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보는 출산도 육아도 무섭다.
만 서른둘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주삿바늘이 너무 무섭다. 코로나 백신 주사도 일부러 덜 아프게 찔러줄 것 같은 소아과에서 맞았고, 매년 돌아오는 건강 검진의 채혈 시간이 두렵다. 내가 주사 맞는 것을 한 번 본 뒤로 남편은 계속 따라 하며 골려대는데, 대략 이런 광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제가 엄살이 진짜 심하거든요.. 근데 그냥 무시하고 놔주세요.. 제발 한 번에 찔러주세요…”
다 큰 성인이 주삿바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리를 달달달 떠는 모습이란.. 정말 창피하다.
비단 주사뿐 아니라 병원이라는 장소에 전반적으로 공포가 크다. 라섹 수술을 할 때는 내가 너무 겁을 내자 간호사 선생님이 인형을 건네주셨고 수술 내내 그걸 꼭 붙잡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비슷한 시기 같은 병원에서 연달아 수술한 내 친구들에겐 제공되지 않은 서비스였다.) 스케일링을 하러 어느 치과에 가도 마치 아이에게 말하듯 “참 잘했어요~ 다 끝났어요~ 너무너무 잘 참았어요~” 하는 소리를 듣는다. 병원 갈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인생 목표 중 하나일 정도다.
병원 진료 중 가장 고통스러운 건 뭐니 뭐니 해도 산부인과. 상상만 해도 밑이 아픈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고 싶지 않지만 자궁 경부암 검사는 의무이기에 정기적으로 ‘굴욕의자'에 앉을 수밖에. 남성에게 자궁이 있었다면 이런 미개한 방식으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으리란 분노의 마음과 함께, “더 내려오세요!” “움직이시면 더 아파요!” 하며 소리치는 간호사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가끔 나의 엄살이 단순한 겁이 아니라, 고통이나 공포를 느끼는 감각이 남들보다 많이 예민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뿐 아니라 무서운 시청각물도 잘 못 보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이 끝나고 여름 방학이 되기 직전, 진도를 다 뺀 선생님은 학생 복지 차원에서 공포 영화를 종종 틀어주셨는데 그때 두 눈을 가리고 틈틈이 봤던 <링>이나 <장화홍련>은 아직도 가끔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유행에 뒤처질까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도 겨우 유튜브 요약본으로 봤는데, 심장이 쿵쾅거리며 몇 주동안 잔상이 남았다.
몇 년 전 ‘임신과 출산의 진실'을 담은 게시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성교육 시간엔 절대 알려주지 않는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가히 충격적이었다. 출산 후 계속 오로라는 것이 많이 나온다는 것, 자연 출산을 할 경우 회음부를 매스로 죽 절개한다는 것, 그리고 내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의사가 손을 질 안으로 넣어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한다는 것… 텍스트로만 읽었는데도 머리가 핑핑 돌았다. 도대체 어떻게 지구의 수많은 여성들이 이 고통을 감내하며 인류를 이어온 것인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대해 알 권리가 없었다는 것 또한 말이 되는 얘긴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더 무서웠던 건 거기에 달린 출산 유경험자 여성들의 댓글들이었는데, ‘출산이 힘들긴 한데 육아에 비하면 순한 맛’이라는 것. 몰랐던 사실인데 출산 후 장기의 위치가 이동해 체형이 변하는 것은 물론 머리카락도 빠지고 치아건강이나 심지어 기억력까지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신체 기능이 급속도로 약화된 상태에서 스스로는 먹을 줄도, 쌀 줄도, 잘 수도 없는 유약한 인간 아기를 밤잠도 못 자고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다면 이상한 일일 거다. 생살을 찢는 출산의 고통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그것보다 힘들다니 과연 육아의 고통은 어떠하단 말인가.
주삿바늘 하나도 무서운 내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정도로 아기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No인 것 같다.
‘임신과 출산의 진실'을 알게 된 그날, 남편에게 공유했었던 기억이 난다.
"오빠 회음부를 칼로 죽 찢는대"
"내진이라는 걸 하는데 손을 넣어서 휘젓는 거래."
"출산 후에 오로가 계속 나온대..."
”처음 소변볼 때 진짜 죽을 맛이래"
남편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우리 그냥 낳지 말자… 차라리 내가 낳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도 남편이 낳아줄 수 있다면 고민이 가뿐해질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