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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eoul, Soul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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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ang Oct 18. 2024

네 번째 이야기

Sausalito

현정은 웃음이 많았다.

재철은 늘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재철은, 모두를  ‘silly’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재철이 떠나고, 현정과 지숙은  ‘silly’가 되는 것을 잃었다.

 ‘silly’가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재철과 함께 해야 온전한  ‘silly’  될 수 있으니까.


현정은 임신을 하고,

그녀의 내면에 감추어 두었던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와 버렸다.

의사는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로 감정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고,

현정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6개월쯤 그녀의 상태는 더 나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고,

감정을 대항할 무방비 상태에서,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고,

엄마의 모습과 행동과 마음이 아기에게 영향을 주게 될까 두려웠다.


그녀는 우울증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려고 노력했고,

상담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 상태는 어떤 것도,

흥미롭지 않고,

재밌지 않고,

기쁘지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


재철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충격으로 인해,

그녀에게 상실, 고통, 두려움이라는 트라우마를 만들었다.


상담가는 그녀가 그 충격으로 인해,

감정이 현실과, 그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이에서  단절된 상태라고  했다.


현정은 생각했다.

삶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들, 감정들, 그런 것들의 강도는 어느 정도 일까.

어느 정도가 돼야 충격적이고

어느 정도가 돼야 무뎌지는 것일까.


하지만, 현정은 그녀가 지금까지 잘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달려왔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현정은 달리지 말았어야 했다.

주저앉아서 울고,

그리워하며,

아빠를 잃은 그녀에게

충분히 애곡 할 시간을 줬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지숙 때문에, 지숙마저 더 힘들게 할거 같아서,

참았고,

그래서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새로운 곳에 와서는 오히려 감정을 더 억눌렀다.


슬픔과 애곡을 넘어.

모든 감정과 기분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재철을 만나면,

‘나 그래도 이만큼 하며 살았어’

‘아빠 없어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만큼은 살았어.’

라고 해야, 재철이 안심할 거 같아서.

그리고 현정이 살아야 지숙도 살 수 있으니까.


이런 모든 억누르고 외면한 고통과 슬픔이 그녀의 몸과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아,

더 이상 제어가 되지 않고,

터져 나 오고 만 것이다.

 

기쁨과 우울.

절망과, 희망.

좌절과 기대.

그런 극과 극의 감정이 현정의 마음을 뒤 흔들었다.


현정과 토드의 사이도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토드는, 결혼생활에 흥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워낙 지금껏 얽매임 없이,

계획 없이 자유롭게 살았던 그라,

결혼이라는 제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현정을 사랑하니까.

현정과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결혼 생활만큼, 현정에게도 지쳐 가고 있었다.

그녀의  정확함, 단정함, 깔끔함 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느껴 결혼했지만,

그녀에게선 늘 목에 타이를 메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고,

그 답답함에 지쳐 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사교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한 그이지만,

그의 사교계의 재 등장은 여전히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토드도 사교계의 재 등장이 꽤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그를 위해 웃고 말하고 떠드는 이들 속에서 ,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답답하진 않았다.


현정은 토드와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그와 그녀를 그렇게 조용히 놔두지 않았다.


토드는 늘 초대를 받았고, 거절하기도 했지만,

그는 대부분을 참석하길 원했다.


현정과 함께.

부유하고 화려한 아름다운 젊은 부부로.


현정은, 어느 정도는 토드에게 맞춰 주려 했지만,

그가  즐기고 누리는 삶에 지쳐 가고 있었다.  

게다가 결혼 후에도, 그의 주변은 늘 여자가 있었다.

여자가 다가오거나, 눈웃음을 지을 때,

그가 결혼한 남자지만,

’여전히 매력적 이예요’라고 여자들이 표현할 때,

토드도 적당히 거절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런  관심을 즐겼다.


현정은 모임에 가서 그런 것을 보는 것도,

대하는 것도,

지쳐 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다가와,  

"어머 당신이 토드 부인이군요.”

“반가워요.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소문대로 정말 아름다우세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지만,

질투에 찬 눈빛,

혹은 고작 너였어 가 담긴,  

무시하는 눈빛,

가식적인 친절함.


