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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박사 Mar 10. 2022

빛으로 가자

브라운박사의 실험실


나의 빛으로


2021년은 시작과 동시에,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시간이다. 1년 뒤면 나이만 더 먹을 뿐, 바뀌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시간의 거미줄에 갇힌 작은 곤충이 된듯, 버둥거리고 허우적댔다.


일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오고, 큰 결정 앞에 불안과 공포가 가슴을 짓누르고..세상은 이리저리 쏠리며 빠른 속도로 바뀌고..

한숨 놓으려면 더 큰 파도로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들이닥치고 숱한 책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고통에 대해 읽고 써오고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체없는 단어의 놀음인지를 겨우 체감할 수 있었다.

비로소,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의 고통이 피부로 와닿았고, 연민과 공감이 피어올랐다.


객관적인 상황으로만 보자면 조금 버거운 상황이었을 뿐인데 그것을 지켜보고 헤쳐나가는 나는 굉장히 움추리고 취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다 백신 부작용인지, 지난 가을쯤 가슴이 두근두근 대는 증상이 생기며, 그렇게 가슴이 두근두근 댈 때쯤이면 불안감도 딸려올라오는 이상한 증세가 시작됐다.


이런적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정확히는 무섭기도 했다.


증상이 생길 때면 앞뒤로,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으며, 자연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되더라. 일에서의 작은 갈등도 곧 '파국이다!'하는 소리로 메아리쳐 울려퍼지고, 누군가의 서운한 한마디에 가슴에서 쿵 소리가 들릴듯 낙담으로 이어졌다. 강철 체력으로 소문나있던나인데, 출근길 언덕길에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새벽 3시, 4시에 두근대며 눈을 떴다.


그때, 제발로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먹었다.

녹용까지 넣어서.

그리고 약을 먹을 때에는, 건강하게 해주세요, 살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이켰다.

약을 잘 안 챙겨먹는 편인데, 꼬박꼬박 그때는 그렇게 매달렸다.

한 재를 지었던 약을 다 먹기도 전에 약의 효과인지, 플라시보 효과인지, 금세 나아졌다.

불안은 낮아지고, 심장이 두근대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 무렵 한의원에서 지은 녹용만 챙겨먹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인간 녹용’이 있었다. 감정의 핵심을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내게 ‘많이 불안해요?’라고 물어준 선배, 아침 저녁, 안부를 확인하던 사람, 고장난 라디오처럼 했던 이야기를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하는데도 끝까지 들러준 친구, 네 옆에 우리가 있어, 를 음식으로 웃음으로 확인시켜준 이모들, 그리고 엄마..나는 공감이란 단어를 최소 1000번은 써봤고 입에 담았던 사람인데,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독립적인 삶을 부르짖었으나,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하고 나약한 존재인가도 그제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백신 2차를 맞을 때즈음에야, 내 증세가 백신 부작용인 심근염, 심낭염 뭐 이런 것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아지니, 덜 불안해지고, 생각이 좀 맑아졌다.

땅에 처박고 있던 머리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  같은, '심리적 조망권' 조금씩 확보되며, 조금씩, 긍정적인 생각이 불안한 생각을 밀어냈다. 감정에도 맛이 있다면 기쁨이라는 맛이 미각에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아득하게 오랫만에 맛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신기한 것은 같은 상황인데도, 그 이전과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지는 경험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버티지, 하는 막막함은 이걸 디딤돌 삼아 어떻게 나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변했다. 아련하고, 미안하기만 하던 관계도, 그래 내가 이들을 지키자 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한 치 앞도 혼란스럽던 마음에, 만에 하나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대안이 있을지를 이리저리 궁리도 해보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문제가 나보다 크지 않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때 이 말이 떠올랐다.

"빛으로 가자. 어떤 순간에도 빛으로 가자. 아프고 힘들고 외로워도 빛으로 가자.

돈이 없어도, 일이 힘들어도, 사람으로 괴로워도.

그렇다 해서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내 존재는 그렇게 빛으로 갈 수 있다."


그때까지 문제가 나를 압도한다는 생각에 (문제의 크기와 상관없이)

버텨보자, 라는 말민 입에 달고 살았다. 버티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다 문득 버티기만 하면, 제자리에서 버티기만 하면 나는 맨날 그 자리에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암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내 존재 전체가 그 상황속에서 웅크리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비록 내 몸과 마음이 어둠속에 갇혀있을지라도 두 눈과 머리를 똑바로 빛을 향할 수 있다면 나는 다시 그곳을 걸어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고 시원해졌다.


지금도 그 말을 입에 담아본다.


"빛으로 가자."


어떤 조건에서도 나는 빛으로 갈 것이다. 그대도 자신의 빛을 향해 나아가라..


ps.

2022년 3월 10일, 20대 대선의 결과로 하루를 시작했던 우리들에게도.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땅에 머리를 처박고 싶었을 우리에게도. 빛으로 가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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