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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을 알아도 빙 둘러 걷는다

이토록 황홀한 경로 이탈

by 송혜교




[내지] 듣는 도시.gif



처음 만난 세계

이탈리아는 나의 첫 유럽 여행지였다. 페이스북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시발점이었다. 로마의 아름다운 밤거리. 나는 오직 지구 반대편에 닿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열일곱부터 돈을 모았다. 빵도 팔고 전단지도 돌렸다. 가장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작은 캐리어에 짐을 꾹꾹 눌러 담아 떠나기로 했다.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오래 꿈꿔온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실현하려니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짐을 꾸리고, 부치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챙길 것이 수없이 많았다. 홀로 낯선 나라로 향하기 위해 나는 지난 18년간 쌓아온 용기를 총동원해야 했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호텔로 찾아가는 길, 작은 바퀴가 돌에 부딪히며 무자비한 소음을 낸다. 세상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인간이 된 것 같은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는 은근슬쩍 캐리어를 들어 올리며,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길 위에서 나처럼 소란을 피웠을지 상상해 본다.






오렌지빛 거리가 전부 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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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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