어느 모임이나, ‘bully’는 있으니,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고 잘 통하는 이 들과 모이면 되지만,

현정은 그런 게 싫어 그동안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학교에서,

사회생활 속에서,

심지어 길을 걷다가도,

외국인 아시안 여자로서,

순간순간 받는 차별과 무시를 타국에서 이겨내며 살기도 힘든데,

파티라는 곳까지 가서,

그것도 웃고 떠들면서 그런 것까지 감당하기에는 지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했으니,

무시와 차별 정도는 공부로 이겨냈고.

사회에서는 일을 잘했으니,

직책과 실력으로 무시와 차별을 이겨 냈다.  


그렇게 전투를 하고 오면,

혼자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내일 또 전투가 있을 테니.


결혼하고 나니,

새로운 전투가 시작이 되었다.


토드야 워낙 익숙하고 그가 오히려 무시하고 차별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관심받기는 그에게는 주 종목이니,

파티장은 그의 무대고,

그는 늘 주인공이다.  


현정은 그와 함께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의 부인 이기 때문에

그 무대에 같이 올라야 했고,  

주인공이 되어,

동경과, 질투와, 차별과, 무시가 담긴 관심을 받았다.


 

그렇게, 파티 참석에  지쳐 갈 때쯤,

임신을 했고,

현정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핑계가 적절하니까.


게다가 토드는 사교계에 재 등장 하면서,

이전에 적당히 거절했던 여자들을 거절하지 않고 만났으며,

현정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묻고, 왜 그러냐고 하지 않았다.

그가  그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리고, 그녀의 우울증 만도 감당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정은 시간이 좀 지나면,

그녀의  마음이 조금 더 다스려지면,

토드에게 말하려 했다.

재철의 이야기, 그도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내면에 대해 말하지 않은,

가족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억누른 감정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

상담을 받고 있는 이야기까지.  


이해를 바라지는 않지만,

이유를 말해 주고 싶었고,

그와의, 관계도 회복 하려 했다.


토드를  애틋하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결혼은 신뢰와 믿음과 책임감 그리고 안정이 수반된 관계라고 생각하니까.


토드가 모임에 나가 여자를 잠깐잠깐 만나도.

그 둘의 사이가 소원해졌어도.

처음에 둘은 그런 관계로 시작 됐고,

다시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에게,

네가 여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파티보다는 가족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면 좋겠어.

우리는, 한 아이의 엄마고 아빠니까,

엘레나를 위해서라도,

서로 회복이 필요해.

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토드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이전에 하루 밤 즐기려던 여자들과는 다르다.


그녀다.

‘Catherine’


현정은 그와 다시 함께 하려던 계획을 꺼내 보기도 전에,

무참히 짓 밟힌 기분이 들었다.

이 고통은 가족의 죽음과는 다른 고통이었다.


배신?


그래.

배신감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이다.


그래도, 현정은  말해 볼까?라고 잠시 고민도 했었다.

배신자에 대한 자존심을 세워 봤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신자에 대한 용서?

그것은 더욱더 아니다.  

배신자와의 화해?

말도 안 된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이해나, 용서, 화해 따위는 하지 않아도,

그와 현정이 멀어져 있던 것들에 대해,

왜 그런지, 서로 대화 정도는 하고,

이해까지 하면 더 좋고,

그래서 각자 회복이 될 수 있다면,

그래 그것만으로 가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럴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기대.


하지만, 현정의 마음에, 토드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차 올랐다.

배신했잖아.

넌 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를 외면했어.

내가 너와 회복하려 할 때 넌 그 년을 다시 만났어.


그러다가도 현정은

토드가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다.

라고 최소한 그렇게 말해 주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기대.


어느 날, 토드도 그동안 참아 왔던,

현정에게는 다 털어놓지도 못하고,

꾹꾹 누르다,

그것을 술과 여자로 풀던,

그는,

대화 대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잘못했다 대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반문했다.

내가 이런 거 한두 번도 아닌데, 이번에는 왜 그러냐.

너랑 나 이미 쇼윈도 부부 아니야?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미안하다 대신, 나도 얼마나 숨 막히는 줄 알아?  

네가 얼마나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줄 알아?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 뜻은 아니었다 대신에,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이혼이야?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라고 말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뱉어진 말이 되어 버렸고,

상대방의 귀에  쏙쏙 꽂혀,

마음까지 깊이 파고들어 갔다.


