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Mommy.”
지숙의 핸드폰을 엘레나가 받는다.
“Mommy.”
“Elena.”
엘레나는, 현정의 전화가 반가운지,
하고 싶은 말을 정신 없이 늘어 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두서없고,
시끄럽고,
하지만,
또랑또랑 맑고 청아한 순백의 목소리이다.
한참을 떠들던 엘레나는 할 말을 다 했는지,
“Bye, mom.”
하고는, 전화기를 지숙에게 건넨다.
전화를 받은 지숙이 묻는다.
“집에 가는 길이야?”
“네 엄마. 지하철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중이에요. 별일 없으시죠?”
“없지. 늘 바쁘고 정신없고, 이제 저녁만 먹으면, 모두 곯아 떨어질 거야.”
문 지숙.
지숙이 대학교 1학년때, 재철은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복학생 선배였다.
나이 차이가 서로 나봐야, 3살 아니면 4살인데,
그때는
한 살 차이만 나도
얼마나 어리다는 생각이 들고,
늙었다는 생각이 드는지.
재철은 1학년 새내기를 만난다고,
도둑놈 소리를 듣고,
지숙은 4살이나 많은 3학년 복학생 선배를 만난다고,
남자 그렇게 빨리 만나는 거 아니다.
세상도 넓고 남자도 많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둘은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영문과 캠퍼스 커플을 유지? 했고,
대학을 먼저 졸업한 재철은 무역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 했다.
뭐라도 장만해서, 지숙에게 청혼하려고.
재철이 29살, 지숙이 25살 때,
재철은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지숙은 뜸도 들이지 않고, ‘OK’ 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신혼 생활을 즐기며,
각자 회사에 다니다,
재철이 무역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31살, 재철은 사업을 시작했고,
지숙은 계속 회사에 다녔다.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후인
1986년,
둘에게 현정이 태어났고,
지숙은 회사를 그만뒀다.
지숙은 집에서 현정을 키우면서,
재철을 도와, 영어로 된 서류 작업 일도 했다.
그때, 금융 회사에 다니던, 지숙의 둘째 오빠도 사업에 참여하면서,
사업이 잘 되기 시작했다.
지숙과 재철은, 자녀를 좀 많이 낳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자녀는 많이 허락되지 않았고,
그래서 둘은 하나밖에 없는 현정이 더 귀하고 소중
했다.
그렇게 셋은,
셋이만 있어도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2003년, 현정은 17살,
지숙의 나이 44살,
재철은 겨우 48살이었다.
지숙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낸,
그 이후,
외로움
그리움
절망과 슬픔
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을 자면, 재철과 현정과 함께 했던 행복하고 즐거운 때가 나타나고,
꿈에서 깨면, 배우자를 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울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자면, 재철이 그때 쓰러질 때,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생각하니,
지숙도 온몸이 몸살이 온 것 마냥 아팠다.
그러다, 가슴이 돌로 짓 누르듯이 답답해 숨을 쉴 수가 없어, 일어나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셔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현정은 미국에 간다고 했다.
딸까지 멀리 보내야 하는 마음까지 더해져,
지숙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날 몇일을 현정을 말렸다.
너마저 가면 엄마는 어떡해?
왜 가려고 그래?
여기 있는 게 힘들면, 차라리 다른 데로 이사를 가자.
엄마는 너까지 없으면 못 살아.
그녀답지 않게,
현정을 붙들고,
매달리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밤은 깜박 잠이 든 것 같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또 그때의 날들을 꾸는 꿈인가.
재철의 모습이,
그날 출근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이 웃으며 행복해 보였다.
“미안해요. 여보. 그때 내가 돌봐 주지 못해 미안해요. 당신을 그렇게 가게 해서 미안해요.”
지숙이 울며 말했다.
재철은 아무 말 없이 늘 그랬던 것처럼 밝게 웃고 있었다.
“괜찮아? 행복해?”
