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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너진 마음으로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거든

이토록 황홀한 경로 이탈

by 송혜교



[내지] 듣는 도시.gif



눈물 나게 서늘한 홍콩


처음 그 집에 들어선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집안이 이상하리만치 서늘했다. 마치 오래 비어 있던 집처럼. 원인은 모두 나의 통장 잔고에 있었다. 가뜩이나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인데 숙박비라도 좀 아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를, 그것도 두 번째로 저렴한(가장 저렴한 곳에 묵기엔 찝찝했으므로) 숙소를 예약한 것이다.


집안 가득한 냉기에 이가 덜덜 떨렸다. 나는 딱따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가진 옷을 죄다 꺼내입었다. 소파도, 테이블도, 침대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집주인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온 답은 아주 간단했다.


“홍콩의 아파트는 원래 난방이 안 돼요. 난로도 없어요.”


이 외에도 수난은 계속되었다. 샤워기 헤드가 고장 나 호스를 손에 쥔 채로 씻어야 했고, 변기 커버마저 말썽이라 제대로 앉을 수조차 없었다. 지금껏 여행을 다니며 열악한 숙소를 여럿 경험했지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곳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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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할 일은 매일 밀려왔다. 나는 추위에 곱은 손으로 열심히 자판을 누르고, 하루치의 글을 써냈다. 발끝이 오그라드는 추위에 한참을 뒤척거리다 겨우 잠에 들었다. 눈물 나게 서늘한 홍콩에서의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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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말하고 교육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열다섯에 중학교를 자퇴했고, 스물다섯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한겨레에 칼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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