현정은 소파에 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녀가 기대했던 말 이상으로 들었다.


잠시 후,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결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사라졌다.


그와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녀와 그는 이제 무의미하다.


“Yes, Divorce. We are nothing. We are nothing

anymore.“

“What? We are nothing?”

“Yes. so, divorce, it is good for us.”


토드는,

이혼,

무의미라는 말에,

화를 참을 수 없어,

카운터에  놓인 화병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유리가 대리석 바닥에 산산이 부서졌고,

파편이 튀어, 그의 다리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  


토드는 그때 현정이 그를 바라보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배신, 실망, 그로 인한 증오와 미움이 아닌,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런 젠장.


토드는 생각나는 욕이란 욕은 다 끄집어내며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을 경멸하고, 미워하듯이.


그는, 현정과 엘레나에게 그가 더 이상  안전하고, 건강한 가족이 되어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토드의 가족들은, 정신 나갔냐며 다시 생각 하라며 그를 말렸고 ,

현정에게도 찾아와 그 대신 사과를 하거나,

혹은, 이혼하면 어쩔 셈이냐 등등의 협박도 했지만,

둘은 서로 이혼에 동의했다.  


 

합의 이혼을 했고, 토드는 재산분할도 할 수 있을 만큼 현정에게 위자료로 줬으며,

50대 50 양육권에 양육비를 책임지기로 했다.

그는, 살고 있는 집을 현정과 엘레나가  살게 하고,

현정과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엘레나가 오고 가는데 불편하지 않는 거리 정도에 집을 구해 나왔다.

엘레나를 만나는 날은 그 집에 머물고,

아이가 오지 않는 날은 샌프란시스코의  펜트하우스에서 지냈다.


이혼 후, 현정은,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사람의 딸로서,

살아가면서,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누구 인지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정말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졌고,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도망치듯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을 잠시 내려놓고,

그녀, 그

리고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현정은 집도 엘레나와 둘이 살기에 편안하도록 다시 꾸몄고,

지숙이  언제든 와서 머물 수 있도록 그녀의 방도 따로 준비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다른 집에 소개해 주거나,

토드의 엄마 집으로 돌려보냈고,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토드는 현정이 큰 집을 혼자 관리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집 관리 업체를 고용해, 일주일에 한 번씩 마당과, 수영장을 관리하고,

일 년에 한두 번 집 점검을 의뢰했다.

집에 문제가 생겨도, 업체에서 관리하고 수리까지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현정이 신경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현정은 이제 막 3살 된, 엘레나를 일주일에 세 번  데이 케어에 보낸다.

동네에 있는, 나이가 좀 있으신,  전직 데이 케어 선생님이었지만, 일찍 은퇴하고,

집에서, 보조 선생님 두 명을 데리고,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집처럼  편안한 곳이어서 현정은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의 나이도, 엘레나와 비슷한 2살부터 4살 정도고,

주로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다.


현정은 엘레나를  데이 케어에 보낼 만큼 바쁜 것은 아니지만,

청소해 주는 사람들이 오면, 방해가 되지 않게 하고 싶고

또, 그 시간에  필라테스를 가고 그중  하루는 심리 상담가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주중을 보내고,

주말에는 ‘Coastal trails hiking’에 참석해, 달린다.


“Coastal trails hiking’를 하는 것이,

그녀가 지금 생각하는 삶의 목적과 질문에  맞나 했지만,

몸 안에 쌓인 것 같은 감정적, 정서적 독소를 자연 속에서 정화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재철과 지숙과도 등산을 자주 다니곤 했었다.


현정은 러닝 클럽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불필요한 소셜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 뛰던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며 뛰던,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며,

산에서 내려와도 별다른 모임이 따로 없다.  

있다 해도, 참석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물어보는 이 없고,

그룹 채팅에 답글을 달지 않아도, 누구도 부담을 주지 않고,

현정도 답장에 대한 부담이 없다.  

자연에서 만나서 그런가, ‘bully’  도 없는 것 같다.


달리기의 리더는 때마다 바뀌었는데,

그들도 대부분 길 안내 정도만 하고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질문하지 않았다.

 

오늘도, 엘레나를 데이 케어에 보내고, 필라테스를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청소하러 온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고

아침에 만들어 놓은 샐러드를 점심으로 간단히 먹고,  

상담가 ‘Dr. Meghan’를 만난 후,

엘레나를 데리러 간다.  


