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손짓
지난 6월, 꽤 많이 아팠다. 재채기가 심하고 눈과 목이 따끔해서 회사 구내약국에서 칠천 원 치 약을 샀음에도. '주인님, 제발 쉬어주세요'라고 몸에서 신호를 끊임없이 보냈다. 퇴근이 가까워질 무렵, 아이를 하원 시킨 후 함께 이비인후과에 들러 진료를 받았다.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동행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내가 아파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 문턱을 넘는 일은 흔치 않은 일. 말은 못 하지만 눈치로 '오늘은 내가 아파서 병원에 온 게 아니구나'를 알아챈 지. 21개월, 두 돌에 가까운 아가는 내 손을 힘껏 잡고 보호자 역할을 해줬다. 의사 선생님께 인사하고 엄마에게 진료 좌석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다행히 초기 인후염이라 3일 치 약만 빠짐없이 먹으면 바로 낫는다고 진단받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귀갓길에 죽집에 들러 아이의 저녁을 챙겨주었다. 마음 같아선 현관 앞에 모든 짐을 제쳐두고.. 안방 침실로 들어가서 눕고 싶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컨디션이 최고였던 아드님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래, 할 일은 해야지' 하는 마음에서 아이를 목욕시키고 재우려고 자리에 같이 누웠는데...
"우~~ 우우유"를 외치며 그분은 주방에 가서 자신이 즐겨 쓰는 엘사가 그려진 플라스틱 컵을 침대에 뻗어 눈을 감고 있는 내게 쑥 내밀었다. 당시 서울우유의 귀리 우유와 흑임자 우유에 빠지신 그는 이틀 혹은 사흘 만에 두 통을 비우시곤 했다. 식음료에 대한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흰 우유의 세계에서 팥과 콩을 좋아하는 그에게 새 우유는 가히 놀라운 맛이었다(사실 처음 출시된 제품이라 내가 맛보고 싶었던 우유인데 그가 다 마셔버렸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식탁에서 우유통을 어떻게 옮겼는지.. 우유를 따라달라고.. 몇 번이나 칭얼거렸다.
잠결에 깨어서 시계를 보니 시간은 훌쩍... 1시간이 흘렀다. '아차' 그 칭얼거림을 들으며 잠들어버린 것이다. 하필 또 다른 그는 야근 중이셨다. 깊이 잠에 든 엄마의 머리카락을 1시간 이상 붙잡으며(아이의 특이한 버릇으로 잘 때마다 내 머리카락을 놔주지 않는다) 칭얼거렸음에도 전혀 꿈쩍이지 않았던 둔한 엄마. 말 그대로 뻗은. 몸을 일으켜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꿈에서나 볼듯한 우유통이 내가 누워있던 이불 위로 쏟아졌다.
'뜨아...' 침대에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유를 쏟지 않았을까. 한밤 중에 이불 대청소를 했다. 어찌 됐든 잠이 확 달아나서 아이를 꾸짖었다. “자야 할 시간에 왜 안 자니..” 우유로 젖은 옷을 벗겨달라는 아이가 많이 미웠다. 결국엔 나는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앞자리 동료에게 보내는 편지 구절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나보다 ‘누구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라며 “육아하며 잠시 나를 놓치지 않은 시간을 꼭 가지세요”라고 말해놓곤.. 정작 나는 아이에게 얽매여있었다.
다음 날, 아이에게 꾸짖었던 마음이 미안하고 허해서 며칠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회사 구내서점에서 충동구매했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 마음을 지키며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아이는 기존에 내 인생에 없었던 새로운 타인이다 보니. 그에게 적응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더군다나 타인은 내가 몰랐던 그만의 역사가 있다. 그의 지인 혹은 그의 가족으로 인해 그가 살아온 방식과 성향을 알 수 있도록 그와 친해질 수 있는 '힌트'를 던져준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지 않다. 내가 만든 타인이므로 철저히 그의 과거는 내 몸 안에 있다.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의 포트폴리오는 내가 그려내고 내가 만들어가는 대로 흘러갈 수 있다. 정체성이 생기면 기꺼이 그가 원하는 방향대로 삶의 그림을 그려나가겠지만. 그가 스무 살이 되고 내가 '20년 차 엄마'가 되면 우리의 관계가 나아질까.
