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서 치맥? 아니, 다과!

이런 피크닉 본 적 있으신가요

by 혜하



요즘은 시국 때문에 모이기가 어렵다지만, 한강변에서 자리를 깔고 떠들썩하게 친구들과 노는 일은 제게 일종의 버킷리스트였습니다. 살면서 꼭 한 번은 안 하면 아쉬울 것 같고, 또 청춘의 상징 같은 기분도 들잖아요?


여름에 한강변으로 나가 보면 굽이굽이 강을 따라 조성된 공원에 푸른 잔디가 깔리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앉아 즐거운 낮을 보내고 있지요. 그러다 보면 도착하는 것이 자리까지 배달되는 치킨집 전단지. 한강에서 치맥을 한류로 수출하자는 이야기까지 들은 바 명실상부 한강 소풍은 중요한 우리 문화의 일부이자 엔터테인먼트인가 봅니다.


본래 서울에 살지 않았던 저는, 그러니까 상경하고서부터 쭉 한강 소풍을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풍을 가서 뭘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저는 술을 못 해서, 술 먹고 놀자고 친구들을 불러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보다 자신있는 것,


그래! 차를 마시자!


이렇게〈한강차팟〉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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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같이 갈 친구를 구하는 홍보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차를 마시는 동년배들이 지금보다도 퍽 적어서, 완전히 아는 사람들만으로 날짜를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았거든요. 먼저 같이 파티를 주최(?)하기로 한 친구와 일시를 정하고, '이 날 노실 수 있는 분 구해요!' 하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건너건너 의기투합해서 모인 다섯 명의 차 이웃들. 디저트 사 올 사람, 찻주전자를 챙길 사람, 물을 들고 올 사람, 등등 역할 분배를 하고, 찻잔과 기타 자리를 꾸미고 싶은 물건은 각자 자유롭게 지참. 차는 각자 함께 마시고 싶은 것 조금씩.


그리고 대망의 소풍날이 다가왔습니다.


본문2.jpg '각자 함께 마시고 싶은 차 조금씩 가져오죠.'


다섯 명이 신나게 별러서 싸 온 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야외 다회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흔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저도 이런 행사는 처음이었지요.


뜨거운 차만으로 모자라서 왼쪽에 보이는 병은 미리 만들어 온 냉침 차들입니다. 한 사람이 한 병씩, 세 사람만 냉침 차를 만들어 올 생각을 해도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모이면, 차도 엄청나게 모인다.' 라는 야외 다회의 교훈을 이 날부터 체감했습니다.


정말로 별별 것이 다 있었습니다. 차를 마실 때 꼭 필요한 뜨거운 물이 담긴, 그런데 용량이 무려 4리터인 물통, 처음에 이야기했던 찻주전자와 그런데 누군가 가져온 수반, 차 집게, 거름망, 티코지, 물주전자, 숙우(각자 누군가는 숙우를 가져와야 해! 라고 생각했는지 크기별로 3개), 사람은 다섯 명인데 여덞 개쯤 되는 찻잔들, 색색깔의 티 코스터, 심지어는 찻잎 계량용 전자 저울과, 2단 디저트 트레이, 노리다케 티컵세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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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트레이에 담긴 과일 타르트와 케이크들은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햇볕을 받아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한강 소풍이 아닌 한강 애프터눈 티 파티를 열어도 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호텔에서 해 주는 것보다 열 배 많은 종류 차를 마시게 되죠.


바깥에서 차를 마시는 소풍의 즐거움을, 이 때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햇볕에 비친 찻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실내가 아닌 드넓은 바람과 하늘과 구름 아래서 차를 마시는 탁 트인 기분, 근처에서 노는 다른 사람들의 드문드문 떠드는 소리와, 물이 조금 식었어도 이런 좋은 분위기와 유쾌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 날의 차를 참 맛있게 만드는지. 혼자서 집에서 마실 때는 알 수 없는 야외 다회만의 매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외 다회의 고충도요. 전기가 닿지 않으니 전기 포트를 쓸 수 없어, 야외 다회는 뜨거운 물 수급이 큰 문제가 됩니다. 〈한강차팟〉이후에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날씨나 앉을 자리나 자연의 벌레들(!) 같은 점도 상당한 고려 사항에 들어간다고 알게 되었는데, 한강공원은 다행히 그 정도로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4리터 물통, 1리터 보온병 두 개, 500ml 보온병 두 개로는 좀 모자라서(얼마나 차를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편의점에 가기로 했어요. 가서 컵라면을 몇 개 사고, 컵라면에 부을 물을 대신 보온병에 받아 왔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물을 리필해 와서 또다시 한낮의 차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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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해는 빛났고 차는 서로 나누는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누군가 나눠 먹고 싶었다며 가져온 과자, 같이 쓰면 좋을 것 같았다고 가져온 티 세트, 누군가의 케이크, 그런 호의들이 한데 모여 눈을 사로잡는 들꽃처럼 소담하게 피고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영화 같은 인생의 한때.


그 날은 제게도 아직, 햇빛과 공기 가득한 아름다운 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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