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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려 Jan 20. 2022

예민과 '진상' 사이

예민 점주 이야기


작은 비닐하우스 하나를 이웃집으로 옮겼다. 

남편과 그 집 아저씨가 종일 힘을 합쳤다. 바람은 찼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기둥을 세우고 비닐을 씌웠다. 배가 고플까 싶어 만두를 삶아 이웃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남자 둘이 작은 비닐하우스를 두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 집 아저씨가 아는 척을 하시며 한 말씀하신다.

"제수씨, 힘들겠어요. 예리한 남편이랑 살아서."

나중에 들으니 나사를 잘못 조여서 그렇게 했다가는 기둥 무너진다고 남편에게 한 마디 들으셨단다.


술을 한 잔 들이켠 아저씨가 또 한 말씀하신다.

"동생이 정말 예리해. 요만큼의 오차도 허락을 안 하더구먼."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비 새고 무너진다니까요."

남편은 이제 겨우 귀촌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모든 일에 꼼꼼한 성격이다.

"예리해, 예리해." 

일과 술에 취기가 올라오는지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예민한 거예요? 예리한 거예요?"

내가 무심결에 물었다.

"당연히 예리한 거지."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남편이 쓱 내 얼굴을 살피더니 물었다.

"예민한 거랑 예리한 거랑 차이가 뭔데요?"

"예민한 거는 좀 부정적인 거고 예리한 건 일이 명확하다는 거지." 

"우리 집사람한텐 예민하다고 그러셨잖아요."

남자 둘이 눈을 꿈벅거렸다. 둘 다 그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나에게 지어준 별명이 하나 있다. 

"예민 '소려'."


해가 산자락을 기웃거렸다.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예민한 건 사실이잖아."

괜히 민망해져서 한 마디를 던지고는 빛을 잃어가는 해에게 고개를 돌렸다. 

궁금해졌다. 내가 예민해서 저 아저씨한테 피해를 준 게 있었나?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은 꼬리를 자르지 못했다. 

"예민한 거랑 예리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예민한 것은 부정적인 것이고 예리한 것은 긍정적이라는 것일까? 그 차이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타인한테 피해를 주느냐 아니냐?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그럼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문득 사회적 힘의 차이가 아닐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잘못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예민하게 왜 이래? 좋은 게 좋은 거지."

그 좋은 건 누구한테 좋은 것인가? 

자기 맘대로 굴지 않는다고, 자기한테 복종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당신 좋자고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어느 순간부터 예민하다는 것이 나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일까? 

사전을 찾아봤다.

‘예민하다’는 첫째,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둘째,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셋째, ‘어떤 문제의 성격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에 있다.’  (출처-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지나치게'와 세 번째 '그 처리에 많은 갈등이 있는 상태’ 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빠지는 것이 단지 예민해서일까?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는가?


카페에서 투샷을 주문했는데 원샷만 내려 줬다고 직원 얼굴에 커피를 뿌리는 사람이 있었다. 음식이 식었다고 사장 주인에게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예민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성이 바르게 성립되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들일뿐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예민하다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들은 예민한 게 아니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들, 소위 '진상'일 뿐이다.

 

물론 예민한 사람들 중에서도 '이상한 진상'들이 생길 수도 있다. 예민한 사람들 중에도 미성숙한 인간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예민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과 예민한 사람들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예민한 사람이라고 묶어버려서는 안 된다. 


예민한 사람들은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려 애쓴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사람들 한마디에, 눈빛 하나에 쉽게 상처를 입기 때문에 더욱 숨을 죽이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저런 '진상'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식당에 갔는데 테이블이 더러우면 닦아달라고 말해야 한다. 

그럴 때 사장님이나 직원의 반응은 극명하다. 제대로 닦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달려와 닦아주는 사람이 있고 괜히 깨끗한 척한다며 눈을 흘기는 사람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인지라 말하는 방법에 따라 변수가 있겠지만 당연한 것을 요구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민하다고 눈치만 보고 살아서는 안된다.

"예민한 게 뭐 어때서요. 옳은 것을 옳다 하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데..."


누군가 물어볼 수 있다.

"예민하신가 봐요?"

그 사람한테 혹시 잘못을 했다면 정신 차리고 사과를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했네요."

 그 사람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빈정거리는 거라면 이렇게 대답해줄 것이다.

"네, 제가 예민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판단이 잘 돼요. 분석력도 빠르고요. 눈을 보면 속이 훤히 보이거든요."


세상 물을 흐리는 사람들을 '예민한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미성숙하고 이상한 진상들'일 뿐이다.


예민한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예민하다는 핑계로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남들에게 피해를 줘서도 안 된다. 예민하다고 자신을 들볶아서도 안 된다. '진상'들의 죄를 뒤집어 써서는 더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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