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에 빠진 91년생의 커리어맵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단, 소속 없이 자신을 설명해 주세요!
11년 차 스타트업 잡부, 91년생 노향정입니다! 첫 커리어를 스타트업에서 시작했고, 지난 10년간 6곳의 스타트업에서 일했어요. 미디어, 커머스, 커뮤니티, SaaS, 농업 등 도메인도 다양했죠. 직무도 꼭 하나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에요. 회사가 필요로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맡습니다.
덕분에 콘퍼런스 기획, 앱 기획, 프로덕트 매니저, CS, 운영, 사업전략 등 아주 다양한 일을 경험해 왔어요. 저 자신을 '스타트업 잡부'라고 소개하게 된 배경이기도 해요. 이러한 경험을 살려, 최근 농업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Q. '스타트업 잡부'의 학창 시절이 궁금한데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셨다고요?
공부를 열심히 했다기에는 양심에 찔리는 부분이 있네요…. 겸손한 건지, 오만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공부 말고 다른 무언가를 미친 듯이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른 재능이 눈에 띄지 않아서 공부한 거죠. 결국 포항공과대학교에 입학했고요.
여기까지만 읽으면 좀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저희 학교는 1학년 전원이 전공과 상관없이 기초 필수 과목들을 듣거든요. 입학하자마자 제 능력의 한계를 마주했어요. 포항공대는 머리 좋은 수재들이 모인 대학교잖아요. 저는 생전 처음 배우는 이론인데, 과학고를 나온 친구들은 고등학생 때 이미 선행학습으로 다 배우고 온 거예요.
매일 300쪽씩 진도를 나가고, 안 그래도 어려운 내용을 원서로 봐야 하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밤새워 공부해도 전날까지 술 마시고 온 친구들보다 점수가 낮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어떻게든 공부하면 점수가 잘 나왔는데, 진짜 잘하는 애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거죠.
Q.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을 마주하면 좌절하게 되잖아요. 어떻게 그 과정을 이겨내셨어요?
매일 울면서 자퇴를 고민했어요. 꼴찌도 해 보고, 학사 경고도 정말 간신히 면했죠. 이전까지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꼴찌가 됐으니 정말 속상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선배가 "그냥 눈 딱 감고 졸업만 해 봐."라고 조언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그 말대로 눈 딱 감고 졸업만 하자, 생각했어요.
저는 공학 대학의 무학과(2학년에 전공을 정하는 과)로 입학해서, 원래는 화학과를 지망했어요.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제가 연구할 재목이 못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공부에 그렇게까지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산업경영공학과를 택했어요. 알고 보니 산업 전반에 필요한 공학과 경영관리에 대해 배우는 전공이더라고요.
이렇게 큰 고민 없이 택한 전공이 나름대로 적성과 잘 맞았어요. 창업과 관련된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스타트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요. 결과적으로 보면, 졸업만 하자며 마음을 다잡았던 게 아주 좋은 선택이었죠.
Q. 취업만 고려하더라도,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까지 정말 수많은 길이 있잖아요. 그중에서 스타트업을 택하신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요?
아무리 고민해 봐도, 뭐 하나 특별한 재능이 없더라고요. 그러니 막연하게 그냥 취직해야겠다고만 생각했어요. 3학년 때 휴학계를 내고, 학교 선배님이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죠. 인턴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의 회사였어요. 그때 '기업에도 시작이 있다'라는 걸 처음 인식하게 됐어요. 스타트업의 참맛을 살짝 보게 된 거죠.
사실은 졸업 전, 대기업 공채 시즌에 뛰어든 적도 있어요. 서류 전형에 합격해 인적성 검사를 하게 됐는데, 저는 그게 정말로 제 인성과 적성을 검사하는 단계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큰 준비 없이 갔죠. 그런데 검사장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인적성검사 모의고사 문제집을 보고 있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로 취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그때 "아,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합격하는 게 맞겠다!" 생각하고 대기업에 대한 관심을 접었어요.
Q. 그렇게 스타트업 생활을 시작해, 다양한 도메인을 경험해 보셨다는 게 정말 흥미로워요. 어떤 기업을 거쳐 오셨는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처음 콘퍼런스 기획을 맡았던 스타트업에서, 200여 개의 스타트업을 직접 만났어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스타트업이 있는지,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죠. 이후 '앱을 만드는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라는 목표가 생겨서, 퇴사 후 7개월 동안 혼자서 UX/UI 공부를 했어요. 덕분에 중고 신입으로 홈쇼핑 커머스 앱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때 앱/웹 개발에 대해 많이 배웠죠.
