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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Sep 27. 2020

나를 위한 집밥, 한 끼를 원했다

가족을 위해 매일 밥상을 차려야만 하는 엄마의 그늘  




몇 주 전부터 번아웃이 왔다. 번아웃이라고 생각못했다. 만성피로인 줄만 알았다.  

'그래, 1년 반 동안 등 하원 시키며 출퇴근하고 아이 저녁상도 매일 차려줬으니 힘들만하지. 지난해 추석 때 교통사고가 나서 그 후유증으로 목디스크 증세가 생겼으니 더 힘들겠지...' 여전히 내 힘으로 하루 일과를 다 소화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고 해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매일 반복하던 하루 일과를 소화할 수 없을 만큼 기력은 밑바닥에 다다랐다. 유독 8월에는 매일 아이를 향해 “힘들다”라는 말을 하며 한숨짓는 일이 빈번했고, 단지 ‘내가 피곤하구나..’ 혹은 ‘매일 이렇게 살면 단명할 텐데..’ ‘이러다 죽겠다’ 우려심만... 커져만 갔다.


정확히 9월 12일 이후... 일주일간 불면증에 시달려서 얼굴과 몸은 수척해지고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내 의지대로 잠을 자지 못하니 며칠간 두통이 지속됐다. 평소대로 한약을 꼬박 챙겨 먹고, 조금이라도 두통을 완화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두피와 뒷목에 침과 부황치료를 받았다. 몇 주간 쉬었던 개인 레슨 운동도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다시 시작했다. 특단의 조치를 찾아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수면을 도와주는 약을 복용하니 꿈을 꾸지 않고 깊이 잘 수 있었다. 내 마음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받고 싶어서 용기 내서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문을 두드렸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불면증)이 나타나 첫 진료 날에 수면을 도와주는 약을 8일 치 처방받은 것이다. 새벽에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에 잠시 깨기도 했지만, 4일간은 별 탈 없이 지냈다. 이후 약을 먹지 않아도 잠 손님은 때맞춰 방문했다.  


 그런 와중에 '나를 위한 집밥'을 차려주겠다고 친한 지인에게 점심을 초대받았다. 메뉴는 집라면. 메뉴가 중요하지 않았다. 여러 반찬이 많지 않아도 됐다. 오로지 나를 위한 집밥, 한 끼를 원했다. 그 한 끼를 먹고 나니 불면증에 시달린 이유와 매일 힘들다고 투덜 되었던 나를 이해하게 됐다. 매일 아이에게 저녁상을 차려주는 게 진저리가 났었던 것이다. 하루에 몇십 번씩 시계를 보며 시간에 쫓겨 느긋하게 출근할 수 없고, 아이를 재촉하여 등원시키고.. 더 집중하며 일하고 싶은데 시계를 보면 벌써 하원 시간이자 퇴근시간이고.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거르고 그냥 눕고싶은데.. 나 아니면 저녁을 못 먹는 아이를 챙겨준 후, 다음 날 어린이집에 가져갈 소지품을 챙기거나 아이 세탁물을 빨아야 하고.규칙적인 잠자리 시간을 지켜야 하는... 나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야만 하루일과가 끝나는 일상에 지쳤던 것이다.


최근에 나를 위한 집밥, 한끼였다. 이리도 소중할 줄 몰랐다.


