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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교 Oct 24. 2023

수영을 잘하고 싶었던 것뿐인데요!

'안 움직여 인간'의 운동 입문기


지하철 계단을 오를 때 헉헉거리지 않고 싶다. 혹시나 물에 빠지게 되었을 때 죽지 않고 싶다. 분명 그렇게 단순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수영이건만, 배우면 배울수록 욕심이 났다. 자유형과 배영을 마쳤으니 이제 평영도 끝내야지, 어쩌면... 접영에도 도전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나는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깊은 열정과 좌절의 늪을 향하여!





접영이라는 사치


수영장에 가보면 가끔씩 나비처럼 날아올라 물속으로 들어가는 영법을 선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바로 접영이다. 접영은 네 가지 영법 중 체력적으로도 가장 힘들고, 동작을 익히기도 제일 어렵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평영처럼 멀리 갈 수도, 배영처럼 편안하게 갈 수도 없다.


그러나 접영에는 다른 어떤 영법에서도 누릴 수 없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니, 그건 바로 엄청나게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접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멋진 무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접영으로 레인의 끝에서 끝을 가로지르는 회원을 발견할 때면 늘 넋을 놓고 구경하게 된다. 접영은 특히나 수영 초보들에게 꿈같은 존재다. 어려운 만큼 더 하고 싶고, 안 되는 만큼 더 갈망하게 되는!




숨 참고 뻣뻣 Dive


접영을 처음 배우던 날, 당황스러움을 감출 기색이 없었다. 물속을 가로지르는 웨이브는 어떻게든 따라 해보겠는데, 팔동작이 죽어도 되지 않았다. "팔을 당기고, 벌렸다가- 힘차게 물을 미세요! 바로 다시 당기고..." 선생님의 설명이 외계어처럼 들렸다. 워낙 근력이 부족한 탓에 물속에서 팔을 빠르게 당기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출발!" 이건 마법의 단어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뒷사람이 있으니 일단 출발. 그리고 이내 나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내가 멋진 웨이브를 선보이는 대신, 활어처럼 빳빳하게 튀어올라 그대로 수면 위로 철썩 내려앉아버렸다는 걸. 이런, 모든 걸 동시에 고려하려 노력했더니 뇌-몸 연결구간에 정체가 생겨 뭔가 심각한 오류가 난 모양이었다. 그냥 각목 같은 자세로 '숨 참고 뻣뻣 Dive'를 해버린 것이다.


"선생님, 팔 동작을 생각하면 웨이브가 안 되고, 웨이브를 생각하면 팔 동작이 안 되고, 둘 다 신경 쓰려고 하면 자꾸 뻣뻣하게 수면 위로 철썩 떨어지게 돼요..." 선생님은 나의 자유분방한 동작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곧 인자한 스승의 자세로 돌아가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갈수록 나아질 거라고 답해주었다.




걸음마처럼 차근차근


접영을 배우고 있자니, '어린 시절 걸음마를 떼는 게 꼭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수없이 넘어지며 한 걸음을 떼듯이, 수없이 물을 먹으며 겨우겨우 동작을 하나씩 배워갔다. 자유형을 처음 배울 때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접영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코미디영화가 필요 없었을 게 분명했다.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스탠딩코미디라면, 내가 하고 있는 건 스위밍코미디정도 되는 걸까. 그러나 겉보기에 어떻든 간에 내 몸은 전쟁 중이었다. 근육 하나 없는 팔은 그만 좀 휘둘러대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수면 위에서 숨 쉴 시간이 부족해 폐에서는 거의 골룸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생님은 수강생들의 참혹한 상태에 한숨을 내쉬었다. 양팔 접영을 가르치는 건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는지, 강습의 방향을 바꾸었다. "한팔접영부터 해볼게요. 웨이브에 더 신경 쓰면서-" 몇 번의 각목 다이빙을 거친 뒤 한팔접영을 꾸준히 연습하자, 드디어 다시 물살을 가르는 웨이브가 가능해졌다.




하면 된다는 당연한 진리


구렇게 같은 진도를 반복하기를 몇 주. 어느덧 나도 더듬더듬 접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비록 수면이 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가오는 탓에 무언가에 쫓기듯 팔을 휘저어대긴 해도, 멋지게 날아오른다기보다는 얼떨결에 물 위로 떠오른 듯한 포즈로 나아가긴 해도!


몇 주가 더 지나자, 25m 완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접영은 자유형이나 배영, 평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역동적이어서, 레인의 끝에 다다르면 너무 힘들어 한참을 쉬어야 했다. 그래도 물을 먹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진리를 찾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중 한 가지는 몸소 터득하게 된 듯하다.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하다 보면 된다는 것.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될 때까지 하면 결국에는 된다는 것. 근육 하나 없어 오렌지주스 뚜껑도 못 따던 내가 접영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수영을 마치고 샤워장으로 들어가던 길, 안전요원 선생님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접영 폼이 엄청 늘었던데요?" 각목 다이빙부터 시작된 나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계셨던 거다. 내 스위밍코미디의 첫 번째 관객이랄까. 나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라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접배평자의 날'이 올까요?


수영장에 기웃거린 적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 접배평자.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의 순서대로 헤엄치는 걸 말한다. 그러나 사실 수영인 사이에서는 접배평자가 '어야 할까? 워도 안 늘고, 생 안 될 것 같아서, 괴감 든다'의 줄임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접배평자를 실행하려면 네 개의 영법을 다 익혀야 하는 데다, 루틴을 한 번만 돌아도 최소 100m를 쉬지 않고 가야 하는 셈이니 초보들에게는 넘기 힘든 산이다.


하루는 강습이 없는 날 자유수영을 갔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접영을 배운 기념으로, '접배평자'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 자신에게 혼쭐이 났다. 접영으로 25m, 배영으로 25m를 가고 나니 몸이 파업 선언을 한 것이다. 심장이 아주 선명하게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미쳤어? 당장 벽에 매달려서 3분 쉬어!"


아무래도 접배평자의 날은 당당 멀었군. 숨을 헐떡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날이 오지 않을까? 비록 헐레벌떡 우당탕탕 우스꽝스러운 자세지만, 꿈도 못 꾸던 접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당장 할 수 없다고 해서, 영영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물속에서 속도가 나기 시작하자 조금씩 재미가 붙었다. 침대에서 현관까지의 거리는 아직도 너무나 멀게 느껴지지만, 물에 처음 발을 집어넣는 건 여전히 참 힘든 일이지만, 그 번거로움을 넘어서면 어느새 손을 모아 물살을 가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멋진 접영으로 수영장을 가로지르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머리에 맺힌 물기를 탁탁 털고서 수영장용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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