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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Aug 29. 2021

이사 갈 준비를 하며

미니멀 라이프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오후 내내 대청소를 했다.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배열하는 청소가 아닌, 안 쓰는 물건들을 모두 내다 버리는 집안의 짐을 줄이는 청소 말이다. 연말에 옆 동네로 입주할 계획이라 현재 거주하는 집을 전세로 내놓을 것이라는 남편의 통보에 집을 정리해야만 했다. 9월부터 집을 보러 오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이사 가기 전에 사용하지 않은 집안 소품들이나 옷들을 고르며 폐기물 스티커를 여러 번 붙이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5시간가량 청소를 했을까. 안 쓰는 물건이 이리 많을 줄 몰랐다. 내 안의 짐이 이렇게도 많은 줄이야. 사놓고 안 쓰는 물건이 아니라 사놓고 조금씩 쓰다만 주방용품도 있었고, 해를 지나가면 입을 줄 알고 그냥 두었던 옷들도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인 없는 물건처럼 보잘것없는 볼품을 자랑했다. 순간 물건들에게 미안해졌다. 이리도 방치해서...


"지금 쓸 물건이야?"


매정하게 묻는 그의 질문에 '또 사용하겠지' 라며 혼잣말을 하다가, 내일은 사용하지 않을 물건이라면 과감히 버리는 게 정석이라는 생각도 했다.


"버릴게."


버리는 물건도 결정하기 쉽지 않다. 영원히 못 보는 이별을 마주하기에. 그럼에도 내 안의 짐과 물건들은 가득했다. 써야 하는 물건이 있고 쟁겨두어야하는 물건들도 있었다. 언제까지 이 물건들을 내 품에 두어야 할지.. 지난해 즐겨봤던 예능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가 떠올랐다. 마치 출연했던 신애라처럼 남편은 지금 당장 쓸 물건이 아니면 버리길 권했다. 가지고 있어도 다시 쓸 확률은 적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그가 더 잘할지라도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건 내가 더 잘한다 ㅎㅎㅎ)


<신박한 정리>에서 연예인들의 집을 간소하게 정리하는 이지영 컨설턴트의 철학을 보면, 거실은 거실대로 안방은 안방대로 각 방의 역할을 정확히 알려주며 공간을 사용하는 팁을 알려줄 때가 많았다. 그녀가 쓴 책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의 소개를 잠깐 살펴보면,  '저자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고정관념 때문에 불편을 불편인 줄 모른 채 산다고 지적한다. 인생도, 공간도 고정관념을 버리면 얼마든지 나에게 맞춰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철학이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그녀의 말대로 각 공간마다 제 역할이 있고, 공간에 있는 물건들을 잘 비워야 공간의 맛이 사는 편인데 내가 사는 집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에 옷이 가득 차서 옷장 옆 수납공간 위에 옷이 한가득 쌓여있었고, 여러 소지품들이 일렬로 배열되어 싱크대 위에 보드게임 젠가처럼 아슬아슬하게 물건들을 쌓아 올려놓고 있었다.


한 순간에 무너트리고 물건들을 비우니 공간이 살아났다. 좁은 부엌은 조금 더 넓어져 보이고, 수년간 입지 않은 옷들을 정리하니 옷장의 공간이 여유가 생겼다. 공간을 비우니 공간을 채우고 싶어 졌지만, 지금 그 상태도 충분했다. 충분히.. 가지고 있는 물건들로만으로 내가 일상을 살기엔 문제가 없었다. 곳곳을 비우고 나니 잊고 있었던 귀걸이와 목걸이를 찾았고(평소에 하지 않지만), 결혼반지도 오래간만에 꺼내서 손가락에 껴보았다.  세상을 떠나 주인 없는 물건을 쓰지 않는 게 맞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쓰지 않으면 시간에 스며들어 안 좋은 냄새가 채워지고 삭는다. 물건도 사람의 혼이 들어가야 쓸모가 있다.

 

유독 일본의 경우 미니멀 라이프와 관련된 책들이 많은 편인데, 우리와 조금 다른 시선에서 공간을 활용하고 비우는 습관을 들이는 것 같다. 요즘 대세인 친환경생활을 떠나 일본의 미니멀 라이프를 알아볼 시기가 온 것일까. 가지고 있는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책도 11월에 이사 가기 전에 읽어봐야겠다.   

 


덧 +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지난해 오늘 읽었던 책 구절의 사진을 봐라는 알람이 왔다. 동네 책방에서 책을 읽다가 너무나 와닿은 구절이라 메모를 해두었는데... 일본의 어느 여성 에세이스트가 쓴 글이었다. 책 제목을 떠올려봐도 기억이 나지 않아 동네책방에 들러 확인을 해봐야겠다. 일 년 전과 같은 위치에 그 책이 놓여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적지만. 그래도 한 번 살펴보러 들러야겠다. 오늘도 참 와닿은 구절이었다.


인생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작은 시간들을 쌓아놓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 무엇보다도 오늘을 사는 내가 가장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수 없다. 최고의 즐거움을 발견하려면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살아야 한다.

최고의 즐거움은 내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고 최고의 인생은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에게 최고의 인생을 살았는지 물어본다면 "글쎄요. 저는 잘 살긴 했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오늘을 살고 싶다.

<2021년 8월 29일에 읽은 책 구절 중>



덧붙여 오늘 <당신의 삶을 기록합니다> 인터뷰 프로젝트의 마지막 인터뷰가 끝났다. 여섯 번째 인터뷰이를 만나며 올해 인터뷰 프로젝트는 '쉼'을 키워드로 뽑았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키워드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정말 쉼을 즐기고 좋아하는 이들을 마주하며 내 취향과 잘 맞는 그녀를 오늘 만났기 때문이다.

숲, 영감, 에디터 등 나와 교차하는 키워드를 가진 그녀의 이야기를 재밌게 담아보고 싶다. coming soon!



쓰지 않은 물건은 시간에 스며들어
안 좋은 냄새가 채워지고 삭는다.
물건도 사람의 혼이 들어가야 쓸모가 있다.

힘겹게 대청소를 마치고 가족끼리 나와 저녁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마치 이사 간 날처럼. 그리고 집 주변을 산책했다.아이폰에서도 촬영하니 절로 집으로 분류된 사진(오른쪽)
인터뷰 프로젝트를 하며 자주 들렀던 집 근처 카페, 이 공간이 많이 그리울 듯 싶다. 옆 동네로 이사가지만 이번 여름만큼 자주 들러 작업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기념삼아 사진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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