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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이야, 훔친 듯이 달려

이토록 황홀한 경로 이탈

by 송혜교


[내지] 듣는 도시.gif


어디에 닿을지도 모른 채


생각을 뱉으면 말이 되고, 말은 씨가 된다. 한국을 떠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무렵,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이상한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떠나고 싶다. 이미 지구 반대편까지 떠나왔으면서 또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행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상상이 현실이 될 여지는 차고 넘친다. 나는 여행메이트 M에게 슬쩍 말을 던졌다. “다음 주에 여행 다녀오는 건 어때. 그냥 며칠 정도.” M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어디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건 안 정했는데.


우리는 나란히 앉아 구글맵을 마구 뒤졌다. 지구본이 있었다면 직접 돌려보았을 것이다. 그리 멀지 않으니까, 스페인에 갈까? 벨기에야말로 여기서 금방이지. 몽생미셸도 많이들 가잖아. 그런 말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면서.


비장하게 말을 꺼낸 것이 무색하게도, 두 시간이 흐르도록 결론이 안 났다. 우리는 애초에 무계획형 여행자가 아니었으므로. 모든 곳에 가고 싶어 하다가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때 M이 물었다. “그래도 어디든, 가는 걸로?”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떠나는 걸로. 어디에 닿을지도 모른 채.






곱씹을수록 달콤한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침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떠올리게 되는 꿈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 사이를 달리는 꿈. 쭉 뻗은 도로는 누군가 일부러 비워두기라도 한 듯 고요하고, 나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른다. 신이 나서 발을 구른다. 곱씹을수록 달콤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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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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