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Covid19, 격리
'코비드 19'이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너무 강력하고,
전파력이 강해,
전 세계 유행 대 질병으로 급속도로 퍼져 갔고,
결국 전 세계 지구인은 격리를 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돌아가는 모든 일들이 정지되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중단 됐고,
자연이 아닌 것들을 제외하고,
지구의 생명체 들은,
고요히,
모두,
그들의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길어야 한 주 정도 일 줄 알았던 격리는,
2주가 지나고, 3주 째나 이어지고 있다.
그 지붕 아래,
아이 한 명과 어른 하나.
아이는 놀아주고 돌봐줄 이가 필요하고,
유일한 그 어른은
아이와 놀아주고 돌봐 줘야 한다.
현정은 매일매일 뭐라도 하면서 지내려고,
안 하던,
베이킹에,
페인팅에,
점토까지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그런데,
아이도,
점점 재미없어하고,
어른도,
하고 나면,
치우는 데만도 한나절 걸리니,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걷고 뛰는 것에 이제 막 익숙해서,
신난 아이의 에너지를 하루 종일 감당 해야 하고,
게다가 호기심이 폭발할 나이이니,
하루종일
“mommy”
“mommy”
“mommy”
부르며,
뭐든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What’ s this?”
“What’ s that?”
하는 아이에게,
대답해 주고,
설명해 주면,
저녁에는 쉰 목소리까지 났다.
그리고, 하루종일,
먹이고 닦인 후,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아이와 함께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하루 중 아주 잠깐,
엘레나가 낮잠을 자는,
한 때,
겨우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는다.
부억도 거실도 마당도, 방도
어느 한 구석 정리된 곳이 없는,
바이러스가 아닌,
마치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듯한
집을 보지만,
청소할 힘도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3월에 시작된 격리는 ,
5월쯤 부분 해제가 되었고,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으며,
학교나 회사도
‘Virtual meeting’
‘Virtual class.’
‘Remote’로 시작하면서,
일상생활로,
원래 대로,
천천히 돌아오는 듯해 보였다.
5월 말,
현정과 엘레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트래픽에 따라 차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Carmel by the sea’로 여행을 간다.
대단한 도전이다.
3살 여자 아이와 엄마,
마스크를 쓰고,
집을 떠나,
세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가는 곳으로의 여행.
당일로 갈까 했지만,
왕복 6시간의 운전은 그녀에게도 힘들고,
차 안에서 엘레나에게도 힘들 것 같아,
다운 타운 안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여행의 목적이나 이유는 없다.
엘레나도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하고,
현정도 집에서 하는 놀이들도,
이제 좀 지치는 데다가,
청소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또한, 카멜은 캘리포니아에서,
현정이 좋아하는 장소 중의 하나다.
이곳은 중세 스페인 문화와
모나키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도시로,
그런 예술적인 영향으로 지어진,
건물이나, 집들을 볼 수 있다.
다운 타운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꽤 구경 다닐 만한 상점들도 있고,
곳곳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다.
현정은 카멜의 하얀 모래사장도 좋아한다.
오전 10시쯤 출발해,
중간에 점심도 사 먹고,
쉬엄쉬엄 오다 보니,
세시쯤이나 돼서야
카멜에 도착한다.
바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레나의 손을 잡고,
다운 타운을 좀 걷다가,
크라상이랑, 커피 한잔을 사서,
다시 차 있는 곳으로 가,
모래 놀이 장난감과,
담요를 챙긴다.
엘레나와 해변가로 걸어가는 길에,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왜?
두 손도 부족한 아이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것일까?
그래도 어렵게 말을 꺼내 부탁했을 텐데,
하면서,
사진을 찍어 주려고,
핸드폰을 건네받으며,
얼굴을 보니,
마스크는 썼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 남학생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에서 보기 힘든, 하얀 피부,
살짝 기르기는 했지만,
부스스한 미국인의 머리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여전히 단정한 머리 스타일,
그리고 한국인 대학생의 옷차림.
사진을 찍어 주자,
영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한국 악센트가 섞인 영어.
그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사진이 잘 나왔다며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한다.
현정도 말없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엘레나와 다시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엘레나는 모래에 앉자마자,
익숙한 듯, 장난감 삽을 꺼내,
모래를 파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Mammy, water.”
현정은 버켓을 들고,
바다로 가서 바닷물을 담아와
엘레나 옆에 둔다.
엘레나는 물을 부어 가며 모래를 가지고 논다.
