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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Oct 05. 2022

농담치

웃고 싶어 쓴 글 3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나무향기 님이 인생의 음치, 박치에 대해 글을 쓰고 계시는데

나는 거기에 더해 '농담치'다.

어릴 적부터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친한 친구가 하루는 부탁을 했다.

"소려야, 농담하지 말아 줘. 네가 농담을 하면 웃기는 얘기도 심각하게 느껴지고 분위기도 심각해져."


뭐,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었겠지 했는데 그건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전편 글(시인의 남편 https://brunch.co.kr/@hyec777/339)은 갈비뼈 다쳤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남편만 힘들게 하는 나를 풍자해서 쓴 글이었다. 그렇게 써놓고 글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닐까 싶어 큰 애에게 전화해 물었다. (원래는 아이들에게 내 글을 읽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엄마가 새로운 시도를 해봤는데 너무 가볍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

잠시 후,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많이 다치셨어요?"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글 평가에 눈이 멀어서 안 좋은 소식을 전했다.

"아니, 살짝 삐끗한 거야, 많이 좋아졌어. 근데 글이 너무 가벼운가?"

"가볍긴요! 무겁고 슬프기만 한데."

하긴 엄마가 다쳤다는데 그리고 안 하던 아픈 친구 이야기까지 했는데 속상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를 시인의 남편 만들어주겠다고 했잖아! 웃으라고 쓴 글이야."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내가 바라보는 나와 세상이 보는 나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엄마가 사 오신 가죽 분위기가 나는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수업이 끝나고 노트 정리를 하고 있는데 친하지는 않지만 할 소리 하는 친구가 다가와서 한마디 하고 갔다.

"소려야, 너는 아무리 야한 옷을 입어도 야하지가 않아."

주위에 있던 내 친한 친구들은 나보다 더 심한 축이라 무슨 소린지 몰라 서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옷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이게 야한가?"


남편과 연애할 때였다. 그때는 우리 사귀자 하고 사귀던 때가 아니라 썸인지 연애인지 모르고 만날 때였다. 신문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만나자마자 앞에 있는 맥주를 원샷하고 잔을 탁,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지금의 남편 된 사람이 크크 웃는 것이었다.

"왜 웃어요?" 삐딱하게 물었더니

내 사람 왈 "센 척하는 게 귀여워서요."

난 고민에 빠졌다.

'센 척하는 거 아닌데, 센 건데. 이 말을 해? 말어?'

그래도 남편의 웃음코드를 알아서 신혼 때는 몇 번 써먹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안 먹힌다.


며칠 전 둘째와 셋이서 밥을 먹을 때였다.

"내 글 중에 성형이랑 정형이 있잖아. 어떤 작가분이 두 글만 라이킷을 하고 가신 거야,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의사시더라고."

둘째와 남편이 무슨 소린가 하며 나를 쳐다보다가 둘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의학 관련 글인 줄 알고 들어오셨다가 글이 좋아서 라이킷 하셨나 봐요."

거기에 남편이 말을 보탰다.

"의사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내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뭐 사실이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라는 트로이 공주가 생각났다. 카산드라는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저주를 받았다는데 마음을 잘 안다.

내가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웃어 주지 않는다.

작가님들 중에는 적재적소에 위트를 넣어서 온 마음으로 웃게 해주는 작가님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인생의 핵심도 제대로 '팍팍' 찔러서 온몸을 끄덕이게 하는데.

정녕 나의 위트는 나만의 것인가?


15살 사춘기도 아닌 내가 지금 내 글과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내 속에서 제대로 붙지 못하고 욱신거리는 갈비뼈 때문일까?



*나무향기님의 브런치 "인생 음치의 사소한 인생 튜닝"

https://brunch.co.kr/magazine/tonedeaf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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