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이별할 줄 알면서도

떠나보낼 것을 알면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

by 혜인


강아지를 데려오는 일을 오랫동안 망설였던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몇 달째 유기견 입양 공고에서 수많은 강아지 사진을 보고, 결국엔 아직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던 어느 날 토리의 사진을 보았다. 누가 봐도 호기심 많고 활발하며 갈색 털이 매력적인 강아지를 보자마자 우리는 직감적으로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리란 생각을 했다. 결심이 서자 그동안 우리를 고민하게 했던 부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행동 방향을 상세하게 리스트업 했다. 거기엔 분리불안이 일어나면 몇백만 원을 주고서라도 훈련을 진행할 것이며, 현관 중문 설치 공사도 감수할 것, 가구를 다 뜯어먹을 수도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그 리스트엔 없었지만 유기견을 단번에 입양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이별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시작하는 인연이라니. 한 해 전 남편의 본가에서 17년을 키우던 강아지가 별이 되었고, 죽기 전에 많이 아팠던 모습을 두 눈으로 봤기에 내가 과연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토리를 키우기 전 했던 수많은 걱정들은 대부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거나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상실에 대한 걱정은 토리로 인한 행복이 커지면 커질수록 해결되기보단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날 두렵게 한다. 엄마가 만날 때마다 늙어가는 모습을 볼 때, 한 침대를 쓰며 사는 이가 언젠가 없어질 것을 상상할 때 그렇다. 내가 죽는 그 날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사라지고, 그로 인해 만날 수 없는 그리움에 슬퍼할 내 모습이 두렵다. 아직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기에 더 무섭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날이 오면 나는 얼마나 온전할 수 있을까. 별다른 굴곡이 없다면 토리의 죽음은 내가 가장 처음으로 직면할 상실 경험이 될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만남도 헤어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의식하고 시작하는 인연은 많지 않다. 정말 큰 용기를 내어도 여전히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문득 작년에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속 한 페이지가 생각났다. 존재와 인연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는 대신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에 집중하며 살라는 교훈. 어쩌면 나의 두려움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는가’라는 질문처럼 바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누군가가 태국의 아잔 차 스님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하며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이별과 상실은 우리 존재에 담겨 있다. 그런데 어떻게 행복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것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안전할 수 있는가?"

아잔 차는 따뜻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나서 탁자 옆에 놓인 유리잔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이 유리잔을 좋아한다. 나는 이 유리잔으로 물을 마신다. 이 잔은 놀라울 만큼 훌륭하게 물을 담고 있으며, 햇빛을 아름답게 반사한다. 두드리면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낸다. 그러나 나에게 이 유리잔은 이미 깨진 것과 같다. 언젠가는 반드시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선반에 올려놓았는데 바람이 불어 넘어지거나 내 팔꿈치에 맞아 탁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 유리잔은 산산조각 난다.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이 유리잔의 속성 안에 ‘필연적인 깨어짐’이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유리잔이 이미 깨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이해할 때, 그것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그것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유리잔이 이미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인식할 때 유리잔이 담고 있는 물, 유리잔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을 더 예찬할 수 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파국의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하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 유리잔처럼 우리의 육체도, 연인의 육체도 이미 부서진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때 삶의 순간순간이 소중해진다. 그것의 소중함과 가치가 두려움과 슬픔보다 앞선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덧없고 영원하지 않으니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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