현정은 담요를 모래 위에 깔고 앉아,
조금 전 사온 아메리카노를,
이제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한 커피가 미지근 해졌지만,
카페인 섭취가 어디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격리 후의 좋은 점은,
어딜 가도 붐비지 않고,
트래픽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읽을 것 중에,
사람들은 갇혀 있어 힘들지만,
지구는,
자연은,
사람들이 없어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의 뿌연 하늘이,
요즘에는 푸른 하늘로 보인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에펠탑 위의 하늘이 원래 푸른색이었어?
라는 글과, 사진을 함께 찍어 올린 게시글을 봤다.
그래도 전 세계는,
질병과 격리로 모든 생활이 단절되었다.
인류는 관계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질병으로 인해,
가족이나 이웃, 친구를 잃은,
상실과, 고통과 절망 속에 있다.
Pandemic,
전 세계 유행 질병.
모든 인류가 함께 겪고 있는 상실과 위기의 시대.
현정은 그래도 아이와 함께 이 시기를
잘 견디고 있으며,
그래도, 어디라도 잠깐 나와,
자연 속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한국에 있는 지숙이 걱정되어,
둘은 매일매일 영상 통화를 한다.
그래도 지숙은 노모와 함께 있어,
심한 외로움 없이,
그리고 아프지 않고,
그럭저럭,
바이러스라는 질병의 위기를 넘기고 있어,
다행이다.
모래 놀이를 하던 엘레나가,
물이 더 필요하다며,
버켓을 들고,
갑자기 일어나 뛰어가는 바람에,
현정도 재빨리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엘레나만 보며 따라가다 현정은 누가 걸어오는지를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그 사람과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다,
모래에 넘어진다.
"Elena. Stop.”
현정이 부르자,
엘레나는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넘어져 있는 현정에게 달려와 안긴다.
현정은 엘레나를 안고는,
혼자 바다로 뛰어가면 안 된다고,
엄마랑 같이 가자고 말한다.
부딪힐 뻔 한 사람이 옆에 잠시 서 있다가,
현정을 보며 괜찮냐고 묻자,
현정도 괜찮다고 말하고는 일어서서,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보니,
조금 전 사진을 찍어 달라던 이다.
둘 다 서로를 가리키며,
‘어’
라고 말한다.
“다행히 제가 순발력 있게 피해서 접촉사고는 면 했네요.”
현정이 한국말로 말하자, 그는 놀란 듯,
“아. 한국분 이세요?”
“네. 뭐.”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워낙 이곳에는 아시안 분들이 많으셔서.”
“여행 오셨어요?”
“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보통 사진 찍어 달라고 안 하니까.”
“아. 그렇구나. 저도 한국에서는 안 그랬는데 여기 오니까 전부 다 셀피만 있어서 창피함을 무릎 쓰고 부탁을 드렸네요.”
“언제 오셨어요?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작년 가을에 왔는데 학교 좀 다니다격리되고 수업은 온라인으로 듣고 있고, 그렇다고, 한국에 지금 돌아가기는 좀 그렇고 해서, 남은 기간 동안 근처라도 좀 다녀 보자 해서, 2주 전부터 슬슬 다니기 시작했어요. 원래 6월에는 동부 여행도 가려고 계획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는 처음 만난 사람 치고는 말을 술술 잘한다.
요즘 젊은 이들은 저런가 싶기도 하다가도, 현정도 처음 유학 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는 오히려,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쉽게 했었던 거 같기도 하다.
“Exchange student?”
“교환 학생은 아니고요. 대학원 생인데. 1년 어학 연수하러 왔어요.”
“대학원생?”
“네. 석사과정에 있는데, 하면 할수록 어려워져서, 잠시 쉬자 하고 왔는데, 미국에서 갇혀서 쉬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너무 안타깝다. 학교는 어디예요? 너무 실례되는 질문 인가? 저도 한국에서 대학교 1학년 마치고 미국에 왔어요.”
“그러세요? 저 한공대학교 환경 공학과 졸업하고, 석사도 같은 학교, 에너지 자원 공학 공부 하고 있어요.”
“한공대?”
“혹시?”
“세상 참 좁다. 같은 학교 후배를 다 만나고.”
“와 진짜요? 무슨 과 셨어요?”
“난 컴공과, 05 학번.”
“아. 게다가 같은 공 대생. 전 일공 학번이요. 선배님 만났네요. 그것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그러게. 그런데, 딱 봐도 너무 공대생 같았어.”
현정은 자연스럽게 말도 놓는 자신이 신기하다.
“제가요?”
“응.”
“나름 미-Kok스럽게 입은 건데.”
그는 ‘kok’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한다.
