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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Oct 17. 2023

'누워있는 것'도 재능이었다니!

'안 움직여 인간'의 운동 입문기


내 근력과 체력은 약하다기보단 '없다'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땅에서는 언제나 느릿느릿 밍기적거리기만 했다. 코어 근육? 물뚜껑도 못 따는 내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바른 자세는 사치요, 하루에 3천보나 걸으면 다행이었다.


가끔은 누워만 있는 내가 너무 게으르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누울 수 있는 기회는 도저히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항상 누워있던 내게도 희망이 찾아왔으니, 나의 '누워있기'를 재능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땅보다는 물이 잘 맞아


이렇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나에게, 수영은 신세계였다. 중력을 받아 축축 늘어지던 몸이 부력의 도움을 받으니, 훨씬 자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바로 '힘 빼기'다. 바른 자세로 발을 차고 팔을 휘젓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몸에 힘을 뺄 줄 알아야만 잘 뜨고 잘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내 전문이었다. 나는 힘주는 걸 못하는 거지, 가만히 있는 건 제일 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능은 배영을 배우며 더더욱 빛을 발했다. "자... 조심히 물에 힘을 빼고 누워보세요. 물에 뜨는 감각을 익힐 거예요." 나는 평소에 하던 대로 벌러덩 누웠다.


이대로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누워있는 게 내 기본값인데, 힘 빼고 눕는 걸 못할 리가 없었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해!" 그렇게 나는 선생님을 놀라게 하며 하루 만에 배영 진도를 끝내버렸다. 그간의 와식 생활이 헛되지 않았음을, 수영장에서 무한 칭찬을 받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눕는 것도 어떠한 측면에서는 재능이었던 거다! 




평영, 넌 나에게 좌절감을 줬어


그러나 배영으로 의기양양해진 마음은 평영을 배우는 즉시 차갑게 식어버렸다. "다리를 쭉 벌렸다가, 힘차게 차고- 다시 모으세요!" 선생님은 성의껏 나를 가르쳤으나 그 열정에 비해 습득 수준은 처참했다. 자유형과 배영은 평소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평영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형태의 움직임이었다. 나의 정돈되지 않은, 자유로운 발차기는 선생님을 혼란스럽게 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얼추 자세는 흉내 내게 되었으나, 그 속도는 개헤엄만도 못 했다. 가끔은 내가 계속 제자리에 있는 건가 싶어 두리번거리며 안전요원 선생님의 의자 위치를 확인하곤 했다. 한참을 발버둥 쳤는데도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될 때면 꽤 속상했다.


처음에는 모두 함께 못했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들은 하나둘씩 빠르게 치고 나갔고, 나 혼자 느릿느릿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져서 돌아야 하는 수영 강습의 특성상 앞사람이 멀어지면 항상 불안하고, 뒷사람이 다가오면 늘 조바심이 났다. 개구리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올챙이로 남은 기분이었다.




수영을 배우는 이유가 뭐였더라


왜 나만 안 되는 걸까? 몇 차례 잠수해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살펴본 끝에, 한 가지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물속에서 다리를 빠르게 차고 다시 모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근력이 필요했는데, 내게는 그 최소한의 근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침울해진 나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평영은 오래가기 위한 영법이지, 빨리 가기 위한 영법은 아니에요. 혹시라도 물에 빠졌을 때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 이동할 정도면 되는 거죠.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그런 위로를 듣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수영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내게 수영은 물속에서도, 땅 위에서도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스킬을 하나 더 늘렸다고 생각하면 그만일 뿐,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는 거였다.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고치자, 놀랍게도 오히려 속도가 더 빨라졌다. 부담감이 나를 물속으로 끌어내렸던 모양이었다. 내가 운동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니! 그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으니까.




수영을 배우며, 나만의 즐거움을 하나둘씩 늘려갈 수 있었다. 가끔은 수영 강습이 끝난 뒤 사람이 없는 빈 공간을 찾아 멍하니 누워있곤 했다. 물에 둥둥 떠있으면 마치 침대에 폭 안긴 듯 편안했다. 두 귀가 물에 잠겨 온갖 소리가 낮게 울리는 그 감각도 좋았다. 아무리 힘든 영법을 배우더라도, 그 끝에는 편안하게 누워서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역시, 내게는 누워있는 게 가장 잘 맞았다. 땅 위에서도, 물 위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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