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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Jan 13. 2021

Do you wanna build a snowduck?

같이 눈 오리 만들래?

몇 년 만에 대단한 눈과 한파가 밀려왔다. 아무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눈 오기 시작한 날부터는 회사와 집만 오가면서 최소한의 이동만하고 있다. 미끄러지는 것도 무섭고 먼지들과

뒤섞여 검은색 곤죽이 되어버린 눈의 잔해를 밟는 일도 썩 즐겁지 않다.


이렇게 눈이라는 존재가 반갑지 않다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 하던데 그래도 이렇게 눈 오는 날이 반가운 이유가 하나 있다면 바로 눈 오리다. 누가 시작했는지 몰라도 올해는 너도 나도 눈 오리를 만드는 일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 당근 마켓에 가면 눈 오리 찍어내는 틀(?)을 고가에 판매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 보니 유행이 확실하다. 특히 눈이 올 때만 만들 수 있다 보니 눈이 쌓여있는 지금 가장 불티나게 팔리리라.


<2년 전 봄에 주문한 눈오리 틀>

 나에게 이런 선견지명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인터넷으로 눈 오리 만드는 gif를 보고는 홀려서 눈도 내리지 않는 3월에 친구들과 함께 주문했다. 눈이 안오면 눈 오는 나라에 가서 만들면 된다며. 해외배송이라고 한 달 걸려서 받고는 또 겨울까지 한참을 기다려서 작년에 눈이 내렸을 때는 그야말로 눈 오리 파티를 즐겼다.



지난주 예상치 못한 폭설에 사람들의 퇴근길이 막히고 10시간 동안 버스를 탔다는 이야기도 들려올 정도로 도로 마비가 심각했다. 아직 골목길에는 내린 눈들이 채 녹지 않았는데 어제 퇴근길에 또 눈이 내리는 것을 본 회사 동료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집에 언제 가나 한숨을 쉬고 괜히 차 타고 왔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난 괜찮다. 나한텐 눈 오리가 있으니깐. 집에가서 눈 오리 만들 생각을 하면 이 눈이 마냥 싫지는 않다. 오히려 반갑지. 눈 오리 틀을 같이 산 친구들도 신나한다. 친구 아들은 눈이 오니 썰매도 타고 눈 오리 만들기에 신나서 방방 뛰어다닌다고. 그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귀여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눈이 온다고 어린이들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제 퇴근길에는 옆 건물에 사는 사람이 열심히 눈사람 틀로 미니 눈사람을 찍어내고 있는 것도

봤다. 오늘 아침 출근길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꼬마 눈사람과 큰 눈사람들까지 여러 작품들이 나와있는 것을 보고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


갑작스러운 눈이 오는 것은 퇴근길 운전자들에겐 지옥 같은 일이겠지만 이런 작은 즐거움이 있다는 게 하루 하루를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날씨도 춥고 코로나 블루로 얼어붙어가는 우리 마음을 눈 오리가 조금은 녹여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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