 그 일상의 정확한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1년간. 침대에 푹 쓰러져서 아이보다 먼저 잠든 적이 많았다. 새벽에 뒤척이는 아이 때문에 잠은 늘 부족했다. 거기다 지난 8월 말, 예상치 못한 인사발령까지..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6개월을 쓰고나서 벌써 복직한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지 못한 채, '해내야만 해'라는 생각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진작에 살림과 밥상 차리는 것에 서툴렀다. 늘 아침을 챙겨 먹는 부모님 덕에 기상하면 식탁에 앉아 아침을 챙겨 먹었다. 결혼하기 전 5년간 동생과 한 집에 살았지만 동생이 나서 집밥을 챙겨주었고, 청소는 당연히 뒷전이었다. 첫 사회생활로 평일은 야근으로 마감하고 주말에는 평일에 누리지 못한 일탈, 취미생활을 즐겼다. 집안일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결혼하니 부엌에 있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집밥을 만들거나 혹은 그의 퇴근시간에 맞춰 그를 위한 집밥을 잘 차리고 싶었다. 그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아이가 생기니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요리과정까지 내가 다 관여했다. 내가 차린 소박한 밥상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 모습에 신이 나서 퇴근 후 장을 봐서 한 상을 차려줬다.  아이의 밥상에 신경 쓰니 그의 밥상은 차려줄 생각을 못했고, 그는 외식 또는 배달음식으로 나의 끼니를 챙겨주었다. 그것이 나를 위한 밥상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오로지 내 생각일 뿐 그의 생각은 모른다) 매일 아이의 집밥을 만드는 일은 기필코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내가 잘하지 못해도 매일 '해야만 하는 숙제'였다. 서른 해 동안 내가 하지 않았던, 잘하지도 않았던 살림을 매일 반복해서 하려다 보니 탈이 났던 것이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보다 내가 못하다는 게 많다는 걸 인정하면 덜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내 한계를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펼쳐놓은 매일의 숙제로 매일 저녁마다 내 삶이 억울하고 분하게 느껴졌다. 냉장고 청소, 집안 청소와 설거지, 집밥 차리기, 세탁기 돌리기, 세탁물 꺼내서 건조하기, 세탁물 개기.. 계절이 바뀌면 옷장 정리하기... 등등 무엇보다 나를 위한 밥상은 없는 건가. 내가 나를 챙겨야만 하는 밥상 말고. 식탁에 앉으면 짠! 하고 나타난 엄마의 집밥처럼.  아이가 없었다면 매일 집밥을 챙기는 일이 얼마나 숙제 같은 일인지 몰랐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끼니를 챙기려면 상대를 만족시켜야만 임무가 완수한다. 엄마의 집밥을 이제껏 그냥 받아먹었다. 대가 없이. 30년간.



"나다운 삶을 살려면 내 욕구나 야망에 충실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와 동시에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어 해요.
 분명하게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다 가져가려다 보면 결과가 두려워져요.
 두려움이 쌓이다 보면 결국, 차선책 혹은 차악,
 극단적으로 최악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고요.
 이건 남성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누구나 주인으로서 내 인생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용기인 것 같습니다.
 설령 무언가 실패해도 잘하고 싶고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후회를 덜 할 거예요."

 - 이나리 헤이 조이스 대표, EO 인터뷰 중


"일하면서 아이도 키우는 삶이 남녀 모두에게 가능하려면,  그리고 그런 삶이 더 수월해지려면 더 많은 노하우, 더 다양한 레퍼런스가 있어야 합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희생의 스토리보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어려움을 돌파한 노하우가 많아져야 개인의 삶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리고 조직과 사회에 변화도 만들 수 있고요."

- 김미진 워커넥트 대표, 인터뷰 중


"당시에 저는 여전히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사회적 시선에 어긋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을 잘 하고 아이도 잘 키운     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거죠. 제 몸 하나도 잘 건사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아이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제 일상과  꿈도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많이 방황했던 것 같아요." - 김연지 CBS 기자 겸 유튜버, 인터뷰 중



30년간 집밥을 먹었던 딸은 출산 후 30년간 자식에게 집밥을 해줘야한다는 인식이 애초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아프면 집안일이 멈춰진다'  말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같다. 내가 하지 않아도 내가 아닌 가족 구성원, 그가 도맡아서 해내야만 한다. 해낼  있어야 한다. 당연히 부모로서 ‘()’ 해야할 역할이 있는데 ‘()’에게 육아와 살림을 모든 전가하는 현실.


 "사명을 잘 감당하되 누구도 너에게 잘하라고, 1등 하라고 한 적은 없다(원혜성 율립 대표)"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한 채 가족을 챙기려는.. 옛날 옛적에 엄마들의 모습을 이젠 따라가지 않으련다. 엄마에게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지만 엄마의 삶도 소중하다. 서로 비례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다음번에 엄마를 뵈면 제대로 된 집밥을 차려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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