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에게 보내는 수요일의 편지
TO. 조지오웰
작가님, 코로나 이후 꾸준히 금리가 오르며 대출 이자를 내기 어려운 시민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상승으로 가계가 어려운 상황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어요. 이와 더불어 묻지 마 범죄나 사기가 늘어나고 예의와 배려는 줄고 이기적인 사례가 늘어난 신문의 사회면을 보며 전 요새 매슬로우 욕구 이론을 떠올리곤 해요.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보장받지 못할 때 타인을 위한 배려와 존중, 다른 집단에 대한 존중, 자기 계발이 모두 사치스러운 일이 돼 버리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사실 이럴 때일수록 생존과 안전 영역에서 생계적으로 1인분 이상을 책임질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점에서 오늘은 2인 이상이 모여하는 의사결정인 정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민족 중심주의 강한 두 나라 중국, 일본 사이에서 인적자원, 기술자원 외엔 외화를 벌어올 만한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데 이렇게 지금까지 한글을 쓰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정보 접근성을 높인 세종대왕, 후손들을 위해 신분제를 없애고자 죽을 것을 알고도 반란에 임한 동학농민군들, 일제 강점기에 광복의 희망을 품고 전재산과 목숨을 바친 독립열사들, 한국 전쟁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분들, 가족들과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외화를 벌어온 파독 광부, 간호사분들, IMF를 극복하고자 금 모으기 운동을 실시하고 국가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발 벗고 나서는 온 국민들까지 역사를 보다 보면 이 땅에 태어나서 감사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역사를 지켜보면 이렇게 감사한 존재들의 노력을 거슬러 정치를 후퇴하게 하는 움직임도 보여요. 자신의 안위와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를 판 친일 세력, 청렴하지 않은 관료나 기업, 세금이 아까워 탈세하는 사람, 국민들의 정신적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버는 사람들까지 말이에요.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생각하는, 온 생명을 지지하는 결정을 힘이라고 하고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이유로 하는 선택을 위력이라 한다면 우리의 정치를 쇠락시키는 것은 바로 위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바로 우리가 짐승성 강한 위력을 발견하고 알아차리고 이를 위력 대신 힘으로 교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때도 전 국민이 동참하여 태안 해안의 돌에 붙은 기름들을 흡착포로 제거하여 결국 바다를 일찍 정화하는 데 성공했고, 지진이나 홍수 피해가 있을 때에도 너도나도 인근 주민 분들이 돕는 우리나라를 보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대단한 힘을 지녔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코로나-19로 한국 사회도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재앙을 딛고 우리가 다른 곳보다 더 빠르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역시 당시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신 의료진분들과 격리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시민정신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정치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당 싸움이나 권력 싸움으로 변질되어 오염되어 사람들에게 민감하고 껄끄러운 주제가 된 것은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사실 힘의 관점에서 행한 모든 정치는 지금 우리가 '정치'하면 떠오르는 불편감과는 거리가 먼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의사결정들인데 말이에요. 오히려 우리나라의 정치는 정당의 좌석 경쟁을 넘어선 시민의 집단지성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중등 시절, 정당의 목표가 정치권력의 획득이라는 사회 교과서 속 구절을 보며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어요. 보다 발전한 사회가 된다면 정당의 목표가 더 이상 권력 획득이 아닌 '정당을 통해 집단 무의식을 향상하고 생명을 살리는 입법'인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지닌 의식 수준이 힘에 가까운지 위력에 가까운지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할 테고 자신의 이익과 맞닿은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그때쯤이면 뉴스와 신문에서 정치인의 얼굴 사진이나 네거티브 기사 대신 정책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나 집단지성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한 마음 따뜻해지는 사연들이 가득하겠지요.
가끔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데 나도 충분히 이래도 되는 것 아니야?'라며 작은 부정이나 부패를 눈감고 넘어가거나 '인간도 동물이니 당연히 생존과 번식이 우선이지.'라는 가치관을 지닌 존재를 보면 작가님의 작품 '동물농장' 속 인물들이 떠오르곤 해요. 그분들이 '동물농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싶고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마 각자의 삶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온 존재일 테니 나름대로의 정당성이나 일리는 있겠지만 저는 누구든, 어떤 정책이든 오랜 시간 후에는 역사에서 어떤 존재로 기억되는가, 또는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로 결국 평가받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 편지를 통해서 끝없이 주변국과 국가 내부에서 위력의 파도가 몰아치는 속에서도 위인들과 깨어있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꿋꿋하게 힘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작가님께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작가님의 영혼의 힘이 닿는다면 꼭 우리들이 동물농장 속 돼지들이 아닌 인간성을 지닌 사람을 관료로 삼고 우리나라를 위해, 주변을 위해 사랑과 희생을 실천한 분들의 뜻을 지켜가길 기도해 주시길 바라요. 내일은 '동물농장'에 대한 소감을 더 전해드리고 싶어요. 좋은 밤 보내세요.
FROM. 사람이고 싶은 혜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