이후에는 여성들의 커리어를 위한 커뮤니티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어요. 그곳에서 '젊음을 다 바쳤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어요. 기업의 비전과 미션이 저의 진심과 닿아있었거든요. 회사와 나의 가치관이 잘 맞는다는 게, 얼마나 무한한 동력을 제공하는 조건인지 처음 깨닫게 됐죠. 일밖에 모르는 동료들과 식사하면서도, 막차를 타고 퇴근하면서도 일 얘기를 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정말 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죠.
가장 오래 일한 곳은 스마트팜 AI와 로봇을 만드는 스타트업이에요. 여기에서 '스타트업 잡부'라는 제 정체성이 구체화되었어요. 처음부터 영역을 넘나드는 업무를 도맡아 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고 입사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모든 걸 다 경험해 봤어요. 사무실 인테리어도 하고, 화장실 변기도 고치고, 재무 관리도 하고, 사업 기획도 하고, 투자 유치도 했죠. 이전까지 했던 일이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이었다면, 여기서는 '회사'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Q. "창업 한 번 해 볼까?"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잖아요. '스타트업 잡부'로서의 경험이 큰 기반이 되었나요?
늘 스타트업만 골라 다니고, 너무 일을 많이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창업 안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저에게 창업가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창업하기에는 제 멘털이 약하고 끈기가 부족하다고 여겼죠. 그래서 거의 10년 동안 주저했어요.
수많은 도메인과 직무를 경험해 보니 그제야 '한 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사람에게는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실행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저에게도 그런 때가 왔던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때'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해 왔는지가 중요해요.
저는 다양한 직무를 거치며 조금씩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쌓아왔어요. 기술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도메인을 선택하고 싶다, B2C보다는 B2B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다, 확장 목적이 아니라면 VC 투자는 받지 않고 싶다, 반드시 1명 이상의 동업자가 있을 때 시작하고 싶다 등이었죠. 이미 쌓여있는 생각이 많아서 막막함이 덜했어요.
Q. 2025년의 스타트업 대표에게는 AI가 아주 든든한 직원이라고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존재했던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르잖아요. 이제는 디지털을 넘어 'AI 네이티브'의 시대가 오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원래 하던 일에 AI를 끼워 넣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제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AI에게 맡길 수 있나?'라는 걸 가장 먼저 고민해요.
지금 저희 팀은 2명인데요. 친구가 혼자서 개발을 다 하고, 제가 그 외의 모든 걸 다 해요. AI와 협업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10년 전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던 저는 지금 저희 팀의 생산성이 믿기지 않아요. 예전이라면 4~5인의 팀이 3~4개월 동안 고생해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를, 지금은 혼자서 한 달이면 만들 수 있거든요. 앞으로는 AI 네이티브들이 만들어내는 스몰 비즈니스가 아주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팀을 소규모로 유지하는 거예요. 공격적인 채용과 확장 대신,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거죠. 앞으로도 팀원을 늘릴 생각은 없어요.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게 인건비잖아요. 이걸 극단적으로 최소화하면, 그 혜택을 고객이 누릴 수 있죠.
Q. 두 명의 창업자 그리고 AI의 협업, 어떤 서비스로 이어졌나요?
몇 개월 동안 계속 브레인스토밍을 했어요. 필요로 하는 고객이 많은지, 돈은 어떻게 벌 것인지, 시장 규모는 얼마나 큰지…. 그리고 토론 끝에 스마트팜 분야에서 일했던 저의 경험을 살려, 농업과 관련한 스타트업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엄마가 제주도에 있는 농가에 문자를 보내 귤을 주문하시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죠.
우리가 마트에서 구매하는 농산물은 보통 도매시장의 경매를 거쳐 식탁에 도착해요. 하지만 경매가는 농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거든요. 때로는 열심히 키운 농작물을 제값도 받지 못하고 넘기는 일이 생겨요.
가격 결정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직접 판매해야 하는데, 소규모 농가의 경우 생산만 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라요. 해가 뜨기도 전에 농장으로 출근해 작물 상태를 살피고, 해가 지고 나서야 컴퓨터를 켜서 판매 업무를 할 짬이 나죠. 이런 환경에서 플랫폼이나 리셀러의 도움 없이 고객을 관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같은 오픈마켓의 수수료는 보통 7~20%예요. 농가의 입장에서는 이 수수료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플랫폼 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고객과 농장이 직거래할 수 있는 '진짜' 직거래 서비스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Q. '직거래'라고 해서 다 같은 직거래가 아니라고요?
산지 직송, 그러니까 '농가에서 작물을 바로 발송하는 형태'를 모두 직거래라고 부르거든요. 그래서 직거래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리셀러와 도매업체가 끼어있는 경우도 많아요. 생산부터 포장, 발송에 이르는 모든 일은 농가가 하고 그들은 판매만 담당하는 거예요. 결국에는 또 그 가격 안에 도매업체와 리셀러들의 수수료가 다 포함되는 셈이죠. 실제로 농부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거의 50~70% 수준이고요.