지숙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철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비가 와서 행복하고,
날이 맑아 행복하고,
수업이 일찍 끝나 행복하고,
그녀와 교정을 거닐고,
도서관에 함께 있어 행복하고,
그녀와 결혼해서 행복하고,
그녀와 먹는 밥이 맛있어서 행복하고,
사업하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는 일이 즐거워서 행복하고,
가족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고,
재철이 살아온 삶은 그랬다.
지숙은 현정과 함께 그와 살았던 때처럼 행복 하게
살다가, 재철을 만나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알았어요. 여보.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 또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요.”
지숙의 말에 재철은 안심이 되는지,
밝고,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고,
지숙도 꿈에서 깼다.
일어나 보니, 배게 커버와 얼굴이 눈물로 축축했다.
지숙은 일어나,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창문을 여니, 멀리 동이 트는 것이 보였다.
거실을 아침의 신선한 공기로 환기를 시키고,
현정과 함께 맛있게 먹을 아침밥을 만들었다.
현정을 미국에 보내고,
지숙은 재철과 함께 지은 평창에 있는 집으로
노모와 함께 내려왔다.
현정이 어릴 때, 이곳에 와서,
겨울에는 스키를 타고,
여름에는 바닷가에 갔었던 곳이다.
현정이 다 크고 나면, 노년 에는 함께 내려와서 살자고 했던 곳이다.
재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숙은 혼자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와 했던 약속을 잊고 싶지 않아서.
노모와 함께, 집을 쓸고 닦고 꾸미고,
앞마당에는 꽃을 심고,
뒷마당에는 작은 텃밭을 만들어,
각종 야채를 심으며 키우다 보니,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가 채워지고,
마음도 점점 회복되어 가는 것 같았다.
여전히 그립고,
생각나고,
당신이 있었다면,
하며 생각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행복하게 살다,
행복한 재철을 만날 거니까.
그 사이,
현정이 다니는 학교에, 노모와 함께 방문했었다.
시카고, 그리고 그 주변, 그리고 캐나다 까지 여행을
갔었다.
할머니,
엄마,
딸,
3대가 누린 여행이었다.
현정의 졸업 여행으로 함께 동부 여행을 갔었다.
엄마와 딸 둘이.
현정이 샌프란시스코로 오고,
그녀가 직장을 다닐 때쯤 지숙은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더 잘 만들어 먹고 싶어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로 현정을 방문해,
그녀가 일을 갔을 때는 근처 카페에 다니며,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었고,
그녀가 집에 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에는 근처로 여행을 갔다.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딸과 있는 시간은 평안했다.
다 키워 놓은 것 같은 안심.
그래도 잘 키운 것 같은 보람.
2015년 현정이 결혼식을 하고 지숙은
그 해 가을 평창에 카페를 하나 차렸다.
미적 감각이 있는 지숙이라, 깔끔하면서도,
아기자기 하니 이쁜 인테리어에 젊은 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지숙은 노모와 살면서,
그리고, 카페도 하면서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가족처럼 여겨지는 성실한 종업원도 고용했다.
현정이 엘레나를 낳았을 때는,
노모와 함께 미국에 가서 아이를 봤다.
노모에게는 증손녀,
지숙에게는 손녀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하면서,
평창은 젊은 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됐고,
카페는 더 잘 됐다.
이만 하면, 재철이 봤을 때도 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2019년 봄, 노모는 91살의 연세로 돌아가셨다.
그때, 현정만 한국에 나와, 지숙과 잠시 있다가,
미국으로 다시 갔다.
지숙은 그때 왜 현정만 한국에 왔는지,
좀 더 자세히 물어봤어야 했고,
현정의 상태를 살폈었야 했다고 나중에 생각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현정은 얼마 후,
토드와 이혼하기로 했다고,
지숙에게 전화를 해서 알렸다.
왜?
무슨 일이야?
엄마가 갈게?
현정아. 엄마에게 말해봐? 응?
너 무슨 일 있지?
현정은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괜찮다고 했으며,
정리가 좀 되면,
한국에 엘레나와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서로 한 동안 보지 못했고,
세계 대 질병도 좀 누그러지고 있을 때,
지숙은 미국으로 현정을 방문했다.