어떻게 입은 것이 ‘미-kok’ 스러운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에 둘은 무엇이 웃기는지도 모른 채,
웃으며, 자연스럽게 엘레나와 같이 걸어,
바다 근처까지 가서, 밀려오는 파도에 잠시 발을 담그며,
파도 놀이를 하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남학생이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현정도 평소와 다르게 말을 술술 잘한다.
같은 대학 후배라,
학연이라는 것이 발동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격리되어 있었고,
어른사람과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하도 오랜만이라,
입이 자동으로 트였나?
신 명우.
그가 소개 한대로, 그는 한공대학교 환경 공학과,
10 학번이다.
재수를 안 하고 바로 들어왔다면,
1991년 생으로 현재 28살이다.
명우는 그 동네에서 착실하게 학교 다니고,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어릴 때부터,
자연과 환경, 에코시스템에 관심이 많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해야, 북극곰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는 친 환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구는 이제 온난화가 아닌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들을 하는 이이다.
자신이 원한다고, 꼭 그 학과에 진학해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명우는 환경 공학과에 진학했다.
동네에서,
성실하고 착실하게 학교 다니며 공부하던
그 답게,
그는 대학 생활도 성실하고 착실하게 했으며,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왔고,
군대를 마치고,
복학해서,
2년 후,
대학을 졸업했다.
마치 시곗바늘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이 정확하게 맞아 돌아가는 것처럼.
그는 대학 후의 진로를 고민하다,
같은 대학의 에너지 자원 공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가 관심을 두는 에코 시스템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지키는 것은,
그것을 대체할 만한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환경 공학을 전공했으니,
에너지 자원으로 석사를 받아,
환경 센터 같은 데 가서 일하거나,
박사과정까지 해서,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공부하는 방향과 목적을 점점 상실해 갔다.
수재들 사이에서,
평범한 그는,
늘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었고,
게다가 사교성도 그리 좋지 않아,
동료든, 선 후배든,
심지어 교수님한테도,
주목받지 못했다.
실력이 뛰어나든,
수완이 뛰어나든, 해야 하는데,
명우는 둘 다 잘하지 못했다.
잘하지 못한다.
라는 것에 명우는 모든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껏 잘한다.
라고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노력한 결과가 좋았고,
그것이 그가 못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진 않았었다.
명우는 지난날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이제 겨우 20대 중 후반.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하고,
뭐라도 일궈놔야 할 것 같은 20대 중 후반.
왜?
사회의 기대가 그런 거 같고.
주변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명우는 더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대학원이고 뭐고, 차라리 취업을 할걸.
이왕 대학원까지 갈 생각이면,
군대를 좀 미룰 걸 그랬나.
석사 과정 과를 잘못 선택했나?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알아봤어야 했나?
그러면서 다른 이들과 비교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 놈은 뭐 하지?
맞다 취업했다고 했지.
그 친구 놈은?
지금 군대 갔다고?
그 다른 놈은?
결혼을 했어? 아 그 과 CC 랑.
그, 그래 그놈은? 3
년 만난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명우는 시곗바늘이 맞아 돌아 가 듯,
그 나이에 맞게 딱 맞추면서,
성실하고 착실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직업도,
헤어진 여자 친구도 없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실망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인생의 실패를 맛본 기분이 들었다.
원래 석, 박사과정이 그래,
슬럼프가 다 있지,
하면서,
스스로
혹은 주변의 조언으로,
하루, 일주일, 한 달을 버텨 봤지만,
점점 더,
무기력과 실망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잃은 상태에서,
비교까지 하고,
게다가 자기 비하의 상태까지 갔으니,
그의 마음 상태가 밑바닥까지 내려가,
갈라지기 시작했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는 게 힘들어지기까지 했다.
병 인가 해서 병원까지 갔는데,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명우는 무슨 질병 같은 진단보다,
‘극도의 스트레스’라는 진단이 더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얼마 큼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까지 답답하고 숨까지 못 쉴까
그동안 왜 이렇게 까지 하며 살았을까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시곗바늘 같은 삶이 못 견디게 답답하고,
그를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까지 밀어 넣은 거 같아,
싫어지기 시작했다.
숨을 쉬자.
숨을 쉬어야겠어.
그래서 떠났다.
그렇게 떠난 곳이 샌프란시스코.
그래도 그동안 하던 습관이 공부라,
장소는 떠났어도,
공부 까지는 못 떠나,
이왕 미국에 오는 거,
영어 공부라도 하고 가자 하는 마음에,
여러 군데 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었고,
동부에도 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로,
어학연수, 1년, 학생 비자를 받아 왔다.
