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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Oct 01. 2024

그녀의 물건(들)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도시인 이곳에 오면서는 조금 불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이나 부산에서보다는 영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테고 외국인을 보는 시선도 조금은 달랐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남편이 살아있었을 때는 남편이 모든 일을 다 처리했었던 것 같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J와 S 같은 분들이 어려운 일은 해결해 주었던 것 같다. 자동차를 사는 일이랄지 집을 구하는 일이랄지 같은 것들. 이외의 일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해결했던 것 같다. 다문화 센터의 사람들과 토크 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들이라든지…. 나를 만난 이후에는 나에게도 부탁을 자주 했었다. 세금 관련 일이라든지 비자 관련 일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비자 관련해서는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해주었다. 지금까지 두 번 비자를 연장했는데 그때마다 안동 혹은 대구로 함께 가곤 했었다. 혼자서도 갈 수 있었지만, 왠지 같이 가서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늘 같이 갔다. 나 역시 캐나다에 있을 때 비자 관련 문제가 나올 때마다 항상 난감하고 눈치 보이고 그랬던 것 같다. 서류가 아무리 잘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늘 불안했고 돌려보내질 까봐 조마조마했다. 항상 그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치를 살펴 재빠르게 준비된 서류를 보여주어야 했고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비자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D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던 일이라 조금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조금은 불안했으리라. 마지막에 연장하러 갔을 때는 매우 불안해했었다. 연장이 되지 않으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 한국에 남아 돈을 계속 벌고 싶다고 했다. 비자 연장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네가 비자 연장을 해준 것은 미라클이야.라고 말해줄 정도였다. 그 비자 연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D의 어머니가 남겨주신 코트가 있다고 했다. 초록색과 파란색이 있는 긴 코트라고 했는데 어머니 유품이라 꼭 찾아주었으면 했다. 강아지 배변이 있었던 방에 비슷한 코트가 있어서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보냈다. 답이 없었다. 어떤 코트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옷이랑 이불이 너무 많았다. 거의 비슷한 소재의 이불이 끊임없이 나왔다. 강아지 때문이었을까. 비슷한 소재의 옷들도 매우 많았다. 추운 겨울 때문이었을까. 결국, 코트 비슷한 것 두 개를 골라 박스에 넣었다. 그녀의 어머니 유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김치 pot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부엌을 정말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고 솔직히 김치 pot은 별로 찾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그건 그냥 없다고 해.라고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무서웠던 공간이 차츰 익숙해지며 남편과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참 신기했다. 왜 무서웠지. 죽은 사람이 살던 곳이라서? 내가 본 참혹함 때문에? 집 자체가 어두워서 그런가……. 그런데 물건을 찾으면서 찬찬히 집을 보다 보니 알고 지낸 세월이 그래도 몇 년인데 이 사람에 대해 참 아는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는 줄도 몰랐고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몰랐고 가톨릭인 것도 돌아가실 그즈음에 알게 되었다. 아마 얘기를 한 번인가 해주었던 것 같은데 내가 잊은 것일 수도 있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셨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한국말을 모르니 한국 티브이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고 저녁 시간 무료할 때 영화를 많이 보셨던 것 같다. 비디오테이프와 디브이디들이 무수히 많았다. 사후세계와 영혼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것과 관련한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벤의 유골함과 같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일까. 나중에 남편이 한 번 더 집을 정리한다고 갔었는데 영화를 보시던 방에 책장 안에 작은 강아지 유골함이 5개나 있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각각 이름이 적힌. 지갑에서 신분증을 찾아 사진을 찍을 일이 있어서 지갑을 열었는데 머리카락인듯한 털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강아지 털이었다. 얼마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그 강아지 털. 나도 첫아이의 처음 빠진 머리카락과 처음 잘랐던 손톱을 모아서 가지고 있었지만 가지고 다니지는 않는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그렇구나 하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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