지금은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지점과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쌍방의 노력이 아닌, 일방적인 내 노력이 아직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지만. 시야에 벗어나지 않은 사무실 책상에 책을 고이 모셔두었다.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늘 하원 시간에 쫓겨 읽을 수 없지만 마치 부적처럼 '내 마음이라도 편해질까' 싶어서 말이다. 그 이후 그렇게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반성하고 스스로 나를 다독일 때가 늘어났다.
하원과 퇴근 후... 아이의 눈을 맞추며 육아에 열중하는 저녁시간이 다다르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기억이 안 난다. 증발해버린다고 할까. 그렇게 몸과 마음을 아이에게 집중하고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은 가뿐하다. 새로운 날을 선물 받은 느낌마저 든다. 잠이 보약인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이제 터득한 '3년 차 엄마'라서 그런지.
'이 녀석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 세상에 왔나'라고 한 숨을 짓는 날이 있다면, 상처가 난 부위에 '호호' 바람을 불며 아픔을 공감해줄 때도 있다. 아직 내 손의 반도 안 되는 고사리 같은 연약한 손으로 내 어깨와 등을 토닥토닥 위로해줄 때도 있다. 몇 달 전부터 내가 먹는 간식과 음료, 나의 신발까지 탐하는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됐다.
'당신이 하는 걸 모두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까.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대상, 배우자를 만났다면.. 아이는 내 일상을 모두 내어주는 존재다. 공유, 공감, 위로 등의 인간이 느끼는 감정 위에 그와의 교감. 그 교감은 내가 살며 느꼈던 감정과 확연히 다른 감정이다.
아직도 긴가민가할 때도 많지만 매일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되면 '아이를 낳고 직접 기르는 일',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음을 느낀다. 회사에서의 억울한 일, 답답한 일, 풀리지 않았던 일들 모두..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주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일상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퇴근한 나의 눈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는. '오늘 고생했다'라고 폭 안아주는 아가의 미소와 포옹이었다. 내 마음을 어루어만줘주는 묘한 기운. 그래서 우린 함께 사는 가족인가 보다. 내 가족을 꾸려나갈 이유를 만들어준 소중한 사람.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만질 힘도 없었던 아이는 이제 보이는 세상을 모두 만져보려고 분주하게 뛰어간다. 걸을 때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의 1년 전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이는 어느새 지난해와 달리 내 눈을 마주 보며 예쁜 짓을 하고 동요 전곡을 따라 부르며 율동도 한다. 불과 1년의 시간을 훌쩍 지나 마주한 나는 똑같은(?) 모습 그대로인데.
또다시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다가오는 환절기 시기에 지난 6월처럼 초대하지 않은 손님 '인후염'이 찾아왔다. 나 홀로 이 세상의 아픔을 모두 짊어지는 것 마냥 투덜거린 치기 어렸던 시절. 지금은 철이 확실히 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황에서도 내 아픔보다 아이의 콧물이 눈에 띈다. 몸은 힘들어도 내가 챙겨야 할 아이가 있어 내 아픔은 덜 아프게 느껴지곤 한다. 아파도 별일 없는 것처럼, 똑같은 일상에 맞춰 나를 끼어 맞추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할만하다. 그러다 보면 다시 건강한 나로 돌아온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의 손짓으로 한 발 나아간다.
아이는 내 일상을 모두 내어주는 존재다.
공유, 공감, 위로 등의 인간이 느끼는
감정 위에 그와의 교감.
그 교감은 내가 살며 느꼈던 감정과
확연히 다른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