명우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름이 익숙한 이곳.
첫 몇 주는,
수업을 마치면, 혼자서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Ocean beach’에 가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와 하늘과 금문교를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아는 사람 없이,
시간의 제한 없이,
과제 없이,
그렇게 보내는 몇 주 동안,
그는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고,
편안한 마음에서,
그동안의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회복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워낙 다양한 인종이 많고,
아시아인도 많은 이곳에서 명우는 금세,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는 좀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이상하게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활발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 사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친구들과,
그동안 한국에서 해 보지 못한 것 들을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해도 되지만,
공부하느라,
과제하느라,
눈치 보느라,
바쁘게 만 달려오느라,
할 시간이 없었던 것들이다.
별건 없다.
친구들과 미국 ‘Bar’에 가기.
미국에 왔으니까 미국 ‘Bar’ 겠지만,
뭔가 덩치 좋은 흑형 들도 있고,
내부도 뿌연 하니 자욱하고,
가죽 바지도 입고 문신도 있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고 갔는데,
평범한 ‘Bar’였다.
영어로 주문하고,
같이 간 이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한국과 다를 뿐.
그래도 'bar'에 앉아,
병맥주를 마시며,
영어가 들리고,
'Huh, yeah'
라는 말도 약간 그르부 있게 말하는
기분은,
뭐랄까
정말 멀리,
낯선 곳에 와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친구집에 모여, 밤새 수다 떨기.
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다.
다음날 과제를 해야 하니까.
물론 천재들은 똑같이 놀고도,
과제를 완벽히 끝내 상위 점수를 받는다고 하던데,
명우는 그렇게 까지 할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수다를,
밤을 새우면서 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풀밭에 눕기.
한국은 풀밥에 그냥 잘 눕지 않지 않나?
처음 명우는 풀밭에 누워,
야생 진드기에 라도 물리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했는데
다들 잔디밭을 뛰다가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라고 하길래,
명우도 따라 했다.
바람에, 살살 나부끼며,
귀를 간질이는 잔디.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
그 하늘을 지나가는 구름, 새, 비행기.
벌레 따위는 금방 잊어버렸다.
우산 없이 걷기.
우산 쓰고 다니는 것보다,
우산 없이 걷는 게 당연한 곳에서,
후디의 모자를 덮어쓰고 걸으면,
왠지 간지 나게 느껴졌다.
길바닥에 앉아 타코 먹기.
역시 타코는 길바닥에 앉아 먹어야 제 맛이지.
렌트한 자동차로 친구들과 여행 가기.
자동차,
친구,
여행,
이 세 조합은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청바지 입고, 바닷물에 뛰어들기.
이건 뭐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흔한 일이지만,
태평양 바닷물에 담그는 기분은,
광활한 자연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것들이다.
명우는 이제 겨우 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 방학이 됐고,
크리스마스 때, 친구들과,
‘Las Vegas’와 ‘LA’로 여행을 다녀오고,
그 다음 해, 1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동 북부로, 차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이곳 사람들이 겨울에 스키 타러 간다는 ,
‘Lake Tahoe’로 스키 한 번 타러 갔다 오고,
‘Winter intensive course ‘ 를 마치고,
봄 학기가 막 시작 되려 할 때,
코로나로,
학교가 폐쇄되고,
명우는 혼자,
기숙사 방에 격리되었다.
인터내셔널 학생에게만 제공하는 기숙사다.
건물 하나에, 화장실 하나가 딸린 작은 방을 하나씩 배정해 줬다.
둘이 쓰는 경우도 있지만,
명우는 1인 실을 신청했다.
보폭이 큰 걸음으로 10걸음, 옆으로 5걸음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공간,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간단한 요리 하나 할 수 있는 작은 싱크대와,
허리를 구부려 열어야 하는 그 정도로 작은 냉장고,
그리고 작은 화장실.
명우는 그곳에서 혼자, 두 달을 격리했다.
외로움.
혼자 방에 있으니까.
두려움.
질병이고, 백신도 없고, 전파력도 강하다고 하니까.
걱정.
아무래도 가족과 떨어져 있으니, 가족들에 대한 염려.
불편함.
갇혀 있고, 제한된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숨은 쉬어졌다.
낮도 밤이고, 밤도 낮인,
시간만 흘러가는 하루하루.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다음날 뭘 해야 할지 계획하지 않아도 되니,
삶은 제한 적이지만,
시간은 여유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전 인류가 함께 겪는 질병과 격리이다 보니,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날도 있었다.
그전엔,
놀고 싶어도,
남들은 과제하는데,
공부하는데 하면서 못하고.