한 걱정을 하고 갔는데,
딸이 생각 보다, 잘 지내고 있어 안심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그 사이,
현정의 전 남편 이자,
지숙의 전 사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현정은 엘레나와 함께 한국에 왔다.
현정은, 시련을 많이 겪은 모습에,
살이 더 빠져 야윈 모습이었고,
이제 5살인 엘레나는,
이제 아빠가 없대.
라는 말을 반복하며, 혼돈스러워 보였다.
그들이 살려는 마음으로 지숙에게 온 것을 알았고,
그녀는 아무 말없이 그들을 따습게 맞이했다.
지숙은 요즘 바쁘고,
마음이 아리게 아프면서도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들에게 무엇이라도 해 줄 수 있어 행복하고,
손주를 돌보고 키우는 재미로 행복하다.
현정도 정말 아낌없이 사랑하며, 이뻐하며 키웠는데,
손주는 또 딸을 키울 때 와는 다르다.
손주는 그저 이쁘고,
그저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손주를 볼 때는 젊을 때 보다 여유가 있고,
잘 키워야 한다는 기대와 부담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맞는 것도 같다.
지숙은 부부 종업원에게 카페를 거의 맡기고,
엘레나와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
먹이고 닦이고 챙겨 나가고,
다시 먹이고 치우고,
그러다 다 같이 누워 뒹굴 거리다 잔다.
다음날이 되면, 다시 먹이고,
챙겨 나가고 먹이고, 치우고를 반복한다.
그러다 현정이 오는 주말이 되면,
쉬는 것 같지만,
손주가 아닌 딸을 먹이고,
또 먹이고,
생각나면 먹이고,
물어보고 먹인다.
한국 엄마의 사랑은 밥상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들에게는, 남편의 죽음, 아빠의 죽음이라는 슬픈 가정 사가 담겨 있지만,
지금은,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며,
함께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숙과 전화를 끊고,
현정은 따스한 국물과 술 한잔이 생각난다.
미국에서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는데,
한국에 오니 술이 당긴다.
안주가 좋아서 그런가.
주말에 재욱은 본가를 방문한다.
온 가족이 모여라
라는 엄마의 부르심을 받고.
2019년 재욱이 그의 아버지의 수술로
한국에 다녀간 이후,
그 사이 그의 첫째 누나 재인은 회사에서 더 승진했고,
코로나, 격리 동안, 온라인으로 공부를 해서,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역시 대단하다.
그리고 여전히 비혼 주의자이며,
성격은 물론 더 까다로워졌다.
둘째 누나 재연은, 남편, 서주완이 대학 병원 산부인과,
부교수가 되는 동안,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고,
셋째를 임신 중이다.
재연이 아이들과 소란스럽게 집으로 들어온다.
전에 담낭 수술을 했던 필석은 얼마 전,
심장이 안 좋아 검사를 하고,
며칠 전 심장에 스탠실 수술을 했다.
“아버님은 좀 어떠세요?”
주완이 묻는다.
“괜찮으셔. 들어가서 인사드려.”
주완이 필석의 방으로 들어 가자, 두 아이들이 따라
들어가려고 뛰어간다.
재연이 재빠르게 아이들의 팔을 한쪽 씩 잡고는 거실로 향하며 말한다.
“두 아드님은 좀 있다가. 알았지.”
아이들이 걷는 듯 질 질 끌려가는 듯 거실로 가,
소파에 앉는다.
재욱은 그런 누나를 보며,
감탄의 박수를 보내자,
재연이 고갯짓으로 마실 것 좀 가지고 오라고 한다.
“나도 이제 막 오는 길이야.”
“그래도 여기서 네가 제일 젊고 가볍잖니.”
선주가 재욱 대신 부얶에서 재연과 아이들이 먹을
것을 가져오며 말한다.
“결혼 안 한 딸은 바빠서, 도움이 안 되고, 결혼한 딸은 애들이 있어 도움이 안 되고, 남편은 아프고, 아들 하나는 멀리 살고, 일 한다고 바쁘고, 도대체 엄마 인생은 뭐니?”