평소와 다름없지만, 오늘은 왠지 바쁜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마음이 바쁘고 분주해서 그런 것 같다.


평소에 엘레나는 주말에 토드를 만나러 가는데,

토드의 일정으로 오늘은 금요일에 간다.

아이를 데이 케어에서 데려와, 토드네 집에 가는 가는 것을 준비시켜야 하니,  

하루가 더 바쁘게 느껴진 것이다.


 토드가 현정의 집으로 엘레나를  데리러 왔다.

문 앞에서, 애착 인형을 안고 기다리는 엘레나를 토드가 안아 올리며 인사를 하고,

현정을 보고도 인사를 한다.


“How are you? Is everything ok?”

“So so.”

“I’m sorry I changed my schedule and asked

you to come pick her up.”


토드는, 다음 주 월요일에 ‘Texas’에 비즈니스 미팅이 있어,

일요일 아침에  떠나야 한다.

그래서 이번주는 금요일, 토요일에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에 현정이 그의 집으로 엘레나를 데리러 간다.


“It’s totally fine. I’ll pick her up on Sunday.”

“Yes, how about around nine in the morning?

Does it work for you?”

“Yes.”

“Thank you so much. Have a good weekend

and see you on Sunday.”


거의 6년을 함께 연애와 결혼을 한 사이지만,

이혼하고 나니,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 어색하다.


현정은 엘레나를 한번 더 포옹해 주고,

그들이 차를 타고 사라 질 때까지 문 앞에 서 있다,  

집으로 들어간다.


잠시 소파에 앉아 창가를 바라본다.

집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도 다 했고,

엘레나도 토드네 갔다.

조용하다.

간간히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창밖으로 들려온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현정은 순간, 지금 시간에 문자도 아니고 전화가 오지 하며,

방금 간 토드와 엘레나에게 일이 생겼나 해서 급하게 전화기를 집어 든다.


제이슨?

왜?

전화를 할까?


현정은 전화기를 보며 잠시 생각하다, 응답한다.


“무슨 일이야?”

“안녕. 현정.”


현정은 순간, 제이슨과 처음 통화 하는 건데,

너무 다짜고짜 무슨 일이냐고 물은 것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


“Hi. Jason. You called me instead of texting.

I wonder what happened to you.”

“아. 그랬구나. I'm sorry for startling you.

I could text you, but you didn’t respond.”

“아.”


현정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미안한 것 같지는 않다.

상대방도 의사를 물어보고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니었고,

응답을 들으려고 보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It’s ok. I didn't text you to get a reply.”

“응.”

“오늘은 일이 있어서,  I call you.”


일이 있어서 라는 그의 말에 현정은,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하면서,

그녀에게 말할 만한 일이 있나 의아하기도 하다.  


“What’s happening to you?”

“I am in San Francisco today for working.”

“Yes.”

“Are you free tonight? How about eating out

tonight?”

“응?”


예상하지 못한,

그가 일이라는 것이 저녁을 같이 먹자라는 것에,

그녀는 처음보다 더 놀라,

그저 응? 하고 대답을 한다.


그는 차분하게 이 상황과 그의 마음을 설명한다.

일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왔고,

마침 금요일이니, 근처 사는 친구랑 저녁 먹고 싶다고,

너네 집 근처에 꽤 괜찮은 해산물 식당도 있던데,

그리로 가도 된다고.


“산호세 가도, 혼자고, 저녁은 먹어야 하고,  너랑 같이 dinner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래?

Do you have anything else planned for tonight?

“Well. 그건 아닌데.”

“그럼 같이 dinner 하면 어때? ”


제이슨은  그가 원하는 바를 좀 더 강요하면서,

여전히 친절하고 매너 있게,

그녀의 의사를 묻는다.


현정은 그의 제안이  일방적 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거절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I can go over there.”

“Where are you now?”

“Me? I am at home.”

“그럼 지금 시간 여기까지 나 오는 건 너무 오래 걸려. 내가 갈 수 있어. 괜찮지?”

“응?”


현정은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당황스럽고,

왜라는 생각도 들지만,

딱히 거절할 말도 찾지 못하면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예스도 노도 아닌,

‘응’이라는 단어에 물음표를 걸은 말을 되풀이한다.