최근에 농산물 리셀이 '꿀 부업'이라는 정보가 널리 퍼진 적 있어요. AI로 농산물 사진과 상세 페이지를 만들어서 팔기만 하면 된다면서요. 물론 그분들도 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마음에 부업하시는 거겠지만, 보고 있자면 속상한 게 사실이에요. 농부들의 피땀이 그렇게 소비된다는 게 안타깝죠.
그렇게 되면, 자신이 파는 작물을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도 모르는 판매자가 늘어나는 거예요. 이 경우 소비자가 저품질의 상품을 받게 되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죠. 유통 구조가 길어질수록 이런 책임의 절벽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직팜을 좀 더 잘 만들고 싶어요. 저는 직거래 생태계가 조금씩 건강하게 변했으면 좋겠어요. 생산자가 노력에 걸맞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요.
Q. 직거래의 이점은 가격에만 있는 게 아니죠. 우리가 마트에서 구매하는 채소들, 생각보다 신선하지 않다고요?
혹시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내가 먹는 과일과 채소, 어디를 얼마나 돌아다니다 내 식탁에 온 걸까? 공판장에 농작물을 보내면, 생산자를 구분하지 않은 채 한 번에 선별하고 포장하는 경우가 흔해요. 그러니 경매 이후에는 농부의 손을 떠난 이 농작물들을 누가 어떻게 포장하고 운반하는지, 어떤 루트를 거쳐 우리 집에 오는지 알기 힘들어요.
농장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직접 생산한 농작물에 대한 자부심이 커요. 직접 판매하시는 경우 작물이 상하지 않게 포장도 정말 꼼꼼하게 하시고요. 그래서 '농부에게 직접 돈을 주고 농작물을 받아본 경험'을 처음 하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어요. 농작물에 대한 책임과 애정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직거래의 강점은 가격보다 신선도와 품질에 있다고 생각해요. 농업 회사에서 일할 당시, 농장에서 바로 딴 농작물을 맛볼 기회가 많았어요. 처음 파프리카를 바로 따서 먹어봤을 때, 그 아삭함과 달콤함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항상 마트에서 2개에 3천 원짜리 파프리카를 사 먹었는데, 비교할 수 없는 맛이더라고요.
과일도 마찬가지예요. 공판장에 농작물을 보낼 때는 앞으로 이 작물들이 얼마나 긴 유통기간을 거치게 될지 예상하기 힘들어요. 그러니 과일이 다 익기 전에 따서 담아야만 하죠. 고객에게 닿기 전에 상하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직거래로 구매하면, 농부가 생각했을 때 가장 맛있는 타이밍에 따서 고객에게 보낼 수 있어요. 당도나 완성도 면에서 차이가 아주 크죠.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좋은 식재료를 접할 기회가 많다는 거예요. 농가에서 직접 과일이나 채소를 샀을 때, 마트나 온라인에서 구매한 것보다 맛이 없거나 품질이 떨어졌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저는 1인 가구라서 작물들을 바로 소비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도, 냉장고에서 꽤 오랜 시간 신선함을 유지하더라고요. 마트에서 사 온 채소들은 보통 일주일이면 시들시들해지잖아요. 이미 유통 과정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탓이에요.
Q.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농가를 찾아서, 직거래 플랫폼에 입점시키는 과정을 들려주신다면요?
혹시 배달의 민족 창업 스토리를 아시나요? 김봉진 창업자가 오프라인 전단지를 하나하나 찾아 음식점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이야기요.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이 딱 그래요. 오프라인 마켓도 찾아다니고, SNS로 무작정 연락하기도 하고, 그렇게 알게 된 농가를 직접 찾아뵙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의성과 상주에 가서 샤인머스캣, 복숭아, 딸기 농가를 만났어요.
농가는 보통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 퍼져있고, 지도 앱에 검색한다고 해서 뚝딱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시간을 들여 찾아야만 하죠. 저희는 이제 막 출발하는 플랫폼이에요. 농가를 찾아가 입점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죠. 다행스럽게도 "농가에게도, 고객에게도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라는 설명을 들으면 많이들 관심을 가져주세요.
사실 농산물 거래에는 복잡한 기능이 필요하지 않아요. 통계적으로 농부의 96%가 50대 이상 중장년층이기 때문에, 오히려 쉬운 직거래 주문 관리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었죠. 저희는 AI를 활용해 개발과 운영을 효율화했어요. 말 그대로 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한 거예요.
판매 플랫폼 중에서 수수료를 안 받는 곳은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수수료가 아닌 서비스 이용료만 받아요. 일종의 구독료에 가깝달까요. 유통할 때마다 수수료가 나가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거죠. 유통 수수료를 내지 않으니, 그 혜택을 농가와 고객이 고스란히 누릴 수 있어요.
