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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Nov 07. 2023

'건강한 삶'이란 이런 거였군요?

'안 움직여 인간'의 운동 입문기


"있잖아, 인자한 할머니가 되는 게 내 꿈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재력과 넘치는 체력이 있어야 해."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하며 킬킬대던 걸 기억한다. 자고로 여유와 인자함이란 통장 잔고와 코어가 둘 다 튼튼할 때 진정으로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며, 슬프게도 지금의 나는 두 가지 중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아무래도 통장 잔고는 내 마음처럼 불어나지 않을 모양이지만, 적어도 체력이나 코어는 할머니가 되기 전까지 조금씩 준비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


수영을 배우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됐다. 나의 몸뚱이는 분명 세상에 출하된 지 25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기름칠을 하지 않고 침대 위에 널브러진 세월이 워낙 긴 탓에 격하게 삐걱거렸다. 25m 레인을 쉬지 않고 왕복하고 나면 여전히 숨이 턱끝까지 찼다.


반면 나와 같은 상급반 레인에 있는 한 60대 회원은 나보다 적어도 5배는 좋은 체력을 자랑했다. "나는 안 쉬고 10번도 거뜬히 왔다 갔다 해! 속도가 안 나서 문제지, 체력 하나는 좋거든!" 어릴 적부터 꾸준히 운동을 한 것은 물론, 지금도 주 5회 수영장에 출석하는 게 비결이라고 했다.


그 편안하고 가뿐한 호흡을 보고 있자면 경이롭기까지 했다. 넘치는 체력 덕분인지, 그는 항상 다정하고 인자했다. 누군가의 수영복 끈이 꼬여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 풀어주었고, 수영장 회원들의 대장 역할을 하며 모두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정말이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60대임에도 탄탄한 체력과 근력을 자랑하는 그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멋진 몸까지는 아니더라도


운동을 시작한 지 10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나는 거울 속 내 몸을 보며 조금 실망했다. 그간 열심히 운동을 했으니 살이 빠지든 근육이 붙든 무언가 변화가 생길 줄 알았는데 겉보기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살이 더 찐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거지만, 그건 다 몸이 아픈 탓이었다. 꾸준히 운동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인해 체중이 도리어 불어버린 것이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해서 나 혼자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신기한 일이다. 속상해하기만 했을 뿐 때려치우지는 않았다는 게. 매년 새해 목표에 운동이라고 적었으나 1월 4일쯤이면 그 사실을 깨끗하게 잊어버리던 나, 15분짜리 홈트 영상을 켜놓고서 5분 만에 헉헉대며 정지 버튼을 누르던 나를 생각해 보니,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잠깐 걸을까, 우리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며 그간의 노력이 더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좋지만, 사실 도시 곳곳을 살펴보는 데는 튼튼한 두 다리만 한 이동수단이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난 몇 번의 여행에서는 늘 부족한 체력이 짐이 됐다. 걷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져서 중간중간 카페에 앉아 쉬어야 한다거나, 하루에 만 보를 겨우 걷고 밤이 되면 쓰러져 잠드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매일 12km씩 걸어 다니는 것은 기본이요, 어떤 날에는 3만 보 가까운 걸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항상 지도로 최단 거리를 검색해 움직이곤 했는데,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런 말을 던지게 됐다. "저쪽 방향으로 걸으면서 구경해 볼까?"


그렇게 나는 샌들 밑창이 산산조각 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지도만 보고 다녔다면 절대 다다를 수 없었을 작고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우연히 발견한 서점에 들어가 그림책을 샀다.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용기와 체력, 그 작은 차이가 내 여행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비록 쩍 갈라지는 등근육이나 탄력 넘치는 팔을 갖지는 못했지만, 나는 분명 건강해졌다. 하루종일 글을 쓰느라 굽었던 어깨도 아주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버스를 잡기 위해 전력질주를 해도 폐가 튀어나올 것처럼 숨이 차지 않는다. 건강한 삶이란 어떤 걸까, 오래 지녀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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