“현정.”


그녀가 더  말할 새도, 생각할 새도 없이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It’ll take about 30 to 40 minutes to get there

from here. I will send you the address. See you at that restaurant. 알았지?”

“알았어.”

“See you soon. Bye.”


제이슨은 전화를 서둘러 끊는다.
현정의 마음이 바뀔까 봐.

다소 일방적인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나름 자연스럽게 저녁 약속을 잡은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녀 와의 식사약속을 잡는 것이 이렇게 뿌듯할 일은 아니지만,

그는 언젠가 시간과 상황이 되면 러닝 클럽에서 말고,

그녀를 따로  만나고 싶었다.

만나고 싶은 이유는 딱히 모르겠지만,

주말에 그녀를 만나면, 그녀와 있는 시간이 좋았다.

제이슨은 그녀에게 느끼는 그의  감정이 낯설 면서도 흥미롭고 좋다.

좋다는 기분이 좋아한다 라는 마음과도 연결되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이런 걸 끌림이라고 하는 걸까?

하지만, 혼자 너무 앞서 나가고 싶진 않다.


그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회사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현정은 소파에 머리를 기대, 잠시 생각한다.


약속이 있어

오늘은 안돼


라고 말하면 될 걸,

집에 있다고 하고,

약속도 없다고 곧이곧대로 말하고,

얼결에 저녁 약속을 잡은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전화해,

안된다고 말할까

몇 번을 생각한 끝에 들은 생각이,

이런 약속이 또 뭐라고,

이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 까지 생각하고,

약속을 취소하고,

그러나 하며,

가벼운 약속에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혼자 저녁을 먹는 건 기분이 좀 그럴 것이야.

게다가 금요일이고,

근처 사는 사람에게 가볍게 식사나 하자고 충분히 물어볼 수 있지.

게다가 미국에서 만난 동네, 한국인 누나, 동생, 뭐 그 정도쯤으로 생각하고 연락했겠지

라고 생각하다 혼자 피식 웃는다.  

생각해도 너무 자세히, 깊이 생각하는 게 우스워서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간다.

다른 청바지로 갈아입고  티 셔츠도 새 걸 입는다.

조금 토독토독한 아이보리 색의 카디건도 걸치고, 머리는 하나로 묶는다.


먼저 도착한 그가 문 앞에서, 자리를 예약하고 있다.  


깔끔하게 다림질이 된 베이지색 면바지에 하얀색 남방 그리고 하늘색 스웨터를 어깨에 걸치고 있다.

운동복을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현정이 다가가자, 그녀를  보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


“전화로는 예약이 안된다고 해서. 더 빨리 와서 예약했어야 하는데, 좀 기다려야 된돼.”

현정은 레스토랑 앞 벤치에 앉으며 말한다.

“괜찮아.”

“기다리면서, 한 잔 할까?”

“그래.”


제이슨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바에서 미모사 두 잔을 시킨다.


“미모사 시켰어.”

“잘했어.”


서버가 미모사 두 잔을 들고 나오자, 제이슨과 현정은 잔을 받아 든다.

“저녁식사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heers.”

현정은 제이슨의 잔을 살짝 부딪히고, 한 모금 마시고는 말한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내가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집에도 초대해 한국음식도 해주고, 그럴 텐데.”

“그러게. 나 살짝 기대했었는데.”

“안 먹는 게 나을 거야.”

“어?”


잠시 후, 그는 알아 들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 그런 말이구나. 한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다 잘할 거라는 건 편견이지. 이탈리아 사람들도 모두 다 파스타를 잘 만드는 건 아닐걸.”

“한국 음식만 못하는 건 아니야.”

“아. 하하하 그런 말이구나. 그런데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거절부터 당한 기분이지?”


현정은 미모사를 한 모금 마시다, 죽 들이킨다.

달콤하고 맛있다.


“한잔 더 시켜 줄까?”


제이슨은 바에서 미모사 한 잔을 더 시키고, 간단한 애피타이저도 주문한다.


제이슨이 돌아오자, 현정이 말한다.

“밖에 앉아 있는 것도 괜찮네.”

“오늘 샌프란시스코도 날씨 좋았어. 산호세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쉽더라.”