Q. 창업가의 일과가 궁금해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오전 9시에 필라테스를 가요. 여유가 있는 날에는 러닝 30분 정도를 추가로 하고요. 저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타인과의 약속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오전 내내 자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운동처럼 하기 싫은 일을 오전에 해결해요.
야행성이라 밤에 더 일이 잘 풀리는 타입인데요. 직장인 시절에는 남들처럼 오전 9시쯤에 출근해서, 밤이 되니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이유로 더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빈번했거든요. 하루에 10-12시간 정도는 일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렇게까지 일하기는 좀 힘들어서, 아예 출근 시간을 늦췄죠. 보통 1시쯤 출근해서 자유롭게 퇴근해요. 별일 없으면 8시간 정도 일합니다.
창업자 중에서는 제가 게으른 축에 속하지 않나, 싶은데요.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사업가로서 가장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스타트업 창업했다는 사람이 그래도 돼?"라고 묻는 경우도 있는데, 아직 월급 줄 직원이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하고 싶어서 이렇게 유동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Q. 이렇게 성실히 차곡차곡 쌓아오던 삶에, 별안간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고요?
재작년에 전세사기를 당했어요. 한창 건축왕이니 뭐니, 매일 뉴스에 전세사기 소식이 나오던 때였어요. 어느 날 출근하려고 문을 열었는데 문틈에 끼어있던 종이 한 장이 팔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더라고요. 내용을 보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먼저 철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경매 통지서였죠. 제 보증금 1억 4천만 원이 그대로 날아간 거예요.
저는 계약 전에 제 보증금 선순위가 안정권인 걸 확인했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중개사와 집주인이 한통속이었어요. 건물 시세 자체를 속인 거예요. 막상 경매에 넘어가 보니, 돈을 돌려받기에는 턱도 없더라고요. 민사 소송도 걸었는데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어요.
그 이후는 거의 지옥이었어요. 마음이 나아질 때까지 반년이 걸렸죠. 그래도 한 가지 좋은 점을 찾자면, '이렇게 힘든 일이 생겨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구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자각이 저에게 큰 자산이 됐고요.
Q. 전세 사기에 대해 꼭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그러게 잘 알아보고 입주했어야지.'
'세입자가 멍청한 탓이다.'
각종 기사나 영상에 이런 댓글이 많이 달리거든요. 그래서 정말 내 잘못인가 하고 각종 법과 부동산 정책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현행 정책상 전세사기는 피할 수 없더라고요. 정말 그 어떤 것으로도 완벽히 피해 갈 수는 없어요.
흔히 말하는 특약을 걸어라, 등기를 확인해라, 건물 감정가를 고려해라…. 그런 것도 중개사까지 합세해 서류를 조작하면 속수무책이에요. 게다가 꼭 나쁜 마음을 품고 사기 치려 든 게 아니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집주인이 파산해 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전세 사기 피해자는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어요. 저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힘을 내서 일상을 되찾자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 나까지 나를 탓하면 정말 지옥이 되니까요. 피해자의 잘못은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Q. 보통 'MZ하다'라고 표현하는 특성들이 있잖아요. 스스로 MZ하다고 생각하세요?
91년생은 MZ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선 MZ하고, 어떤 부분에선 굉장히 꼰대 같은 거죠. 예를 들어, 저는 회사에서 본인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건 본인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동료가 헤드폰을 끼든, 카페에 나가 일하든 상관없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요.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면 업무의 방식은 신경 쓰지 않아요.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퇴사하고, 겁 없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냐는 말도 자주 듣는데요. 엄청난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단, 재미가 제게 큰 동기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항상 재미있는 일을 좇는 사람이에요. 죽을 때까지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한편 제 안의 꼰대 같은 면을 꼽아보자면, 가족 같은 회사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회식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과 커리어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좋아요. 워라밸만 고집하기보다는, 야근을 하더라도 일을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더 좋아해요. 무엇보다도 제가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세상에는 이미 직거래와 산지 직송을 표방하는 농산물 커머스가 많아요. 새로운 직거래 플랫폼이 자리 잡는 게 쉽지만은 않죠. 하지만 다른 플랫폼에서는 찾기 힘든 '직팜'만의 특장점이 있어요. 바로 끝까지 생산자를 도울 거라는 거예요. 농부들이 지금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다음, 그다음 농사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고, 그 혜택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현재는 직팜 홈페이지를 통해 농작물을 주문하실 수 있고, 곧 앱도 론칭할 예정이에요. 직팜 카카오톡 채널을 추가하시면 각종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농부와 단골을 직접 연결하는 직팜, 많이 이용해 주세요! 품질 좋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보답하겠습니다.
Edited by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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