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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Oct 19. 2023

동물농장의 민낯(#조지오웰 #복서 #리더십)

조지오웰에게 보내는 목요일의 편지

TO. 조지오웰


 작가님, 이곳은 비가 내리고 있어요. 비 오는 어두운 밤이면 작가님이 쓴 동물농장이란 작품이 떠오르곤 해요. 작가님께서 이 책을 여러 출판사에게 투고했지만 몽땅 퇴짜를 맞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다행히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명작이 되었네요. 전쟁 시대에 우화 형식으로 당대의 정치적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한 이 작품은 아마 세계 시민들에게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향하게끔 하는 커다란 실마리가 되어주었을 거예요.

 이 작품 속에서 작가님은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혁명을 이루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 동물 공동체가 변질되는 모습을 통해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셨어요. 혁명이 성공한 후에 어떻게 변질되고, 권력을 잡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핍박하는지를 면밀히 그린 이 우화는 지금까지도 욕망으로 인해 위정을 하는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는 지혜를 주고 있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요즘 사회가 떠올라서 씁쓸했는데 바로 아래 구절 때문이었어요. 

 "자, 동무들, 동물들의 삶이 어떤 겁니까? 우리 똑바로 봅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달프고, 그리고 짧소. 우리는 태어나 몸뚱이에 숨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먹이만을 얻어먹고, 숨 쉴 수 있는 자들은 마지막 힘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 하오. 그러다가 이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겨지면 그날로 우리는 아주 참혹하게 도살당합니다. 영국의 모든 동물들은 나이 한 살 이후로는 행복이니 여가니 하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영국의 어느 동물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비참과 노예 상태, 그게 우리 동물들의 삶입니다. "

 일단 이 글에서 행복과 여가가 사치가 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면 목숨을 잃는 동물들의 삶이 안쓰러웠어요. 또 한편으로 저는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마치 노예라고 생각하며 슬퍼하는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믿어요.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도 나왔듯이 사람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얻는 것은 크게 타인에게 사랑을 줄 때, 일을 통해 창조를 할 때, 삶의 시련과 역경을 긍정적인 의미로 재해석하고 성장할 때라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행복과 여가의 시간이 최솟값 이상으로만 주어진다면 죽는 날까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가장 삶의 의미가 충만한 삶이자 성장하는 삶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할 수도, 창조를 할 수도, 시련과 역경을 만나고 이를 극복할 수도 있으니까요. 또 누군가는 열심히 일해서 부득이하게 일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을 생존하게끔 도울 수 있을 테고 이것은 생명을 살리는 값진 일이고요. 그래서 저는 일을 쉴 별다른 사정이 없는데도 베짱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안쓰럽고(물론 또 다른 창조생활을 위해서 예술가 모드의 베짱이가 되는 경우 말고요.), 탐욕스러움으로 더 이상의 창조나 노동 없이 돈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베짱이 모드인 사람이나 그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한계지운 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 속에서 가난한 아빠의 삶이 왜 부자 아빠와 비교당하는 건지 안타깝기도 해요. 모두가 부자 아빠처럼 돈을 벌려고 생각하는 사회라면 진정으로 타인을 위한 가치 창출을 해내는 곳들이 줄어드는 것이니까요. 물론 대부분 부자 아빠를 꿈꾸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자가 되면 기부하겠다고 말하지만요. 이 점에서 새로운 창조 없이 코인, 주식, 달러 등 투자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국가만을 살리기 위해 돈을 찍어내는 나라가 있고, 그리고 돈으로 돈 벌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인플레이션이라는 불안감을 조성하며 가상 시장의 파이를 늘리려는 존재들이 있는 지금이야 말로 경제 시스템에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푸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에는 원치 않는대도 억지로 타인의 코를 닦아주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예요. 각자 빚어낸 다양한 창조물이 어우러져 무지개 빛 세상이 될 수 있었던 이곳은 남에게 코를 대신 풀게 시키는 사람과 자신의 달란트가 아닌데도 콧물을 닦아주는 사람들로 나뉠 거고요.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인플레이션이 현실화가 되면 누군가는 하루 종일 여가 시간 없이 일해야 하는 사회가 되고 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을 소비해 줄 여력이 없어서 동네의 다채롭고 개성 있는 상권들은 가성비라는 이름 아래에서 사라질 거고요.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꾸는 것으로 끝날 뿐 본질적 사회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할 거예요. 이를 막으려면 대중이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가려낼 지혜가 있어야 할 텐데 대중조차 일 하지 않고 편히 사는 삶을 꿈꾼다면 동물농장의 주인만 바뀔 뿐 현실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동물농장 안에서 지도자를 믿고 평생 일만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복서에 대해 사람들은 동정하거나 그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주변 사람들과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온갖 역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일어난 그의 삶을 바보같이 보는 사회라면 무언가 잘못된 사회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것을 다 내주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사실 가장 신에 가깝게 사는 것 아닐까요. 동료로부터 존경과 진실한 사랑을 받고, 후회 없이 온 힘을 다해 창조했고, 언제나 떳떳한 마음으로 달콤하게 잠에 들었을 복서의 삶이 동물농장 속 주인공 중에 가장 참 행복에 가까웠다고 믿어요. 문제는 복서가 한 명뿐이었다는 점이에요. 아마 동물농장 속에서 복서가 90프로가 넘었더라면, 그래서 힘센 것 외에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복서, 타인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복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능력이 탁월한 복서 등 각자 자신의 빛깔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위정자를 알아챌 수 있는 시선을 가진 복서 마을이었다면 오히려 돼지들이 농장에서 쫓겨났을 텐데 말이에요. 

  동물농장의 마지막 장면 속 돼지들의 모습은 쾌락에는 가까웠지만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쾌락의 끝은 더 큰 쾌락이자 공허라는 것을 알고 쾌락과 진정한 행복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돼지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복서로서 자신만의 풍차들을 세우며 이 과정을 통해 사랑, 창조의 기쁨,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 있는 삶을 지향하길 바라며 이런 명작을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내일 또 다른 편지로 찾아뵐게요. 

FROM. 돼지가 부럽지 않은 혜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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