. 흙 반 덩어리를 텅, 물레 위에 올려놓았다. 돌려가며 퉁퉁퉁 내려쳐서 흙을 물레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선생님을 씩, 웃으며 쳐다봤다. 선생님이 오셔서 흙을 잡아 틀어 올려주셨다. 선생님 힘 덕에 조금 말랑해진 흙으로 내리기 올리기를 반복하고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접시 만들기를 시작했다.


일단 일정한 모양으로 올라가는 컵을 만든다. 물을 충분히 골고루 묻힌 후, 전 (그릇의 주둥이 부분)을 펼친다. 바닥 부분부터 천천히 옆으로 벌려줘야 한다. 왼손이 기물의 바깥 부분을 지탱하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컵 벽을 밀어준다. 얇은 흙이지만 중간 높이쯤 올라오면 반항하는 힘이 느껴진다. 그때마다 선생님이 소리를 높였다.

"펴세요, 펴세요."

그리고 "그만~."

물레 위에서는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접시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세 개를 잘 빚어내고 욕심을 부렸다. 흙을 '더, 더'하며 펼쳤다. 그러자 흙은 높이 솟아오르던 분수가 공연시간이 끝났다고 내려앉는 물처럼 축 주저앉아버렸다.

"펼치는 지점과 정도를 잘 느끼셔야 해요. 흙에 따라 펼치는 힘도 달라지니까, 많이 해 보셔야겠죠?"


다시 접시 한 개를 빚고 나니 흙이 바닥을 보였다.

남은 흙 반 덩어리를 가져다 물레에 얹었다. 다시 중심잡기를 해야 하는데 이번엔 선생님 도움 없이 하고 싶었다.

"으쌰!"

흙을 움켜쥐고 올렸다. 역시 전에 썼던 흙보다 단단했다.

'오늘은 혼자서 이 고비를 넘겨보겠어.'

이를 악물고 흙을 올렸다. 버티던 흙이 조금씩 내 손에 감겨오기 시작했다. 다시 내리기. 흙은 잠시 버티다가 그래도 아까보다는 쉽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런 과정을 스무 번쯤 반복하고 나니 흙이 아름답게 고개를 올리고 나를 보며 웃었다.

"잘하셨어요. 드디어 혼자 하셨네요. 오늘 흙이 단단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 칭찬에 들뜬 나는 접시 두 개를 더 만들고 고블렛 잔 세 개를 만들어 흙에게 새로운 형태를 선사했다.


하하하, 뿌듯하게 웃는데 기물과 물레를 닦는 스펀지가 폴짝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벌크업'이 잔뜩 된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을 숙여 스펀지를 주었다.

"우두둑."   

그 소리를 나만 들은 건 아닌가 보다, 아니면 내 얼굴이 하얘진 걸까?

선생님이 나를 걱정스럽게 보며 말씀하셨다.

"제가 주워드릴 걸 그랬네요."


"아, 아니에요."

웃었지만 분명히  내 근육이, 솔직히 말하면 뱃살이 갈비뼈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뒷정리까지 잘하고 수업을 마쳤는데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오른쪽 갈비뼈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니 그 통증은 더 해가고...


다음날부터 난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침대에 누워 있거나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다행히 컴퓨터 자판을 칠 수는 있었다. 앉았다 누었다 일어설 때만 빼면 참을 만했다. 무거운 것을 들지 않고 팔을 들지 않으면 괜찮았다. 제일 힘든 건 재채기. 가벼운 기침에도 가슴은 쩌렁쩌렁 울렸고 갈비뼈를 움켜쥐어야 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 격언을 실천하기로 했다. 모든   일들을 멈추고 침대와 책상에 의지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는데  첩첩산중에 배달음식은 없고 자연스럽게 우리  요리사는 남편이 되었다.


주말 늦은 점심, 남편이 끓여준 우동을 먹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려야, 뭐해?"

"남편이랑 밥 먹고 있는데, 다 먹어 가."

"그럼 설거지는 누가 해?"

착하디 착한 친구는 요즘 몇십 년 동안 참아왔던 집안 일로 남편과 분쟁 중이었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온 몸이 말해주었다.

"어, 내가 갈비뼈를 다쳐서 아무것도 못해."

"왜?"

다행히 이야기는 이 글 앞부분으로 넘어갔다. 친구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나도 며칠 전에 개 산책시키려고 신발 신다가 허리를 삐끗했어. 이틀 동안 회사도 못 나가고 누워만 있었네."

"이틀씩이나?"


그렇게 수다를 이어가는데 '소려야', 친구가 촉촉하게 나를 불렀다.

"웃기지 않니?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던 아픔보다 지금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 보면."


친구는 40대 초반에 암 수술을 두 번 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고 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이 축복이란 건 알겠는데 그래도 가끔은 많이 힘들다."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도 한동안 마음이 출렁거렸다. 친구 생각에 빠져 책상에 앉다가 윽, 갈비뼈를 안았다.

"그래, 지금의 아픔…."

자판을 두드리면서 친구의 말과 마음을 돌아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남편이 부른다.


시인의 남편


밥도 짓지 않고

돈도 되지 않는

글만

글만 짓는 아내를 남편이 불렀어요

식사하세요


살짝 힘주고

된통 아프다

갈비뼈 붙잡는 아내를 남편이 안았어요

아프지 마세요


해드릴 건

아무래도 없고

없어

사슴 같은 눈망울 굴리며

약속합니다


열심히 써서

시인이  게요

당신

시인의 남편

만들어 줄게요


당신의 의사는 묻지 못하겠지만

서방님,

제가 노력해볼게요


     - 소려의 못된  ‘시인의 남편


떴지만 일어나지 않고 머리로 글을 썼다. 일어날 때의 통증을 준비하는 것도 있었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  시대 최고의 빌런 '삼식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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