“엄마 또 시작 이시다.”
재인은 양손에 주문해서 가져온 음식을 가득 들고, 들어오며 말을 잇는다.
“그래서 엄마, 결혼 안 한, 바쁜 딸이 음식으로 고생하실 엄마를 위해 준비했지요.”
필석과, 선주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
재인, 재연, 재욱,
그리고 재연의 남편 주완과 그들의 두 아들, 설우, 설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들 바빠서 다들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렵지만,
선주와 필석은,
어른이 된 삼 나매에게,
여전히 돌봄과, 관심을 가진다.
재인과 재욱은 집에서 한 시간 정도는 운전해야 하는 곳에 살지만,
주말 이면, 이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하고,
가끔씩 이들의 집을 방문해,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재연은 이들의 집 근처에 살아서,
거의 매일 만나고,
실상은 선주가 재연의 육아와 임신을 도와주고 있다.
선주는 말은 피곤하다,
그만하고 싶다,
엄마일은 은퇴가 없다
라고 말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그녀의 곁에 살고,
함께 식사를 하고,
다 컸지만
그래도 아직은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해서 좋다.
필석도 자녀와 손주들이 함께 모인 것을 보면
든든하다.
그리고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한,
그의 여동생이 생각난다.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넌 만나는 사람 없어?”
재연이 묻자, 재욱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한다.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옛날 사람이야? 그런 걸 뭘 그렇게 뜬금없이 막 물어.”
재인이 말하자, 재연은 맘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뭘 옛날 사람이라고 까지 해? 이런 건 가족이 모이면 묻는 거야.”
“있으면 어련히 알아서 말할까. 그걸 굳이 그렇게 물어봐야 돼?”
재인이 재연을 보며 또 한마디 하자, 재연은 재인과 재욱을 보며 입을 비죽이고는,
선주에게 묻는다.
“엄마도 궁금하지? 묻고 싶은데, 아들한테 꼰대 소리 들을까 봐 안 하는 거지?”
선주가 말없이 음식을 먹는다.
선주도 필석도 궁금하다.
고등학교, 그것도 조기 졸업 한 아들은 혼자 미국에 갔고,
거의 10년 정도를 떨어져 살다가,
한국에 와서 군대를 간다고 또 떨어져 지내고,
늘 미국으로 다시 갈 것 같던 아들은,
한국에서 회사에 취업하고,
이제야 그들 곁에 머물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석은 재욱도 그의 여동생처럼 어느 날 갑자기 그 존재가 없어질까 두렵다.
외국에 나가는 것 정도가 그나마 제일 괜찮은 상황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그래도 이제는 한국에서 취업까지 했으니,
이 참에 결혼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옆에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의 희망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필석의 아들,
재욱은,
그의 여동생의 아들이다.
필석의 막내 여동생,
주현.
필석은 아래로 두 남동생이 있고, 주현은 막내 여동생이었다.
필석은 10살이나 차이나는 막내 여동생, 주현을 아끼고 사랑했다.
늘 말썽꾸러기에, 소란스럽기만 한 두 남동생과 달리,
물론 주현도 말썽꾸러기에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필석에게 주현은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필석은 주현을 돌보고 아꼈다.
주현을 그놈한테 보냈으면 안 됐다.
필석은 주현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놈이 맘에 들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이 필석 에게 말했다.
흔히들 오빠가 여동생의 남자들은 다 늑대 놈처럼 맘에 안 들어한다고.
필석의 눈에 그놈은 겉으로는 번듯하고 멀쩡해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 구석이 있었다.
필석은,
그래, 여동생을 너무 사랑하는 오빠의,
지나친 관심과 걱정 일 것이라,
기분 나쁜 것은 그냥 그의 기분탓일 거라고,
그렇게 애써 생각했다.
주현과 그놈은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필석은 주현이 그동안 그놈에게 맞고,
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언어적으로도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안 필석은, 주현의 집으로 찾아가,
죽지 않을 만큼 그놈을 때렸다.
그놈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고,
주현도 괜찮다고 하면서,
그놈을 감쌌고,
다른 가족한테는 말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넘어가자고,
둘은 애원했다.
