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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Nov 01. 2023

저질체력 인간, 러닝에 도전하다!

'안 움직여 인간'의 운동 입문기


체력과 근력은 꾸준한 운동으로 늘릴 수 있다. 이건 마치 사과를 던지면 결국엔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든지, 고양이 뱃살을 조물거리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명백한 진실이다. 그러나 때로 어떤 진실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법이다. 내게는 '저질체력 탈출'이 꼭 그런 거였다. 분명히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절대 만날 수는 없는 미지의 무언가.




저질체력에 관한 고찰


저질체력이란 무엇인가? 흔히 체력의 질이 심히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일 때 쓰이는 말이다. 지하철 계단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저질체력 끝판왕의 입장에서 조금 더 자세히 해석해 보자면, 사실 저질체력은 일시적인 상태가 아닌 정체성 그 자체다.


이를테면, "코로나에 한번 걸리고 나니 체력이 훅 떨어졌어. 몸이 예전 같지 않네." 이런 건 상태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 하지만 원래도 체력이 바닥이라 후유증을 겪을 일도 없다면? 이미 모든 삶의 사이클이 쓰레기 같은 체력에 맞춰 돌아가게 되었다면? 이건 일시적인 상태의 문제가 아니다. 저질체력이 이미 나의 주된 정체성 중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저질체력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막강해서, 꽤 많은 호불호를 관장하고 있다. 날씨 좋으니 산책하자는 말에 걷다 보면 더워서 진이 빠질 거라는 이유로 거절을 표한다거나, 건강 생각할 겸 계단으로 가자는 제안에도 "흥, 당치않은 소리. 내 정신건강에는 해로워."라며 꿋꿋하게 에스컬레이터를 고집하고, 30분 넘게 줄을 서야 하는 유명 맛집에 가기보다는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말하게 만든다.




나도 달릴 수 있는 사람일까?


체력을 늘리기에 달리기만큼 좋은 건 없다지만, 과도한 '저질체력 이슈'로 인해 달리기는 내 삶에서 퇴출된 지 오래였다. 굳이 예외를 두자면 지하철이나 버스에 급히 타야 할 때나 강아지를 산책시킬 때 정도일까? 그러나 6개월이라는 내 인생 최대치의 운동 경력을 쌓고 나니, 생전 처음 해보는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나도 달리기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달리기를 하면 건강해지는 건 물론 집중력도 좋아진다는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이 들어왔다. 심지어는 마치 마약이라도 한 듯 머리가 맑고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는 말도. 정말 그런 것인지, 달리기에 한번 입문한 친구들은 빠져나올 줄 모르고 계속 달렸다. "너도 한번 달려봐, 얼마나 상쾌한데!"와 같은 말을 하면서.


문득, 친구가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 "동네 공원에 가면 귀에 에어팟 꽂고 터벅터벅 걷다가 갑자기 뭔가에 홀린 듯 좀비처럼 뛰는 사람들 있어. 그거 다 런데이 하는 사람들이야." 친구는 그들을 일명 '에어팟 좀비'라고 불렀다. 어쨌거나 얼마나, 어떻게 뛰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달리기 어플에서 구성해 준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초보자를 위한 코스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친절한 설명은 덤이었다.




내가 달리게 될 줄은 몰랐어


친구의 추천에 용기를 얻은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달리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자주 신지 않아 뻑뻑한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기능성 의류가 퍽 낯설었다. 어디를 뛰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학창 시절부터 자주 가던 석촌호수로 향했다. 아무래도 익숙한 곳을 뛰는 게 낫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혼자 하면 도중에 포기할 게 뻔하니, 동지 한 명을 만들었다. 같이 뛸 사람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절대 움직이지 않던 내가 "같이 뛰러 갈래?"라고 말하자마자, 친구가 놀라워하며 뛰쳐나온 것이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에어팟 좀비들'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석촌호수에 도착하니 이전과는 달리 모든 게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벚꽃을 보거나 롯데월드에 갈 때나 와봤지, 단 한 번도 운동을 하기 위해 온 적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목적을 달리 한 채 도심 속의 자연을 둘러보자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평일 저녁임에도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내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 숨을 쉬는 동안에도, 움직이기 싫다는 이유로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미루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이렇게나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안 움직여 아니고, 덜 움직여 인간 정도


처음 도전한 초급자용 코스는 1분 달리기와 2분 걷기를 반복하는 인터벌 러닝이었다. 나보다 체력이 좋은 친구는 쉬지 않고 1분을 달려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지만, 나는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직... 헉, 1분... 허억- 안 지났어?" 이제 수영을 6개월이나 했으니 달리기에 도전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이지 오산이었다. 한평생 누워서 꾸물거리기만 하다가 겨우 6개월 움직여놓고 이렇게나 자신만만해했다니!


그러나 달리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 내 몸의 변화를 조금씩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인터벌을 겨우 두 번 정도 반복하고서 헉헉대며 가로등을 붙잡고 멈춰 섰을 게 분명했다. 1분 동안 전력질주를 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고, 마음만 앞세우다 발목이나 삐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천천히 움직였던 어떤 날의 기록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뛰다 보니 숨이 차는 느낌에도 조금씩 익숙해졌고, 호흡도 조금씩 안정적으로 변했다. 분명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움직일 수는 있었다. 20분이 지나자, 머리카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번의 인터벌을 반복한 끝에 겨우겨우 호수 한 바퀴를 도는 데 성공했다. 포기하지 않고 초급자 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약소하겠지만, 오랜 시간 '안 움직여 인간'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엄청난 도약이었다. '내게 필요한 건 근력이 아니라 지성'이라고 우겨대던 시절도 조금씩 저물어갔다. 비록 '운동 좋아 인간'이나 튼튼한 인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안 움직여 인간에서 덜 움직여 인간으로 발전했다는 건 큰 성과였다.


저질체력은 탈출 불가능한 나의 운명이라고, 이제는 이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고 아주 오랜 시간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가쁜 숨으로 석촌호수를 달리며, 이 끝없는 저질체력의 굴레에도 벗어날 구멍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그 존재를 눈치채기도 힘들지만, 조금씩 넓혀가면 그만이었다. 뻣뻣한 운동화에 발가락을 욱여넣을 정도의 의지력만 쥐어짜 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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