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에게 보내는 토요일의 편지
TO. 조지오웰
작가님, 혹시 이응노라는 화가를 아시나요? 전 최근 이응노 미술관에 다녀왔어요. 문자추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활동했던 화가였어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응노 화백은 감옥 안에서도 식사로 나온 밥과 간장을 재료로 창작 혼을 불태우고, 평생 타국에서도 고국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작품을 끝없이 만들어낸 화가였어요. 또 후배들을 돕고자 했던 이응노 화백의 정신은 아직까지도 이응노 창작 지원 사업으로 이어져서 그의 지원을 받아 현시대 신진작가의 작품들이 이응노 갤러리에 함께 전시되어 있는 풍경이 감동적이었어요. 그곳에서 이응노 화백의 작품들과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이응노 화백과 작가님이 미술과 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임에도, 함께 자유를 지키는 예술을 실천하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와 관련지어서 예술이 자유에 미치는 영향과 건강한 문학이 이어지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한 바를 편지로 써 보려 해요.
작가님의 에세이집을 읽으며 작가님의 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창작 활동에 제약이 많았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시 심각한 냉전 상황과 경제 불안정으로 인해 문학에 권력이 개입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작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본이나 권력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몇 십 년 전, 국가의 뜻과 불일치하는 뉘앙스의 가사를 지닌 노래나 서적을 금지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남일 같지 않기도 했어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소신을 지켜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 싶어요.
역사와 사회의 시각에서 대문호로 일컬어지는 분들의 작품을 읽어보니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미학적 관점뿐 아니라 작가의 솔직한 감정, 시대에 대한 소신과 신념을 담은 작품이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문학이 그동안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성장하게 도와주는 수호 역할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로는 풍자와 해학이라는 이름으로, 또 은유와 직유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어떨 때는 목숨을 건 직설적 화법으로 말이에요. 특히 가난과 죽음, 대중의 비난이 두렵지 않은 듯 문장을 써 내려간 작가들의 작품들은 천부인권 개념을 신장하는데 앞장선 일등공신이었어요. 용기를 내어 자유를 이끌어 간 작가님 같은 분들 덕분에 더딘 속도라도 인간의 본성은 발전하고 있어요. 작가님의 시대보다는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존중받고 국민들이 여론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문화가 생겼어요. 물론 아직도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인 성숙한 대화와 토론 문화에 있어서는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이 숙제처럼 남아있지만요.
작가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소식이 하나 더 있는데요, 그건 바로 요즘 한국의 소설들에 담긴 이타의 메시지들이에요. 요새 젊은 작가분들의 작품을 보면 다양성의 존중과 포용,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소외된 이웃을 품는 따스한 마음 등 자유를 뛰어넘어 사랑으로까지 이어지는 작품이 상당수 있어요. 작가님께도 선물해드리고 싶은 작품이 많아요. 이런 글을 쓰는 후배 작가들이 있고, 또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있음에 작가님도 기쁘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 모든 게 전 세대에서 뿌려주신 자유의 씨앗에서 자란 사랑의 열매들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렇게 문학의 소중함을 느끼다 보니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문학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독자이자 창작자로서의 역할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일단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중고서적 대신 정가로 구입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왕이면 저처럼 종이책을 사랑하고 읽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점이나 독립서점에서 직접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꼭 유명한 문학 작품뿐 아니라 독립출판물도 종종 사서 읽고 다양한 작가님들이 공존할 수 있는 문학 환경을 구축하고 싶어 졌어요.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스토리 플랫폼 안의 다른 작가님들 글도 더 찾아 읽고 댓글도 남기면서요. 앞으로 예술인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그분들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창작활동을 할 때도 어떤 외부의 압력도 개입되지 않도록 제 신념과 소신 안에서 글을 쓰기로 다짐했어요.
작가님께서 헌책방에서 일하시던 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소설, 추리소설 외에는 잘 읽지 않는 건지 애석해하셨잖아요. 오늘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름대로 이유를 발견했어요. 연애소설이나 추리소설처럼 우리는 저절로 몰입하게 해주는 책 이외의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경청을 잘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듣기만 해도 저절로 외워지는 족집게 강사의 강의나 후크송이 아닌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기 위해 고도로 집중하고 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이 점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경청처럼 고도의 몰입과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에너지가 많이 드는 행위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타인에게는 관심이 적고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는 사람이거나, 저절로 자신을 몰입시켜 주는 쾌락을 더 좋아하거나, 일이나 일상 안에서 이미 기진맥진한 사람에겐 문학 작품 읽기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우리가 쾌락을 좇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각자의 입장이 되어 온전히 이해하는 노력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결국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낼 힘을 길러주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 생각도 궁금한 밤이에요. 내일은 제가 좋아하는 독립서점에 들러서 작가님께 선물해드리고 싶은 책 몇 권을 사봐야겠어요. 내일 편지에서 뵐게요.
FROM. 문학을 사랑하는 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