필석은 지켜보겠다는 협박과,
다시는 그러지 말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바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화가 난 그놈은 가족을 태웠다는 것도 잊은 건지,
아니면, 화가 더 이상 제어가 안 됐던 건지,
도로에서 질주를 하다,
터널 진입 때,
스피드와 코너의 사고 나기 완벽한 조건으로,
차는 터널 벽을 여러 차례들이박다가 여러 번 전복되었다.
뒤에 타고 있던 주현은 온몸으로 한 살 된 아들이 앉은 카 시트를 감싸 안았고,
아이는 엄마의 보호 속에 안전했지만,
주현은 차의 외부의 충격과, 카 시트를 부여 안은 충격까지 더해져,
온 장기가 터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놈은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필석은 저 놈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조카의 생부인데,
차마 죽기를 바라지는 못하고,
대신, 살면 안 된다고 빌었다.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해 매던 그놈도 죽었다.
재욱은 그때 겨우 한 살이었다.
소중 하고,
소중하고,
소중한 여동생의 아들.
필석은 그날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놈을 그렇게 패고 다그쳐서,
그놈의 화를 더 돋운 건 아닌지.
조곤조곤 말해서 타이를 걸,
그러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아님 그때 그놈을 살려 둘 정도로 패지 말고,
죽을 정도로 팼어야 하나.
그놈이 안 그러겠다 하면서 빌어도,
주현에게 사람 놈 말 믿는 거 아니 라며,
그 집에서 끌고 나왔어야 하나.
시간을 돼 돌일 수 있다면,
처음부터 그놈은 안된다며,
미친놈처럼 길길이 날뛰며 말렸어야 하나.
아니면, 이 모든 것도 아니면,
주현은 누구를 만나든,
어떻든, 그렇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이었다면,
그렇다면 필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심장이 터질 듯이,
짓 누르듯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른 두 형제는 필석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그 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면서,
주현에게 그런 일이 있는 걸 왜 이야기하지 않았나며,
필석을 원망했다.
형, 우리가 다 같이 가서,
주현이를 데리고 나왔어야 해.
끌고 라도 나왔어야 해.
주현이가 그런 일을 당하고 살고 있는 걸 알았으면,
우리에게도 말해, 그놈을 가만 두지 말았어야 해.
하지만, 세 형제에게는 서로에게 어떤 위로도,
그리고 어떤 상처도 되지 않았다.
서로를 위로하기엔, 각자의 죄책감과,
후회가 너무 무겁고,
스스로 내는 상처가 너무 깊어,
상대방이 내는 상처는 아프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주현의 오빠들의 마음도 이런데, 그녀의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식 모두 귀하지만,
늦게 얻은 딸을 얼마나 귀히 키웠을까.
그놈 집에 가서 모두 다 뒤집어엎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놈도 죽지 않았는가.
주현이 목숨처럼 지킨 아이는,
우리가 데려다 키울 테니,
제발 앞으로는 이 아이 앞에도,
우리 앞에도 나타나지 말고,
서로 모르고 없는 사람들처럼 살자고,
그렇게 해 달라고 말했고,
그놈의 부모님도 아들이 저지른 일과,
아들의 죽음으로 할 말을 잃어,
그러겠다고 하고,
필석네와 그놈 네와의 관계도 정리가 되었다.
필석은 그때 이미 아내인 선주와 두 딸들이 있었다.
선주는, 남편 필석이 원하지만,
쉽게 제안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는 그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다른 방법도 없었다.
사랑하는 여동생의 아들은,
그의 생부 와의 가족과는 그렇게 인연을 끊었고,
필석이 다른 두 남동에게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현이 목숨처럼 지킨 그 아이는,
재욱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필석의 호적에 올렸고,
필석은 큰삼촌에서 아빠가 되었다.
