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효녀도 아니면서
"저희는 아이 생각이 없어요."라고 하면 따라오는 단골 질문 중 하나가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세요?"다. 온전히 부부 두 사람이 결정해야 할 문제에 부모님 의사가 왜 중요할까 싶지만, 빨리 손주를 봤으면 바라는 마음에 원치 않는 보약을 먹이거나, 아들을 못 낳는다고 며느리를 들들 볶는 서사가 얼마 전까지도 드라마 단골 주제였던 것을 감안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결혼한 지 7년째, 양가 부모님 중 누구도 아직 아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신 적이 없다. 하기 싫은 건 절대 안 하고, 할 말은 꼭 하고 마는 내 성격을 알기에 속으로만 끙끙 앓으시는 건지, 진정으로 부부의 선택을 존중해 주시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그런데 문득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싶으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에게는 이미 손주가 둘이나 있어 걱정이 안 되지만 외동딸인 내게 엄마, 아빠의 '손주 볼 기쁨'이 달려있다는 사실이 문득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요즘 세상에 대를 잇기 위해, 혹은 부모님이 손주를 너무 바란다고 출산을 결심할 사람이 어딨겠나 싶었는데 말이다.
물론 내가 부모를 위해 인생의 모험을 걸 정도의 효녀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난 불효녀에 가깝게 살아왔다. 고등학생 땐 가족으로부터 너무 벗어나고 싶어 집에서 가장 먼 기숙사 학교에 지원해 도망가기도 했고, 대학 시절엔 통학 가능한 거리의 학교였지만 굳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거리를 두었다. 결혼 날짜도 내 마음대로 잡아서 통보하고, 대학이나 전공, 회사를 선택할 때도 스스로 결정을 내려왔건만, 비출산으로 마음을 굳히고자 하니 갑자기 엄마, 아빠가 신경 쓰이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새로운 사람이 가정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경험한 덕분인 것 같다.
무뚝뚝하고 버릇없는 딸이 데려온 살가운 사위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다정한 말투와 배려심을 장착한 남편 덕분에 집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우리 집 가족 식사 자리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다니. 실로 오래간만에 가족 여행이라는 것도 가보게 되었다. 이전까지 내겐 근심 걱정이던 '가족'이란 단어가 남편과 함께 한 이후엔 참 많이 편안해졌다. 그러니 새로운 생명인 아이가 태어나 가져올 변화는 얼마나 엄청날까?
100세 시대, 60세도 청춘이라지만 엄마, 아빠의 모습은 점점 노인이 되어간다. 인생의 새로운 이벤트도, 도전도 재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인생이 저물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반면 손주 '덕질'에 빠진 시부모님을 보면 예순 넘어 새로운 사랑이 주는 행복이 느껴진다.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 단계마다 함께 기뻐하고 응원할 하는 존재로 또 한 번 살 수 있다니, 이래서 손주는 복이라고들 하나보다.
"너도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봐야 안다"
예전에 부모님께 반항하고 나서 들었던 잔소리 중 가장 싫었던 말이다. 나랑 똑같은 자식이라니 이건 저주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리고 낳은 건 엄마, 아빠인데 내가 왜 부모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마다 튀어 오르는 반항심에 '난 자식 절대 안 낳아야지'라는 마음은 더 강해졌었다. 근데 지금 와서 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삼십 대 중반에도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아직도 철 없이 쏘아대는 딸인 걸 보면 말이다.
자식은 부모가 됨으로써 비로소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도 비슷하다. "이제야 부모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 "아이를 낳아보니 부모님께 진정 감사하다." 등등.. '낳을까, 말까'라는 이기적인 고민에 있어 문득 부모 생각이 드는 것은, 단지 손주를 안겨주냐 마냐의 문제를 넘어 내가 부모를 진정으로 이해할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김주환의 <내면소통>에 나오는 얘기다. 아이에게 '나'라는 자의식이 생기는 건 만 3.5세 이후이며, 그 이전까지 아이는 자신과 양육자를 동일시한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와 양육자에 대해 생각할 때 뇌의 반응은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아래 내용도 흥미롭다.
양육자에게 감사하는 것이 곧 나의 내면에 깊이 각인된 나 자신을 긍정하고 나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특히 어린 시절의 양육자 모습과 목소리를 기억하며 그 시절의 양육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자기 긍정과 타인긍정을 동시에 하는 것과도 같은 강력한 효과가 있다.
<내면소통> 357p, 김주환
평생 아이로 남을지, 부모가 되어볼지의 결정은 결국 자기 사랑의 실현과 맞닿아 있는 걸까. 부모가 됨으로써 한때 나와 다르지 않았던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아이 있는 삶이 주는 몰랐던 행복이려나.
물론, 이 이유 만으로 출산을 감행하진 못하겠다만 인류가 자연스레 출산과 육아를 지속해 온 이유를 '종족번식의 욕구' 이상의 관점에서 공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