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5장 1958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마스터가 제단 위를 왔다 갔다 하며 발에 걸리는 물건들을 걷어차고 있었다. 성난 얼굴로 돌아선 마스터가 마치 선희 옆에 소피아가 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피아라고 소리치면서 눈을 부릅떴다. 선희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잘 자라, 나의 아름다운 아가. 자장자장.”
소피아의 자장가 한 소절이 선희의 주위를 맴돌다 사라졌다.
"내가 그 년 존재를 지워버렸는데. 너는 끝내 기억을 해내는구나!"
마스터의 눈이 질투로 이글거렸다.
“상관없어.”
부들부들 떨던 마스터가 차가운 눈을 선희에게로 돌렸다.
“어차피 그 년 말고도 내 손아귀에는 수집품들이 가득하거든. 그 년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마스터가 눈을 번뜩였다.
“그럼 제 아버지도…?”
선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스터가 잠시 멈칫하다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깔깔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모래알 같은 인생한테 내가 신경이나 쓰겠느냐?”
마스터가 선희를 조롱하듯 쳐다봤다.
“훅 불면 날아갈 먼지 같은 인생에….”
선희가 이를 물고 마스터를 노려봤다.
“그래, 선희야. 분노,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증오를 느껴보렴.”
마스터가 손을 내밀고는 애원하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왜냐고? 넌 사냥꾼이니까… 모래알인 줄 알았던 네가 사냥꾼이란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아야지.”
떨고 있는 선희를 바라보며 마스터가 말을 이었다.
“선희야, 내가 모은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도 알고 있지 않니. 저 방 가득 넘치는 아름다운 인생들. 너도 탐냈잖아. 김 은영처럼….”
김 은영이라는 말에 선희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위해서 바즈데예프와 김 은영을 남겨 놓았잖니? 얼마나 멋진 사냥감들이었는데, 너를 위해서….”
지금도 아쉽다는 듯 마스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며 소리쳤다.
“너도 갖고 싶어 했잖아. 너를 유령 취급하던 모든 인간들을 네 손아귀에 넣겠다고….”
선희의 눈빛이 흔들리자 마스터의 눈이 다시 반짝거렸다.
“선희야, 권력이란 건 외롭지만 짜릿하단다. 모든 사람들을 네 발 밑에 둘 수 있어. 그들의 마음을 얻으려 애쓸 필요도 없어. 알아서 길 테니까.”
따뜻한 바람 한 줄기가 느껴졌다. 촛불이 일렁거렸다. 선희는 바람이 들어온 곳을 더듬었지만 마스터는 자기 말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조선호는? 너희 둘이 힘을 합친다면 더 멋진 사냥꾼들이 될 거야. 어때?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조선호와 함께 평생 원하는 것을 얻으며 살 수 있단다.”
선희가 선호라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나보다 뛰어난 사냥꾼이 될 거야.”
“그래서요?”
“응?”
마스터가 되물었다. 선희가 고개를 들고 마스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요, 마스터. 그래서…, "
선희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차올랐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