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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하 Nov 10. 2021

화려한 페르시아 정원의 밤: 타카이쥬에몬 2018

교토 코쥬

교토 코쥬 세 번째 리뷰입니다. 시리즈와 가게에 대한 소개는 첫 글을 참조해 주세요.


1. 북유럽 현대 소설 속 한 장면: 타카이쥬에몬 2019

2. 물기 어린 아쟁 소리: 타카이쥬에몬 1575

3. 화려한 페르시아 정원의 밤: 타카이쥬에몬 2018




비록 꽃을 좋아한대도 좋아하는 꽃이 특별히 있고, 음악을 좋아한대도 좋아하는 곡이 따로 있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향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재료라고 한다면 먼저 나긋하고 도타운, 질 좋은 백단향, 그리고 시트러스 계열 향기들을 좋아하니 새큼상큼하면서도 고아한 풍취가 있는 유향. 더불어 숲이나 정원, 다소 묵직하고 우디한 향도 좋아하기에 숲 속을 걷는 것 같은 시더우드는 언제나 제가 선호하는 조합입니다.


그런 저에게 백단, 유향, 시더우드, 화이트 머스크 조합의 향이라니오. 재료에 먼저 눈이 번쩍 뜨이고, 교토의 유서 깊은 향 가게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과감한 조합이 두 번째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 2018. 전통 깊은 타카이쥬에몬 시리즈의 두 번째 향이자 제가 리뷰하는 코쥬의 향으로는 세 번째 향. 홈페이지 설명으로는 '온화한 백단과 화이트 머스크가 매끄럽게 어우러지고, 시더우드와 유향이 단정한 청량감을 자아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대는 이 정도의 설명을 넘어 코쥬가 또 어떤 멋진 배합을 선보일지 두근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불을 붙이게 되는데요……!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귤 향을 닮은 산뜻한 유향입니다. 


비파 타는 소리처럼 펼쳐지는 유향에서는 꼭 물기 어린 밤의 푸른 식물들도 연상이 됩니다. 소리를 따라 밤길을 걸어가 보면, 하늘에는 푸르고 얇은 달, 달빛 드리운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하얀 궁전이 있지요. 탑탑하고 부드러운 백단에 얹힌 고혹적인 사향입니다. 향긋한 향기를 따라 불을 밝힌 실내로 들어가면 지붕 아래 커다란 연못에 띄워 놓은 뱃놀이 위에 노란 불이 어른어른하고, 창에 드리운 주렴을 흔들며 바깥으로 불어 나가는 시원한 바람 같은 시더우드.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도 지정된 페르시아의 정원에는 항상 물이 흐르고 있지요. 그 정원에 찾아든 밤을 상상하실 수 있으신가요? 


이런 느낌


머스크의 화려함과 유향의 산뜻함은 섬세하게 세공된 컬러풀한 장식을 떠올리게 하고, 타카이쥬에몬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물기는 싱그러운 꽃과 나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야말로 페르시아 정원에서의 여름 휴가와 같네요. 백단과 시더우드, 머스크의 조합에서 나오는 두터움에서는 돋을새김으로 무늬가 들어간 두툼한 금 접시가 연상됩니다. 백단의 질이 좋은 것도 이 모든 인상을 받쳐 주는 한 요소가 됩니다. 엄숙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영화로운 왕정 시대의 풍경이 꼭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향.



요즘은 집에서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곤 합니다. 티 라이트의 빛, 밀랍 양초가 타면서 내는 지글지글 심지의 소리. 그리고 코쥬의 타카이쥬에몬(高井十右衛門) 2018이면, 거실은 단번에 찌르레기가 우는 밤의 정원이 되고, 벗겨진 과일 껍질에서 풍기는 달큰한 향내, 야자나무 잎의 그림자가 살랑살랑 감은 눈 앞에서 일렁입니다.


이런 때라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향 연기도 한 편 무희의 춤 같고,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는 신비한 향연으로 자욱한 전설 속 한 장면이 코끝에서 눈앞으로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 매거진의 모든 리뷰는 주관적 감상이며, 가게 연혁 등을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이상 제가 즐기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옮깁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시 알려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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