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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May 27. 2024

낳지 말까? - 기후재앙 앞에 출산이요?

비출산, 가장 확실하며 적극적인 기후 실천책.

Pinterest @NIVERA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태어남을 당하는 존재다. 대학생 때  '인간은 피투(被投)된 존재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접하고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하필이면 던져져도 빡센 대한민국에 던져졌단 사실에 억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어 죽진 않고 여자에게도 의무 교육을 시켜주는 나라에 살고 있음에 감사히 잘 살아야지. 하지만 내가 굳이 또 누군가를 세상으로 던져야만 할까? 특히 기후위기 문제를 생각하면 세상에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는 눈앞의 문제다. 기후 재앙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1.5도씨 상승이 5년 안에 다가온다는 예측이 다수다. 지난달 영국 가디언지가 380명의 기후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최소 2.5도 이상 상승해 인류가 극단적인 기후변화를 경험할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들 다수는 기후 변화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상했다고. 세계경제포럼(WEF)은 2050년까지 기후 위기로 인해 1,450만 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2050년이면 난 겨우 예순인데!




기후위기에 대한 환경학자, 기후학자들의 경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다지 비상 상황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는데 언론이나 SNS에는 연예인에 대한 가십이 훨씬 많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영화 <돈룩업>이 그린 것과 정확히 같다. 오죽하면 2021년엔 영국의 한 신부가 기후변화를 외면하는 언론을 비판하기 위해 직접 자신의 입을 꿰맨 채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의 충격적인 시위가 벌써 3년이 지났는데, 그리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모두가 고기를 먹고, 도로 위는 자동차로 꽉 차 있으며, 아파트 재활용장엔 플라스틱과 비닐이 넘쳐난다.


사실 기후위기는 너무나 무력감을 느끼기 쉬운 일이기도 하다. 지구 온난화는 너무 거대한 담론이라 일개 개인이 뭘 할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고작 카페에서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육식을 줄이기 정도다. 여전히 안락한 자가용도 타고 일 년에 몇 번 비행기도 탄다. 이미 옷이 많은데도 유행을 이유로 매 계절 또 옷을 산다. 가장 편리하고 저렴한 방법이란 핑계로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사고 수많은 포장재와 쓰레기를 버린다. 채식과 텀블러 따위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한 명의 피해자라도 덜 만들 수 있다. 비출산은 나의 가장 적극적인 기후 실천 행동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무관심을 저격한 영화, <돈룩업(2021)>



가끔 헷갈린다. 기후위기에 있어서는 인간이 악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인간이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가 없어서 나라가 망한다고 한다. 사람이 많아서 생긴 문제와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 두 가지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인류가 살지 못하는 행성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으라는 거지?


부모로서의 삶을 선택한 지인들에게 늘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기후 위기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어?" "아이가 자랄 지구 환경에 대해 어떤 준비나 실천을 하고 있어?" 비꼬려는 게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다. 하지만 섣불리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지인들은 대부분 아직 한창 어린 미취학 아동을 키우느라 너무 바쁘다. 어린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필요한 물건이 많다. 아이를 키우며 저탄소 생활을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요즘 세상에 천기저귀를 쓸 수 있겠는가? 당장 필요한 물건을 새벽배송으로 시키지 않을 수 있을까? 나라도 육아가 편해진다고 광고하는 솔깃한 제품들을 외면하긴 어려울 거다. 당근에서 중고 제품을 사는 것 정도 할 수 있으려나.


기후 위기에 아이를 왜 낳았냐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은 아주 개인적인 문제다. 기후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건 명백한 팩트지만 '낳을까, 말까'를 고민함에 있어 기후 문제는 가장 마지막 주제로 떠올랐다. 거시적인 이슈보다는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와 '나'의 성격과 기질에 대해 돌아봤고, 또 당장 아이가 생겼을 때 '당장 발생 가능한 일'에 대해 먼저 고민하게 되었다. 저출산으로 나라가 망해간다는 팩트 때문에 내가 억지로 출산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기후 위기라는 팩트 앞에서도 아이를 낳는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 던져진 우리들과,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대해 좀 더 자주 얘기할 수 있는 열린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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