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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Mar 11. 2024

낳을까? - 남편 닮은 아이라는 로망

남편이 아빠라면 그 아이는 참 좋겠다.

Pinterest @joliescanailles


길가는 부부들을 보면 대부분 닮았다. 살면서 닮아가기도 한다지만 아마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 나와 비슷한 구석에 이끌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살다보면 배우자가 몹시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마치 자석을 자르면 계속 N극과 S극이 생기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N극쪽에 모여 있던 두 사람이, 집에서는 각각 N과 S의 양 극단을 맡게 되는 것이다. 가령, 정리에 그렇게 서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결혼 후 무척 깔끔한 상대에 비해 지저분한 사람이 되며 한 명은 효자가 되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불효자가 되기도 한다.


나와 남편 역시 겉으로는 꽤 비슷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서야 알았다. 남편은 나와 뼛속까지 매우 다른 존재라는 것을. 계속 발견되는 남편의 새로운 면이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에 비추어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굳건했던 신념이나 가치관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차이점을 가장 크게 맞닥뜨리는 지점은 서로의 원가족을 만날 때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굉장히 개별적인 작은 사회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외국에 간 것처럼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결혼 초기에 남편 가족과 밥을 먹을 때마다 꼭 체할 것 같았다.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인생이란 살아보니 이렇더라 하는 교훈적 문장이 식탁 위에서 오가 반찬을 집어 들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반면 우리 엄마, 아빠와 밥을 먹을 땐 서로의 말을 끊고 자기 할 말을 하기 바쁘다. 남편은 처음에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좋은 점이라면 더 편하고 친구 같다. 식사 자리 하나만 봐도 이렇게 다르다.


남편 부모님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담긴 말도 자주 하신다.


“나는 너희 아빠랑 결혼하길 참 잘했어.”
“너희 엄마가 정말 현명해."


단 한 번도 나의 부모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들이라 이런 말씀을 하실 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아직도 조금 낯간지럽다. 그러니까 내가 연애 초기에는 조금 오글거린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너무나 좋아하게 된 남편의 다정함과 적극적인 표현 방식은 그의 원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결혼은 곧 불행이라는 것이 내가 나의 원가족 울타리 속에서 자라며 터득한 등식이었다. 으레 부부란 자식 때문에 참고 사는 사이라는 것이 무의식에 너무 깊이 각인되어서일까. 결혼을 하게 될 줄 몰랐을뿐더러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나의 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선택을 굳이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임신과 출산, 육아라는 엄청난 인생의 선택을 고민하게 된 데에는 나와는 무척 다른 남편이라는 사람과 그가 자라온 환경을 깊이 목격하고 나서부터다. 내가 경험한 삶의 모양새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다른 형태의 가정도 존재는 것을 알게 되니 내가 확고하게 정의해 둔 가족과 행복의 개념이 달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이 꽤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한몫한다. 태어날지 아닐지 모르는 아기이지만 남편이 아빠라니 벌써부터 그 아이는 정말 부럽다. 나밖에 모르는 나와 달리, 남편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다. 가정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신뢰, 행복을 알기에 그걸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주변 기혼 유자녀 여성들은 “그건 낳아봐야 알 수 있으니 절대 미리 속지 말아라.” 라며 내게 진지한 조언을 해주곤 한다. 하지만 알게 된 지 10년, 반려견을 함께 키운 지가 4년이니 어느 정도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근데, 문제는 내가 엄마라는 것. 좋은 아빠와 별로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괜찮은 걸까?

태어난다면 아빠를 많이 닮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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