재욱이 이해하고 알아들을 나이에,
필석은 그의 친 부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정 폭력범이라는 그의 생부,
그리고 그 생부가 낸 교통사고로 잃은 그의 생모,
그리고 그의 생모가 목숨처럼 지켜 생존한 그.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고,
가능하다면, 재욱이 평생 모르며 살았으면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가 사랑한 하나뿐인 여동생이 남긴 혈육이,
그녀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놈의 가족들과 인연을 끊었다 해도,
사람일이 언젠가, 갑자기 마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 가서 재욱이 그놈 가족들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재욱은 그의 나이 15살이 되었을 때쯤,
그에게 충격적이고, 감당하지 못할 고통스러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필석의 염려와 달리,
재욱은 그를 지켜준 그의 생모에 대해 감사했고,
필석의 바람대로, 그녀를 기억해 주었으며,
매년 함께 주현이 있는 곳에 갔다.
그의 생부에 대해서는, 달리 원망이나 미움 없이, 그저 애도를 표했다.
필석이 바라던 대로였다.
하지만 재욱은 성장하면서,
생각의 사고가 많아지고 깊어지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기억은 없지만 사고로 인해 죽은 그의 친부모를 생각하면서,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해 친밀하게 생각하고 상상하며,
사랑했거나, 혹은 좀 많이 알고 지냈거나 하는 이들이,
그의 삶에서 떠난 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재욱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삶의 경험을,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겪었고,
알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으며,
어느 날 그가 경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억에는 없지만,
몸 에는 남아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막연히 그리워하고,
만약에, 만약에 라는 생각들을 만들어 내면서,
그의 내면에,
이별, 헤어짐은 무엇일까?
얼마큼 고통스럽고, 슬픈 일일까?
그렇다면 그의 진정한 내면에는,
그런 고통과, 슬픔과, 그리움이 의도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밝은 세상과 해맑은 성격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필석과 선주는 재욱 에게,
해줄 수 있는 한 물질적이든, 심적이든, 다 해주고자
했고, 무엇보다, 재욱을 깊이 사랑했다.
재욱은 미국으로 혼자 떠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해야 할 때,
슬플까? 했지만,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이것은 이별이 아니고, 갑자기 일어난 사고 같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함께 지낸 여자 친구가 영국으로 떠날 때도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이별 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여정을 향해 가는 것 같았기 때문에,
소위 쿨 하게 ‘Bye’ 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현정은 그 짧은 만남에 비해,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동안 여러 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이 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혹은 사고와 같은 이별,
이별인지 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막연한 이별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마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던 , 외면하거나, 감추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아 몰랐거나 하던 감정과, 상상들이,
현정이 떠나가면서, 제대로 마주하게 되어,
비로소, 이별에 대한 그리움과 고통을 느꼈고,
원래 그는 그의 내면 안에 이별과 고통이 깊숙이 내재된 사람 었었나
하며 혼돈스럽기까지 했다.
재욱은 어쩌면 자기의 인생은,
불시에,
갑자기,
사랑하는 이가 사고로 혹은 어떤 이유로,
떠나가는 그런 운명의 쳇바퀴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군가와 인연도 맺지 말고,
사랑도 하지 말고,
더욱이 결혼조차도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어느 날 그도 그의 생부, 생모처럼 갑작스럽게 사고로 떠나면, 그의 남겨진 자녀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도 했다.
선주는 재욱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늘 그 아이의 마음에,
그 아이에게 일어난 일들로,
혹시나 상처가 생기거나 남지 않을까 하여,
그를 세심하게 지켜보았다.
걱정과 달리, 아들은 밝고 환하게 잘 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까지 좋은, 어디 가도 선주를 흐뭇하게 하고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는,
남들이 엄마 친구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멋진 아이였다.
그러지 않았어도, 재욱은 선주에게 애교도 많고, 따스하고 살가운 아들이었다.
재욱은 그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였다.
미국에 혼자 간다고 했을 때 걱정은 했지만, 아들이 가서 잘 해낼 거라 믿었다.
재욱은 미국에 가서도 잘했다.
선주는 그 아들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고마웠다.
선주의 눈에,
느낌에,
미국에서 돌아온 아들은 예전과 많이 달라 보였다.