조금 더 자고 싶어도,
늦장 부리면 뒤처질 것 같아서,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몸뚱이를,
정신력으로 일으켜 세웠다.
하루 중,
운동도 해야 하고,
독서도 해야 하고,
과제도 해야 하고,
사람들과 소셜도 해야 하고,
틈틈이 자격증 같은 것도 따야 하고,
모임도 가야 하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들어도 줘야 하고,
웃어도 줘야 하고,
그렇게 보내는 하루는 24시간도 모자랐다.
24시간이 모자라
정말 기가 막힌 노래다.
그런데, 다 같이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니,
맘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에 부담이 들지 않아서,
처음으로,
눈치 안 보고,
다그치지 않고,
그날그날,
하루하루를
천천히, 계획 없이 보냈다.
격리가 조금 완화되자,
다른 외국 학생들은 바이러스의 노출과 감염의 위험을 무릎 쓰고,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명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지금 상황 이면,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여름이 되면 못다 한 여행까지 하고 갈 수 있지 않을까,
미국 또 오기가 쉽겠어
하는 마음으로 원래 계획한 일정대로,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5월 마지막 주,
그는 한국의 기차 같은
‘car train’을 타고 가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렌트하는 것,
혼자서 운전하는 것,
그리고 익숙지 않은 미국 고속도로 때문에.
어차피 많은 것이 시간이기에.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으로 무장 한채.
그렇게 온 곳이
‘Carmel by the sea’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Bioluminescence’가 보고 싶었다.
생물 발광으로 불리는 이것은,
바다에서 밤에 파도가 부서지거나,
물이 튀는 소리로 인해 방해를 받을 때 빛을 발하고,
그 빛에 의해 바다 생물이 내는 빛이다.
즉 밤바다에서,
파도 속에서 일렁이는 푸른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5월에 ‘San Diego’ 바다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이번주가 이 것을 볼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이다.
명우는 리서치를 했고, ‘
San Diego’ 가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
이곳이라고 찾아낸 것이다.
만약 볼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이고,
만약 보지 못한다 해도,
‘Carmel by the sea' 라는 곳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서,
이곳으로 짧게 여행 온 것만으로도 만족하려고 했다.
아침 일찍,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car train’을 타니,
이곳까지 5시간 정도 걸리고,
역에서 내려서,
이것저것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한 결과,
너무 늦지 않은 오후에 카멜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고,
거리를 걷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바닷가로 온 것이다.
그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더니,
뜬금없이,
“그런데 그거 아세요?”
라고 묻는다.
“뭘?”
“오늘부터 식당에서 밥 먹을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격리 기간 동안, 식당에서 밥 못 먹었잖아요. To-go 만 됐고.”
“응.”
“오늘 그거 해지되는 날이에요.”
“그래?“
“네. 근처에 꽤 괜찮은 식당 많던데, 같이 가실래요?”
“그런데, 난 아이가 있어서. 저녁도 그냥, 투고 해서
호텔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명우가 엘레나를 보고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아웃도어에서 먹으면
되고요.”
라고 말하고는,
엘레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눈높이를 맞춘 후,
인사를 한다.
“Hi. I am MYUNG WOO”
라며, 아이가 알아듣게 또박또박 말한다.
“Hi.”
엘레나가 까르르 웃으며 대답한다.
명우가 굽힌 다리를 펴고는 말한다.
“얘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서로 하이 정도만 했는데,
명우는 엘레나도 좋아한다고 말한다.
꽤나 식당에 같이 가고 싶은가 보다.
명우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던 현정도,
이제야 자기소개를 한다.
“난 현정이야. 얘는 엘레나.”
엘레나는 자기의 이름을 듣자,
’Elena, Elena’ 하며,
이름을 소란스럽게 말한다.
명우는 엘레나에게,
“Are you hungry?”
하고 묻자,
엘레나는,
배가 고픈건지,
신이 난건지,
방방 뛰며,
“Yes, yes." 라고 여러번 말한다.
“Do you wanna go eat?”
“eat. eat”
엘레나는 명우의 손을 잡는다.
명우도 익숙한 듯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현정이 담요와 물건들을 챙겨 걸어간다.
“애를 잘 보네?”
“귀엽잖아요. 여기 와서 한동안 영어 많이 안 썼는데, 엘레나랑 영어로 많이 말해야겠어요.”
이제 겨우 3살 된 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한다니.
영어든 뭐든 대화가 가능할까 하지만,
명우는 사람을 만나 신이 났는지,
엘레나와 빨리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하며,
영어로 뭐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