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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이토록 황홀한 경로 이탈

by 송혜교



[내지] 듣는 도시.gif



반짝이는 첫사랑


내가 첫사랑에게 고백했을 때, 그는 단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곧 런던으로 떠나야 해.” 언제 돌아올지 정해진 바가 없으니, 애인을 사귈 때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아주 괘씸했다. 나는 그가 영국이 아니라 볼리비아나 마다가스카르로 떠난다고 해도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의자에 앉은 그를 발견한 순간 보석이라도 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나를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날렵한 콧날과 부드러운 목소리가 좋았다. 노트 속 내용에 집중할 때면 짙어지는 미간이나 언제나 단정하게 정리된 셔츠 깃도 좋았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몰랐다. 그를 짝사랑하는 몇 년 동안 내 마음은 지구를 몇 바퀴는 거뜬히 돌만큼 길어져 있었다.


고백을 거절당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마음도 시렸다. 나는 괜히 코를 훌쩍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휴대폰에 익숙한 이름이 뜨자,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 통화가 끝나면 기필코 이 번호를 차단해 버리겠다고 결심하며 전화를 받았다. 사실은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곳까지 널 찾아왔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혹시 나를 기다려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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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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