“늘 이때가 가장 날씨가 좋은 거 같아. 샌프란은 여름에는 바람 불고 흐릴 때도 있잖아.”


여름의 샌프란은 더운 공기와, 해수면이 만나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으로 등등,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안개가 많고 가끔은 바람도 부는  ‘chilly’  한 날씨다.


가을이 시작되면,  샌프란시스코는

도시도,

금문교위의 하늘과 그 아래의 바다 모두 푸르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무엇을 해도 좋은 날씨가 된다.

걷기에도,

‘Sailing’ 하기도,

‘Wedding’을 하기도,

지금처럼 밖에 앉아 맑은 하늘에 핑크빛으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며,

한잔 마시는 것도.


“맞아. 저녁 먹기 딱 좋은 날씨야.”


제이슨은 또 치아가 다 보이게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현정은 그런 그를 보면서,

얼굴 근육이 어떻게 저렇게 유연해서,

치아가 다 보이게 웃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현정이 두 번째 미모사를 거의 다 마셨을 때쯤 웨이터가 와서,  자리를 안내한다.


창가 쪽 자리다.

넓은 창으로, ‘bay’가 보여,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것 같다.  

지는 석양으로, 하늘이 붉은빛, 푸른빛, 그리고 핑크빛을 낸다.


“여기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왜?”

“여기 트레블러에 나오는 맛집이야. 창가에 앉아, 베이뷰를 보면서, 오이스터와 와인을 즐기세요. 이러면서.”

“그래? 여기 살면서도 몰랐네.”

“아. 배고프다.”


현정도 미모사 두 잔에, 애피타이저까지 먹었는데도, 허기짐을 느낀다.


“이거 먹어봐. 제일 크고, 맛있어 보여.”


현정은 사실 생굴을 좋아하지 않지만,

안 좋아해

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생굴도 먹는 현정이 되고 싶다.  

먹어 보니 꽤 신선하고, 맛이 괜찮다.  

현정이 먹는 것을 보고, 그는 하나 더 집어 현정의 접시에 올려 주고,

그도 먹는다.


“신선하고. 맛있네. 더 시킬까?”

“그럴까?”


현정은 평소대로,  

괜찮아.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

다른 음식도 있는데,

라고 말하려다,

그래 라고 말한다.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고,

안 먹는 걸 먹는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현정은 서빙된, 굴에 와인까지 한 잔 더 비운다.

그는 드링크 메뉴를 보며 현정에게 묻는다.

“다른 거 시켜 볼까?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추천할 만한 거나?”
“네가 좋아하는 거 시켜.”


제이슨은 이탈리안 스타일의 가볍고, 건조하고, 레몬이나, 라임, 배나, 자두 혹은 사과 향의 과일 맛이 나는  ‘Pinot Grigio’를  주문한다.


제이슨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으며, 말을 한다.

현정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웃는 것을 보며 웃는다.

웃음도 하품처럼 전염성이 잇는 것이 분명하다.


제이슨의 등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녀의 손에 닿은 그의 몸의 감촉을 느껴 본다.  

탄탄한 근육 사이 어딘가, 톡 튕겨져 나올 것 같은 보드 라움이 느껴진다.

그의 몸이 아직도, 열정으로 상기되어,

그녀를 꼭 안은 두 팔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너무 더워.”

제이슨은 그녀를 안고 있는 팔을 풀어, 손바닥으로 부채질하듯 흔들고,

입으로 현정의 머리카락에,

’호’  하고 바람을 불어 준다.  


창문을 여는 방법도 있고,

에어컨을 틀어도 되는데 ,

그의 행동이 현정은 로맨틱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그녀가 얼마 만에 이런, 달콤하고, 로맨틱한 기분을 느꼈어나 생각해 본다.

아마도,

와인과

이 젊은 남자의 순수와 열정 사이의 섹시함에 잠시 매료 됐을 것이다.


 현정은 그의 팔을 베고 누워 그를 마주 본다.

그의 눈동자에 그녀의 얼굴이 비춘다.


“좀 더 자.”

제이슨은 현정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현정은 다시 눈을 감고,

꽤 낭만적이고 로맨틱하며 달콤하다고 느껴지는 꿈 속으로 빠진다.


현정은 일상으로 돌아오고자 하지만, 그날 밤을 생각하며,  

만나고 싶고,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우울증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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