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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Oct 24. 2023

우리가 쓰는 까닭(#조지오웰 #글쓰기 #쓰는이유)

조지오웰에게 보내는 일요일의 편지

TO. 조지오웰


 작가님, 어제의 편지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 작가님께 선물하고 싶은 책을 두 권 사 왔어요. 한 권은 청소년 문학 작품인 '무례한 상속'이고 또 다른 책은 '순례주택'이에요. 두 작품 속에는 성격은 다르지만 지혜롭고 탐욕 대신 온 생명을 존중하는 두 할머니가 등장해요. 작가님께서 이 작품들을 읽고 작품 속에 나타난 좋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과거 작가님이 용기 내어 후세대에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글을 쓴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또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세상의 부조리가 사라지고 이 지구가 모든 생명이 존중받을 수 있는 평화와 희망의 세계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곳에서도 응원해 주시면 감사할 거예요. 

 작가님의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의 에세이집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작가님께서 글에서 언급한 쓰기의 네 가지 이유(이기심, 미학적 열정, 진실의 보존 욕구, 정치적 목적)가 흥미로웠어요. 제가 본 작가님의 글에서는 사실 정치적 목적이 가장 강하게 느껴졌어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또 작가님께서 워낙 솔직하게 쓰시기에 작가 본연의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이어지는 점에서 나름대로 미학적이기도 했고, 실제 체험을 기반으로 글을 쓰셨다는 점에서 진실의 보존 역할도 충분히 하셨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 당시 인기 없던 장르인 우화, 게다가 누군가의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정치색을 띤 작품을 창작하셨다는 점에서 이기심의 목적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물론 워낙 작가님께서 강렬하고 직설적인 어조를 지니셨고 시니컬하신 삶의 태도로 인해 다정하기보단 독설에 가까운 톡톡 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에요. 

 저는 과연 왜 쓰는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어요. 이기심도 아니고, 미학적이라기엔 단순하고, 진실을 보존한 다기엔 아직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이고, 정치적 목적이라기엔 강건한 성격은 아니라서 작가님의 네 가지 이유 중에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느꼈거든요. 고민 끝에 아직 성장 중인 저는 작가님과 다른 이유로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생각하고 느끼며 잘 살기 위해서 쓰고 있더라고요. 

 전 노트북 앞에 앉아서든, 수첩을 꺼내어 펜을 들든 쓰지 않으면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 성찰하거나 의문을 품기보다는 살던 대로 사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 삶에서 쓰기의 역할은 글을 쓰며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나의 꼴과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고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내 감정은 어떤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세상에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쓰며 저는 제 자신을 찾아가게 되었어요. 신기하게도 글을 쓰다 보면, 제 안에서 또 다른 제가 술술 글을 쓰는 느낌이 들고 며칠이 지나 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 글 안에서 진짜 저를 만나는 느낌이 들어요. 이렇게 글 덕분에 어느 정도 저에 대한 탐구가 정리된 이후에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 제 자신뿐 아니라 제 주변의 세계로 확장하며 질문을 던지고 글을 쓰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는 명상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잡념이 없는 제가 쓰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생각 주머니가 풍부해졌어요. 이런 식으로 저는 요새 글을 통해 제 자신을 다듬고 확장하며 바꾸어 나가는 작업 중인 제 생활이 무척 즐거워요. 글로서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개인에게는 놀라운 창조인데 이를 뛰어 넘어서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신 작가님을 보면 참 스케일이 크고 대단하시다는 마음이 듭니다.

 한국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어릴 적부터 일기 쓰기, 독서록 숙제를 내주곤 해요.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아무 의심 없이 과제처럼 써 내려갔던 행위가 이제 보니 자신과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들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근력 운동이 필수이듯이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고요함 속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과 세계를 돌아보는 성찰 훈련이 필요한 거였어요. 근력운동도 초반에는 근육통을 겪는 것처럼 쓰는 행위, 생각하는 훈련도 초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들고 첫 발을 떼기 위해서 심적 장벽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억지로 하게 해서 불편감을 느끼는 걸 피하는 요즘,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성찰을 연습할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성찰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초반에 부담을 느껴 저항하더라도 쓸 수 있게 지켜봐 주고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대신 철자나 문법을 수정하기보다는 아이가 솔직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생각을 적을 수 있도록 하고 내용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대화로 첨삭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했어요.  

 나이 50이 되면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얼굴이 된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탐욕 가득한 부자연스러운 얼굴이 아닌, 주변에 따스함을 줄 수 있는 상냥한 얼굴을 지닌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매일 쓰고 꾸준히 성찰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작가님과 개인과 세상,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작가님의 혼이 작품 안에서 오래 살아남아 미래 세대에게까지 작가님의 자유에 대한 정신이 전해지길 소망해요. 


FROM. 읽고 쓸 수 있음에 감사한 혜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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