처음엔 코로나로 인해서,
가뜩이나 미국에서 혼자 격리를 했으니,
그 당시 누구나 겪었을
상실과 외로움,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질병으로 인해, 관계에 대한 조심과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놓여 있나 했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할 때가 돼서 그런가 하고도 생각했다.
아들을 군대 보냈던, 주변의 아줌마들,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다.
싱숭생숭할 때지.
나도 이런데.
아들은 군대를 다녀왔고, 한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늘 자신 만만하고,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실행하고 성취하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머뭇거리고, 고민하는 등 자신감을 잃은 듯했고,
걱정하고 불안해 보이기도 했으며,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은 듯 보였다.
그리고 아들이 처음으로 외롭고 슬퍼 보였다.
선주는 재욱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20대를 미국에서 보낸 그는 문화와 언어는 한국이 편해도,
학업이나, 경력은 미국이 그에게는 더 익숙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선주는 외국 며느리가 가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에는 아들이 간다고 하면,
말려볼 생각이었다.
혼자 가방만 두 개 들고 환하게 웃으며 밝고 당차게 가던 그 아들이 더 이상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갖자고,
당장 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함께 여행이라도 다녀보는 건 어떠냐며,
그를 말려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주의 예상과 달리,
그리고 선주의 바람대로,
아들은 한국 회사에 취업했고,
반년 정도 집에서 함께 지냈다.
성인이 된 아들이지만, 아침밥을 먹여 회사에 보내고,
집에 오면 저녁밥을 챙겨 먹여 기뻤다.
낮에 그에게,
아들 오늘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아들은, 독립을 선언했고, 선주와 필석은 허락했다.
이제 30살이 되는 아들이 혼자 나가 살면서, 연애라도 하다가,
결혼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선주는 요즘 재욱이 또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군대 가기 전의 모습도 아니다.
뭐랄까,
다시 무언가에 열중하고 집중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서서히 밝아지는 것 같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까 늘 생각하지만,
잠시 내버려 두기로 한다.
아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올라가고,
생기 있는 눈빛만 봐도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말없던 선주가 입을 연다.
“때 되면 알아서 이야기할까. 너네들도 조심해. 요즘에 어떤 여자가 누나 둘인 집으로 결혼하고 싶겠니.
너네야 말로 꼰대처럼 시누이 할 생각하지 말고, 다 각기 도생 하는 거야. 알았지?”
“역시 우리 엄마 최고.”
재욱이 선주의 어깨에 볼을 비미며 애교를 떤다.
재욱은 필석과 선주의 사랑을 느낀다.
그들의 헌신과 돌봄에 대해서도 알고 늘 감사하다.
그들이 그의 부모님이라서, 가족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필석이 말하지 않았다면, 재욱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필석이 말하고 나서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늘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필석이 왜 말했는지도 안다.
그의 여동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녀가 잊혀 갈까 봐.
그래서 재욱은 필석을 생각하며,
필석의 여동생,
그리고 그의 생모 주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선주는, 늘 그렇듯, 재욱의 등을 쓰다듬으며,
더 먹으라고 권한다.
재연이 이를 보고 입을 비죽이며 말한다.
“엄마는 재욱이라면, 30살 노땅 아들도 아직 귀여우신가 봐. 나도 아들 있어. 둘이나.”
“너네들이 아무리 늙어 봐라, 엄마눈에는 그냥 늘 애 같고 귀엽지.”
선주는 옆에 앉은 두 손주의 등도 쓰다듬어주며, 더 먹으라고 권한다.
“그래도 아빠는 재욱이 자식도 보고 싶고, 재인이도 결혼하는 거 보고 싶은데.’
말없이 있던 필석이 한 마디를 한다.
“여보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우리 진짜 꼰대는 여기 계셨네.”
“아빠는 재욱이는 자식도 낳으라면서, 나는 왜 결혼만 하래요?”
“너는 나이도 있고 결혼만 해도 대단한 거지.”
“아빠. 나 아직 괜찮아.”
“누나 안 괜찮아.”
“응 언니, 결혼과 자녀는, 능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셋이 언제나처럼 티격태격,
까르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