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황홀한 경로 이탈
나의 첫 여행지는 제주도였다. 사람마다 첫 여행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오롯이 나로서 움직였던 순간을 시작이라 부른다. 관광버스를 타고 불국사며 천마총을 오가던 수학여행도,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발을 굴러대던 가족여행도 좋지만, 직접 번 돈과 직접 세운 계획을 양손에 쥐고 떠난 여행만큼 의미 있는 것은 없으니까.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응당 돈이 필요하다. 나는 용돈을 받지 않는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꾸준히 돈을 모으기로 했다. 시골에 사는 청소년에게 일자리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부단히 이력서를 돌린 끝에야 빵도 팔고 커피도 나를 수 있었다.
막상 일을 구하고 보니, 취직보다 더 어려운 것은 출퇴근이었다. 나는 하루에 세 번 마을회관 앞을 지나는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가, 가끔 일이 어그러지면 점장의 차를 얻어 타고 퇴근했다. 우리 동네에서 면허 없는 미성년자가 남의 차를 얻어 타는 것쯤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르바이트 공고에 ‘출퇴근 픽업 가능’이라고 적어놓는 가게가 여럿 있을 정도다. 다만 나의 경우 그 값으로 점장, 즉 건물주의 아들이 던지는 추파를 견뎌야만 했다. 그는 세상에 거리낄 게 없는 인간이었고 그 무렵 나는 ‘효과적으로 박치기하는 법’ 같은 것을 종종 검색했다.
그렇게 시간과 인내를 들여 번 돈은 천 원짜리 한 장마저 천금 같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여행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목적지는 제주도. 홀로 육지를 떠날 용기는 부족해서, 친구 둘을 구해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타 보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때 입었던 옷이나 그날의 날씨마저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진짜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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