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인간은 생각한다

걷기를 되돌려준 코로나

by 루아나

한때(진짜 한때다) 잘 걸었다. 날다람쥐란 표현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유년을 산골 벽지에서 살아낸 덕에 버스가 없어서 집에서 십리(4KM) 떨어진 학교를 걸어(사실 뜀박질해)서 다녔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동 학대 수준이다. 그 무섭고 먼 길을 어떻게 다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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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삶의 근거지를 옮기면서 걷기와는 자동으로 멀어졌다. 걷기가 마치 무슨 행사나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주말에 산타기나 특정한 장소에 차를 타고 가서 걷거나 조깅을 하는 방식으로.


멜번은 걷기에 최적화된 도시다. 골목 골목이, 그리고 주택 하나하나가 색깔과 개성을 지녔다. 고층 건물이 없고 1층이나 2층의 주택으로 이루어진 풍경은 시선을 끊는 일이 적고 사계절 푸르고 주인들이 심어놓은 다양한 색상의 꽃들을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 멜번의 하늘은 땅까지 내려온 듯한 느낌을 많이 준다. 푸르기로 유명도 하지만, 한국보다 하늘이 더 넓다는 착각도 불러 일으킨다.


그럼에도 자주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아이를 학교에 실어 나르려면 '빠른' 이동성이 생명이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괴로운 것은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하루 종일 온 식구가 한 집에서 생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우울감이 밀려온다. 남편은 3월부터 재택근무 중이고, 아들은 8주간의 온라인 수업을 종료하고 학교로 돌아간지 3주만에 겨울 방학을 했다. 그리고 다시 2차 온라인 수업중이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처럼, 가족이 계속 삼시세끼를 한 집에서 먹게 되면 우울하다. 고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가야 한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마치는 2시경 나는 마트를 간다. 왕복 1시간 거리를 굳이 오늘 가지 않아도, 기필코 오늘 사지 않아도 될 우유와 밀가루를 사러 나선다. '나는 빵을 구워야 하니까.' 는 핑계고, 아이에게는 자유 게임시간을,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니엘, 고마운 담임,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이라면 아이가 담임을 잘 만난 일이다. 그녀는 금요일 2시쯤(아이들이 과제를 거의 마무리 한 시간) 학급 단체로 '온라인 마인크래프트'를 한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나는 아이가 끝도 밑도 없이 꼬셔대며 설득하는 바람에 마인크래프트의 세상에 입문을 해보려 했으나 20분 만에 접었다.


그런데 젊은 담임은 <마인크래프트 에듀케이션>을 배워서 아이들과 직접 게임을 한다. 담임이 돌봄을 하는 한 시간은 엄마에게 한시간의 달콤한 자유다.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 2020년을 떠올리면 아이 담임이 가장 인상깊게 떠오를 것이다. 아이에게 코딩의 세계를 안내해 준 교사. 아이가 던지는 엉뚱한 질문과 행동에 밝은 웃음으로 대답하는 교사. 아이가 도움이 필요한 지점을 잘도 캐치해 내는 교사. 아이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이름이길 바라며.


학생은 학교로, 직장인은 일터로, 그리고 나에게 혼자 집을 독차지할 자유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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