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인 Mar 25. 2024

낳지 말까? - 일만 하다 끝나는 하루, 출산은 무슨

내 손으로 아이 키울 수 없는 사회 




남편 얼굴 보기도 힘든데, 아기는 무슨 수로


지난주도 내내 일만 하다 하루가 끝났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 반, 다 끝내진 못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여기서 멈추고 우선 퇴근하기로 한다. 아침 7시에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로 떠난 남편은 이제야 들어왔다. 가끔 자정 가까이 귀가하는 날도 있다.


우리 부부가 평일 퇴근 후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3시간, 짧으면 1시간 남짓. 강아지 산책을 시킨 뒤 간단히 집을 정리하고 씻고 나면 또다시 내일 출근을 위해 잘 시간이다. 퇴근 후 책을 읽을 여유도 없는 이런 일상에 어떻게 '육아'가 추가될 수 있을까?



재택근무가 과연 해답일까?


나는 재택근무가 기본인 회사에 다니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아껴 아침에 요가 수련도 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 싫은 사람들과 억지로 먹기 싫은 점심을 함께하지 않을 수 있어 좋고, 대중교통에 콩나물처럼 끼여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하지만 재택근무라고 해서 한가한 모습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은 데다 가방을 챙겨 집에 가는 것과 같은 퇴근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야근은 기본이다. 식당에 가서 주문만 하면 음식이 나오던 것과는 달리, 내가 먹을 밥을 어떻게든 준비하고 치우는 것까지 내 몫이다.


Pinterest@freepik


재택근무가 가끔 저출산의 해결책처럼 거론되곤 한다. 집에서 일한다니 육아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아이를 직접 등하원 시킬 수 있고 아이가 아픈 긴급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를 안고 일할 수도, 거실에 아이 혼자 놀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내가 근무하는 중에는 외부 기관이든, 시터 등 아이를 돌봐 줄 누군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재택근무 2년째, 나는 '일하는 엄마'에 대해 점점 더 회의감이 들고 있다. 내 밥을 챙겨 먹기도 어려운 구조에서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데려다주고, 눈을 맞춰주는 일이 가능한 걸까? 시터가 온다 한들 엄마가 방에 있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지 않을 수 있을까? 재택근무로 일할 수 있는 회사도 이런 현실인데, 출퇴근을 해야 하는 회사에서는 출산, 육아란 더더욱 꿈도 못 꿀 일처럼 느껴진다. 




육아하는 동료가 내게 끼치는 불편함  


작년에 부서장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변화가 내게 미칠 영향을 그땐 미처 몰랐다. 한 달에 한번 있는 팀 점심 만남은 하원 일정으로 인해 오전 11시로 고정되었다. 뭐, 이건 괜찮다. 문제는 그가 하루 두 세 차례 아이를 등, 하원시키는 시간을 피해 화상 회의를 잡아야 한다는 거다. 어렵사리 잡은 미팅에서 아이를 기다리느라 카페에서 참여할 때면 주변이 시끄러워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아이에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아진 만큼, 팀원인 나와의 소통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년 부서장의 변화를 보며 왜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장 많은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되는 지를 깊숙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어졌다. 솔직히 나도 부서장의 변화가 매우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종종 동료가 육아 휴직을 내서 일이 다 본인에게 왔다는 글이나, 육아 때문에 일을 제대로 안 하는 동료를 욕하는 글이 너무 야박하다 싶었는데 내 일이 되니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네 일하는 문화에서는 출산/육아하는 동료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계 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에 프랑스 본사 매니저에게 메일을 보내자마자 자동 응답메일이 날아왔다.


"락다운으로 내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한다.

아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업무 답변을 빠르게 줄 수 없다."


연차휴가를 낸 것도 아니고, 아이를 돌보면서 일하겠다는 꽤나 당당한 문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메일이 왔다면? 그 사람은 분명 '맘충'이라 욕을 먹었을 거다.




내 손으로 아이 키울 수 없는 사회


주변 맞벌이 부부들을 살펴본다. 부모님의 서포트 없이 육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낳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내게 대부분 엄마가 가까이 사니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아직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엄마의 커리어를 끊고 내 아이를 돌봐달라고 하기가 부담스럽다. 젊은 사람이 하기도 힘든 육아를 손목, 무릎 여기저기 안 좋은 60대 엄마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게다가 아이 육아를 가지고 내 말이 맞다, 엄마 말이 맞다며 감정 상할 일이 많을 텐데 그것도 두렵다.


부부 스스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회라니.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면 엄마인 내가 돌보고 싶다. 너무 이상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당연한 것 아닌가? 일과 시간은 기관에 보내더라도 그 외에 부모가 가장 많이 채워줘야 할 시간을 조부모나 시터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인데. 늘 회사를 졸업하고 싶어 안달 난 나지만 그건 다른 꿈이나 직업을 찾았을 때의 얘기지, 육아에 의한 경력 단절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토리를 입양했을 때가 생각난다. 분명 우리의 일상에서 '어딘가 심심한데? 허전한데?' 하는 틈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틈을 사랑으로 채울 새로운 가족, 토리를 입양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를 끼워 넣을 작은 틈도 보이지 않는다. 내 삶이 일에 파묻혀 있는데 어떻게 출산과 육아를 떠올릴 수 있을까.


저녁이 있는 삶이 선행되어야 아이를 낳고 기를 생각이 들 것 같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근로시간 상위 5위다. 취미는커녕 충분한 휴식도 하기 어려운 노동 강도다. 출산 장려를 위한 각종 물질적 인센티브나 돌봄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낳을까, 말까'를 고민 중인 내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다. 일에 찌든 주중에는 '그냥 낳지 말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이전 05화 낳을까? - 출산도 스펙인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