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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Oct 05. 2024

마스터

제5부 6장 1958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마스터의 파란 눈동자 위로 한 줄기 날카로운 빛이 칼날처럼 스쳐 지나갔다. 반으로 쪼개진 마스터의 눈 속에서 한 사내아이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탐스러운 은빛 머리칼을 가진 아이의 주위로 끊임없이 같은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혼자 똑똑한 척 구는 농노 새끼 봤어? 친부모를 죽인 사람들이 제 양부모인 것도 모르고 제 양부모가 좋은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바보 같은 녀석. 아, 그 녀석 자기가 입양된 것도 모르나?”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아이를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내 첫 사냥감은 나의 양부모였어.”

  마스터가 자신의 눈을 선희에게 맡긴 채 중얼거렸다.

  “그런데 사냥을 하고 나서야 알았지.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걸….”     

  햇볕이 허물어져 가는 농부의 집 지붕 위로 서걱거리고 있었다. 마차 한 대가 허물어져 가는 집 앞에 섰다. 서둘러 달려오다 마부가 급하게 고삐를 쥔 탓에 말이 앞발을 들며 히잉 소리를 내질렀다. 귀족으로 보이는 부부가 의사를 데리고 서둘러 마차에서 내렸고 농부의 집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있던 늙은 산파가 귀족 부부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귀족 부인이 고개를 돌렸다. 어둑한 방구석. 침대라고 할 수도 없는 짚단을 쌓아 올린 곳에 아기 엄마가 죽어 있었다. 산파에게 다가가 귀족부인이 아기를 안았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더니 입을 쪽쪽 빨았다. 귀족 부인이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부부는 아기와 서로를 번갈아 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귀족 부인은 아기의 엄마에게 걸어가 속삭였다.

  “잘 키울게요. 편히 쉬어요.”     

  “난 사람들을 보면 한눈에 알았지. 그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지. 사람들을 쉽게 이용하고 제거할 수 있었어. 사냥은 언제나 쉬웠지. 그런데 선희야.”

 마스터가 쓸쓸하게 선희를 바라봤다.

  “왜 몰랐을까? 내 양부모가 나를 사랑했다는 걸. 어렸다고 변명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어. 난 타고난 사냥꾼이었던 거야.”     

  사람들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에서 은발 머리 남자아이가 한 곳을 쏘아보고 있었다. 귀족부부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남편 뒤를 따라가던 여자가 아이를 돌아보았다. 두리번거리던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아이는 여자의 입을 읽을 수 있었다. 매일 여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우리 아가, 몸조심해라.”     

  “어쩔 수 없었어. 나에겐 너처럼 사냥된 인생들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은 없었거든.”

  마스터는 그날 그곳에 서 있던 어린아이 같이 몸을 떨었다. 그러다 마스터가 갑자기 고개를 흔들며 떠들었다.

  “걱정하지 마. 입을 함부로 놀린 놈들은 내 손으로, 아니, 내 손도 쓸 필요가 없었지. 매일 죽게 해달라고 빌도록 가장 처참하게 살려놓았으니까.”

  마스터가 여덟 살 난 아이처럼 자랑스럽게 말하고는 선희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선희는 마스터의 눈동자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접고 앉아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머리를 들었다. 아이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눈물만이 가득 고인 텅 빈 눈동자에 선희가 맺혔다. 선희가 아이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놀라 말했다.

  “아, 마스터. 당신의 첫 사냥감은...”

  선희가 아이의 눈을 다시 깊이 들여다보았다.

  “마스터…, 바로 당신이었군요.”

  마스터가 애써 선희를 노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파란 눈 속의 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일어서고 있었다.


  선희는 성당 밖으로 나갔다. 성당 앞 가득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크고 작은 제각각의 촛불들이 줄 지어 있었다. 마지막 촛불 너머로 동네 불빛이 눈 안에 들어왔다. 그때서야 선희는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촛불들이 밝혀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반….”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이반의 방문은 열려 있었지만 이반은 보이지 않았다. 선희는 2년 전 최 선생의 은수저가 놓여 있던 선반 밑에서 굴러다니던 양초들이 생각났다.

  촛불들이 하나둘씩 꺼져가고 있었다. 하늘 위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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