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l Van Zeveren, Et pourquoi ?
오랜만에 브런치에서 인사드립니다. 요즘 저는 네 번째 책 개고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집필 기간이라 회사 출근도 하지 않고, 거의 외출도 하지 않고 읽거나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창비 어린이> 가을호에 실릴 예정인 평론도 한 편 썼던 터라 '쓰기 머신'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출간이나 매체 기고를 염두에 둔 원고는 돋보기를 끼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핀셋으로 세밀하게 문장을 수리하는 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다다' 써내려가는 맛이 없습니다. 2주 내내 수리만 했더니 아후, 머리가 어질어질 하네요.
좋아하는 그림책들을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는 글을 온라인에 너무 무겁지 않게 쓰면서 좀 노는 기분을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21세기 소녀소년의 그림책'이라는 주제를 잡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정확하게는 대학교에서 문화 비평 학회를 하면서부터) 젠더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예술 작품 안에 여자가 등장하면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있거든요. 요놈, 식상하고 틀에 박힌 여성상을 보여주기만 해봐라, 실컷 욕해주리라 생각하면서요.
'여자가 되어서' '딸이 되어서' '며느리가 되어서' 같은 당위의 틀, 역할의 틀로 개인을 옭아매고 생동감을 말살시키는 고정관념은 보호색을 어마무지하게 잘 사용합니다. (남자를 향해 주입되는 경직된 성 역할과 가부장적 관념도 마찬가지고요.) 수천 년 동안 전해내려온 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의식의 뼛속까지 침투한 거나 마찬가지라 크게 노력하지 않으면 사실 인식하고 구별해내는 게 쉽지 않아요.
그림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소녀는 소년에 비해 수동적이고, 연약하고, 구원자를 기다리는 피해자 혹은 끽 해야 왕자와 결혼해 살림하는 결말을 꿈꾸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현대 그림책에서는 물론 이런 경향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오!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군!' 하며 박수칠만한 소녀를 자주 만날 수 있을만큼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런 이유에서 지금까지 저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킨 그림책 속 새로운 소녀들을 소개하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젠더 관련 주제라면 할 말이 많아서 우다다 써내려가는 속도감을 즐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소장하고 있는 그림책들 가운데 다뤄볼만한 책을 골라내니 대략 이 정도가 나왔습니다.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책도 꽤 많은데 틈이 날 때마다 찬찬히 소개해보도록 할게요.
처음으로 소개할 책은 벨기에 작가 미카엘 반 제버렌(Michel Van Zeveren)의 <Et pourquoi?> 입니다. 작가는 1970년에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나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위해 미술학교에 입학했다가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림책 세계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불어권 아동도서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에꼴데르와지르 출판사에서 1999년부터 거의 매해 작품을 발표하고 있어요. <Et pourquoi?>는 2007년 작품입니다.
표지를 보면 빨간 망토를 쓴 소녀와 늑대가 있습니다. 단박에 유명한 <빨간 모자> 속 두 주인공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습니다. 구전 설화로 내려오던 빨간 모자 이야기는 프랑스 사람이었던 샤를 페로가 1697년에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샤를 페로 버전은 존재하는 다양한 빨간 망토의 변주 가운데 가장 어둡고 비극적입니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참하게 길러진 마을 최고 미인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숲 속을 지나다가 사나운 늑대와 마주치게 된다. 늑대는 꾀를 내어 소녀에게 할머니 집이 어딘지 말하게 하고, 소녀는 속아 할머니집을 알려준다. 늑대는 할머니 집으로 가서 할머니를 통째로 삼킨 다음 옆집 나무꾼 아내인 척 변장해서 소녀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윽고 도착한 소녀 역시 잡아 먹는다.'
반면 그림 형제 버전은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합니다. 소녀가 숲에 들어선 이유는 아픈 할머니께 음식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였고, 늑대는 소녀에게 할머니 집을 물을 때 마음이 끌리는 상냥한 방식으로 말을 걸었고, 마지막에는 사냥꾼이 등장해 늑대 배를 갈라서 소녀와 할머니를 구해준다는 결론이 추가되었죠. 우매하고 연약하여 스스로를 위험에 몰아넣은 여성을 남성인 사냥꾼이 구해주는 결말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행복을 바란다면 스스로 해결할 생각 말고 조신히 기다려라.)
샤를 페로는 당시의 젊고 예쁜 여성들에게 모르는 사람(특히 늑대로 상징되는 남성)이 말을 걸어올 때 순진하게 대답을 해주면 큰 위험이 닥칠 것(그러니 여자들이여, 위험을 예방하려면 스스로를 단속하고 행동 반경을 좁혀라!)이라는 교훈을 담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어째, 익숙한 논리죠? 샤를 페로 시대로부터 300년 넘게 지났는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희롱을 예방해야 한다면서 여성들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라, 일찍 귀가해라, 밤에 귀에 이어폰 꽂고 혼자 걷지 마라 등등 온갖 자기 검열과 단속을 시키도록 만듭니다.
샤를 페로 버전과 그림 형제 버전 속에 담겨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고릿적 것이 아닙니다.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여전히 현대 사회 안에 버젓이 살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Et pourquoi?>가 정말이지 소중하고 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고요.
할머니 댁에 가기 위해 빨간 망토 소녀가 숲을 걷고 있습니다. 그때 커다란 늑대가 나타나 "핡, 너를 잡아 먹을테다!"라고 소리치죠. 빨간 망토 소녀 머리 위에 지문 한 줄이 놓여 있습니다. "어째서? Et pourquoi?"
늑대가 답합니다. "어째서라니? 내가 배가 고프니까 그렇지."
소녀가 묻습니다. "어째서?"
"그게... 며칠동안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음식이라는 걸 입에 넣질 못했어."
"어째서?"
"왜냐면 더이상 조용하게 사냥을 할 수 없었거든."
"어째서?"
"왜냐면 늘 숨어 있어야 했거든."
"어째서?"
"사냥꾼이 나를 잡으려고 뒤를 밟고 있었거든."
"어째서?"
쉽게 '그렇구나' 수긍하지 않고, 기어코 왜냐고 묻고 따지는 소녀 덕분에 결국 늑대는 스스로의 입을 통해 본인이 처한 진짜 현실, 마음 속 두려움 등을 발설할 수 있게 됩니다. (힘 센 존재에게 금기시 되는 눈물도 흘리고요.) 하지만 더 이상은 늑대는 못 참겠다며 소녀를 잡아먹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제, 낮잠을 좀 자야겠다."
그때 늑대 뱃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잡아 먹힌 뒤에도 소녀는 입을 다무는 법이 없습니다. 계속 이유를 묻고, 근거를 따지고, 설명을 요구합니다. 소녀의 질문 공세에 진이 빠진 늑대는 뱃속에 있는 소녀에게 제발 멈춰달라고 사정 사정하고,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며 자기 발로 사냥꾼의 집에 찾아가 배를 갈라버립니다. 사냥꾼이 놀라서 혼잣말을 합니다. "늑대가 왜 자기 배를 갈라버린 거지?" 그때 소녀가 밖으로 나오면서 대답하죠.
어떤가요. 기존에 알고 있던 빨간 망토 소녀 캐릭터와 참 다르죠? 저는 <Et pourquoi?>가 부조리에 저항하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 질문하기, 근거를 따져보기, 설명을 요구하기. 미카엘 반 제버렌 작가는 남자인데도 균형 잡힌 젠더 감수성을 지니고 있네요. (훌륭합니다.) 그가 그린 저 작고 빨간 소녀는 흡사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라는 현재 한국 사회의 중요한 페미니즘 구호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